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깃든 치유적 에너지
『노래하는 뇌』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와이즈베리 刊, 2023 |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는 노래와 만났다. 대학 시절 좋아하던 노래였다. 류형선 작사, 작곡의 민중가요, <그대 눈물 마르기 전에>라는 노래다. 두 주먹 꽉 쥐고 부르는 전형적인 투쟁 가요가 아니라, 차분하고 서정적인 노래였기 때문에 더욱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잃어버린 적도 없는 소중한 벗을 언젠가는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는 오래전에 잃어버렸는데 내가 찾고 있지 않았던 벗을 제발 찾아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벗이여 슬퍼마오 젖은 소매 마를 날 있으니 온누리 마른 풀 저마다 소리쳐 푸른 날 있으니 벗이여 슬퍼마오 내 항상 그대 곁에 있으니 이 시절 언제나 넉넉한 미소로 그대 곁에 있으니 앞서간 벗들의 피눈물 그리움 따라 기꺼이 내딛는 걸음 풀어진 그대의 허리띠 내 다시 묶어주리니 벗이여 슬퍼마오 그대의 눈물 마르기 전에 이 아픔 모두어 흐느낌 모두어 밝아올 새날 있으니.” 나는 이 곡을 슬플 때마다 듣고, 슬퍼지려 하기 전에 얼른 듣기도 하고, 피아노로 연주해보기도 하고, 친구에게 내가 직접 불러주기도 하며 힘든 시절을 버텨냈다.
아름다운 노래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취약성을 가슴 깊이 인정한다는 점이다. 남들 앞에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의 아픔을 노래가 나 대신 표현해줄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우리가 사회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동안 감춰야만 하는 슬픔, 분노, 외로움, 절망을 노래는 기꺼이 표현한다.
이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노래들이 우리를 끝내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순간들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음악교수 이안 크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 이제 벼랑 끝에는 두 명의 내가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나를 이해하고,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아는 또 다른 내가 옆에 있는 것이죠.”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의 슬픔을 정확히 짚어주며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내 깊은 속내를 들킨 듯한 놀라움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절친을 만난 듯한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인간은 희로애락애오욕, 그 모든 감정들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 연대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슬픔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강렬하게 묶어주는 감정의 끈이 아닐까. 곡진한 슬픔의 언어로 물결치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 슬픔만으로도 이 사람은 나의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간절한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복잡한 나라는 사람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해주니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는 더욱 커다란 힘이 있다. 어렸을 때는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은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사로잡는 노래’가 있었다. 바로 교가였다. 초등학교 때 무려 6년간 불렀던 교가를 마지막으로 부르는 졸업식에서는 얼마나 눈물이 펑펑 솟아나오던지. “날마다 넘는 고개 만리재 고개”로 시작하는 구슬픈 교가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느낌, 우리가 함께 이렇게 모여서 오들오들 떨면서 운동장에서 교가를 부르는 일은 마지막이라는 느낌. 모든 교가에는 그런 힘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우리가 함께라는 느낌 말이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은 ‘우리’라는 느낌, ‘함께’라는 느낌,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힘으로써 공동체적 감각을 느낀다.
『노래하는 뇌』의 저자는 노래를 통해 모르는 사람과 연결되는 듯한 이 기분이 회복 과정을 도와준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이 노래를 통해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치유의 열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아픔을 노래한다’는 것은 아픔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픔을 승화시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노래의 힘이니까. 궁극적인 위로의 힘, 때로는 세상의 수많은 알록달록한 차이들을 배우는 깨달음의 힘, 멜로디와 가사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선물하는 감동의 힘. 그 모든 것들이 음악에 깃든 치유적 에너지다.
정여울
작가, KBS제1라디오 <이다혜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저서로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문학이 필요한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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