기도는 과학이다

진정한 기도는 끝내 이루어진다
기도는 과학이다

혜담 스님
불광법회 선덕(先德)


마음에 있는 것이 이루어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고 또한 그것을 성취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나 맛있는 음식 등을 찾아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어쩌면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동물은 식욕이나 종족 보존의 욕망 등 몇 가지 본능을 제외하고는 인간처럼 자신의 삶에 관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위 가운데 기도(祈禱)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기도라는 것을 종교의 전유물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특정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도 막연하게 무엇인가를 향해 기도라는 행위–이 경우를 흔히 ‘빈다’라고 표현한다-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불교의 기도에 관해서도 많은 승려들이 ‘기도는 관세음보살이나 부처님께 비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예외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기도를 ‘특정 존재에 대해 비는 것’은 신(神)을 믿고 절대자인 신을 향해서 비는 것을 기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서 말하는 기도는 말은 같지만 행위 자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것이 바로 『화엄경』 사구게(四句偈)의 네 번째 구절인 ‘일체는 이 마음이 지었느니라[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일체유심조라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자기 마음이 어두워지고 거칠게 바뀌면, 원래의 마음 깊은 곳인 본성(本性)에 어둠이 덮여서 대립과 미움, 원망과 불행 같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마음이 하늘의 낮은 층의 구름처럼 덮이면 우리는 구름 아래 존재가 되고 마는 것과 흡사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발생한다. 일체를 마음이 짓는다는데, 그 ‘마음’이란 것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이다. 여기서 ‘반야사상’인 공(空)사상과 대립·대론하면서 2000년 가까이 발전해온 ‘유식사상(唯識思想)’이 등장한다. 지면 관계상 유식사상을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요지만 이야기하면 아래와 같다.

유식에서는 마음[心]을 심(心), 의(意), 식(識)의 셋으로 구분하면서, 심을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으로, 의를 제7 말나식(末那識, manas)으로, 식은 제6식인 의식(vijñāna)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의식’이라고 하는 마음은 제7식인 말나식으로 전식(轉識), 사량식(思量識)으로 번역한다. 다시 말하면 ‘일체는 마음이 만든다’라는 말은 인간이 생각과 상상으로 사량 분별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기도의 구조도 여기서 나오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공(空, śūnya)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래 성품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반야심경』에는 “이 모든 법은 공상(空相)이어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라고 설하고 있다. 이 말은 부처님이 인간을 포함한 일체 존재의 진실한 모습을 밝힌 부분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영원하고[永遠性], 청정하고[淸淨性], 원만구족하다[圓滿具足性]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반야심경』의 이 정의(定義)는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바라고 기도할 때의 기본 개념의 바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즉 우리가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바라는 ‘그 무엇도 이미 당신이 가지고 있다’라는 뜻이다. 부처님이나 신(神)에게 기도하면 부처님이나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 본성 속에 가지고 있던 ‘어떤 것’이 당신의 노력으로 현실 사회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환경과 조건들, 육체적인 조건까지 포함한 그 모두는 그런 생각으로 짜 만들어낸 직물이다. 실로 짠 비단이나 천이 아니고 마음으로 짠 직물이다. 마음이 평화롭고 아름답고 조화로울 때, 그 마음으로 짠 모시나 베가 곱게 생겨나듯이, 우리에게 평화가 오고, 번영이 오고 이웃이 다정해지는 환경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거친 실로 짜서 거칠어지면 결국 마음이 어지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나 고난, 대립, 투쟁, 파괴 같은 불행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근본은 그렇지 않지만 낮은 차원에서 우리가 경계에 매달려서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일으키고 행을 일으키는 데서 일어나는 마음이 짜낸 직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마음에 따라서 천 가지 만 가지로 벌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양자역학(量子力學)으로 증명되는 공(空)의 의미
공(空, śūnya, void, nothingness, emptiness)이란 말은 영어로는 여러 표현이 있다. 이 단어들을 정리해서 다시 말하면 공이란,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無)이지만, 잠재적으로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어떤 것이고, 최초이며 절대적이다”라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사상과 똑같은 의론을 물리학이 발견했다. 1922년 닐스 보어가 ‘원자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 얽힘에 관한 연구’로 3인의 과학자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 양자장(quantum field)의 발견은 “저 밖에는 우주 만물을 이어주는 에너지 장(field)이 텅 빈 상태로 있고, ‘텅 비어’ 있는 곳도 실제로는 전혀 비어 있지 않고, 그 공간은 미묘하고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 이름이 양자장 혹은 통합장이며, 이 양자장은 물질세계를 형성하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양자장을 물질화시키는 열쇠가 인간의 의식이다”라는 이론이다.

이 양자장의 발견과 양자역학이 인간의 의식에 따라서 물질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불교의 공사상에서 “삼라만상은 공의 현현(顯現)이고, 일체를 이루는 당체가 인간의 의식(=마음)이다”라는 불교사상과 흡사하다. 즉 양자물리학은 공사상과 유식사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기도의 구조와 성취 방법과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인간의 의식이 현실 세계를 현현하고 우주를 창조한다”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것, 믿는 것을 현상계에 이루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고 상상하고 있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는 잠시라도 불행·재난·병고 등 진리에 없는 것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밝고 원만하고 환희 넘치는 부처님의 공덕생명이 자신의 생명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지 않고 염불하고 염송하는 것이 기도고 자기 삶을 잘 가꾸어가는 불자의 자세이다. 진리를 생각할 때 평화가 나타나고 고난을 생각할 때 불행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그 대상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기도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양자장을 물질화시키는 당체가 인간의 의식이듯이,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한한 공덕생명[空]을 현실적으로 현현시키는 힘은 자신의 마음인 의식이 그 사실을 느낄 때이다. 마음에 있는 것이 느껴질 때 이루어진다. 성취되었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혜담 스님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북쿄대(佛敎大)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선우도량 공동대표,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불광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불광법회 선덕, 각화사 회주로 있다. 주요 저서로 『혜담 스님의 반야심경』,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 등이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