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사인연 성취를 위한 최고의 교재
『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나아가는 삶과 쓸려가는 삶의 기준
삶은 여정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나아가는 길과 쓸려가는 길 중 어떤 길을 걷고 있나요? 두 길의 차이점은 목적의 유무입니다. 목적지가 없는 여정은 아무리 좋은 풍경을 보며 가더라도 결국 쓸려 다니는 것이기에 그 길 끝은 혼란뿐입니다.
모든 불자의 롤모델인 붓다께서는 삶의 목적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 있음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서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를 확장해 해석하면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성불하기 위함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중생은 알든 모르든 이미 성불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각에 대한 유무가 성불로 착실히 나아가는 보살과 길 잃고 쓸려 다니는 중생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중생이 보살로 화생하고, 보살이 성불을 완성하는 원동력은 보리심입니다. 일대사인연이라는 성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보리심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불교 역사상 보리심을 교육하는데 가장 훌륭한 일타 강사 중 한 분은 인도의 샨티데바(Śāntideva, 687~763) 보살입니다. 그는 『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이라는 법문을 통해 보리심 수행의 입문부터 완성까지의 모든 과정을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샨티데바 보살의 삶은 다른 보살들의 삶과 달리 매우 독특합니다. 그는 인도에서 천재들만 있기로 명성이 높았던 나란다 대학교에서 먹고 자기만 하고 수업에 잘 나오지 않는 문제 학생이었습니다. 그를 내쫓고 싶었던 동기들은 나란다 전통의 무차설법대회에서 샨티데바 보살을 법사로 추천하면 그가 설법하지 못해서 도망가리라 생각하고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샨티데바 보살은 무차설법대회에서 유려하게 보리심(菩提心) 수행법을 설했고, 바로 그 내용이 『입보살행론』이라는 논전입니다. 샨티데바 보살은 놀고먹는 것 같은 삶을 통해 어떤 원리로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인드셋과 동기 그리고 올바른 방법입니다. 샨티데바 보살은 『입보살행론』이라는 논전을 통해 보리심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담아냅니다. 원보리심(願菩提心)으로 범부의 마인드셋을 보살의 마인드셋으로 변화시키며, 보리심의 공덕을 보여줌으로써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원하는 범부의 마음에 동기를 부여합니다. 마지막으로 행보리심(行菩提心)인 6바라밀의 실천법으로 성불로 나아가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모든 내용이 바로 보리심 일타 강사의 성불 비법인 『입보살행론』에 담겨 있습니다.
범부의 마인드셋을 혁신하는 원보리심
“보리심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면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나니 발원하는 원보리심과 발원한 것을 실행하는 행보리심이나이다. 어디를 가고 싶어 하는 것과 실제로 가는 것이 다르듯이 현명한 이들은 이 두 가지 보리심의 차이를 순서대로 알아야 하나이다.”
보리심은 일대사인연을 추구하기를 희망하는 원보리심과 그 구체적인 보살 수행법인 행보리심으로 구분됩니다. 이 중 발심이라고 불리는 원보리심을 마음에 품으면 이를 원동력으로 범부는 보살로 화생하는데, 이 순간부터 마인드셋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순간 윤회의 감옥에 갇혀 있는 불쌍한 중생이라도 선서의 아들인 불자라 불리고 신들과 사람들에게 예경의 대상이 되나이다.”
왕자라고 해도 갓 태어난 아기 왕자는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혼자서는 생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왕자라는 신분 때문에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하고 왕자님이라고 부르며 예를 갖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범부가 발심했다고 해서 갑자기 위대한 공덕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법왕의 아들인 법왕자로 화생했기에 눈 밝은 존재들은 그 누구도 보살을 무시하지 못하게 됩니다. 발심했다면 이제 자기 자신을 고귀한 가문의 법왕자로 여겨야 합니다.
보리심에 욕심을 내야 하는 이유
왕가의 핏줄이라고 항상 인성과 재능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천성이 악하거나 게으른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왕자라는 신분에 걸맞은 힘이 갖추어질 때까지는 철저한 법왕의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동기라는 정진의 원동력이 필요합니다.
보리심을 지녀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신의 모든 고통을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둘째, 즐거움과 평화 그리고 행복의 원천입니다. 셋째, 일체중생에게 이고득락을 선물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즉 나와 세상의 이고득락을 이루는 원동력이 바로 보리심 수행입니다.
“큰 두려움이 있을 때 힘 있는 이에게 의지하듯, 보리심에 의지하면 극중한 악업을 지었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보리심에 의지하지 않는가.”
고통의 열매를 맺는 악업이라는 씨앗을 태워버리는 것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오직 최상의 보리심을 지니고 실천하는 것으로만 모든 악업의 속박을 끊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꼭 보리심의 마음을 갈고닦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보리심을 일으킨 뒤에 무수한 중생들을 해탈시키는 일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보리심을 바르게 지녀 실천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가 잠을 자거나 방일에 빠져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더라도 [보리심을 가진] 공덕의 힘에 의해 허공 같은 복덕이 끊임없이 생기나이다.”
샨티데바 보살이 게을러 보였지만 최고의 깨우침을 얻은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 보리심 수행 덕분입니다. 보리심을 갈고닦으면 행복의 열매를 맺는 공덕의 씨앗이 끊임없이 무한하게 생겨납니다. 이 공덕이 있을 때 나의 즐거움이 꽃피어나고, 중생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강렬한 발원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고 하면 흔히 이런 오해를 합니다. ‘보리심을 원하는 마음도 지나치면 집착이고 욕심 아닐까?’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은 이런 오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리심은 욕심을 제거하는 욕심이기에 욕심이 아니다.”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보살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이 보리심으로 보살행의 원동력인 동기를 지속해 재충전하면 됩니다.
보리심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 – ‘6바라밀 + 1(정념)’
논전의 시작은 보리심에 대한 찬탄으로 시작됩니다. 보리심의 이익을 보여줌으로써 원보리심(보리심을 원하는 마음)을 지닌 초심 보살의 탄생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샨티데바 보살은 초심 보살의 구체적인 보리심 수행법인 행보리심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 부분이 논전의 중후반부에 해당됩니다.
행보리심에 해당되는 목차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2장 「죄업참회품(罪業懺悔品)」과 제3장 「보리자량품(菩提資糧品)」은 보시바라밀의 실천이 그 내용의 중심이 됩니다. 제4장 「불방일품(不放逸品)」은 정념을 바탕으로 한 지계바라밀을 설명하고 있고, 제5장 「억념자각품(憶念自覺品)」은 모든 수행의 기초인 정념 수행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제6장 「인욕품(忍辱品)」에서는 인욕바라밀을, 제7장 「정진품(精進品)」에서는 정진바라밀을, 제8장 「선정품(禪定品)」에서는 선정바라밀을, 제9장 「지혜품(智慧品)」에서는 지혜바라밀을 다룸으로써 보살의 올바른 수행법인 6바라밀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제10장 「회향품(廻向品)」은 앞서 실천한 원보리심 수행과 행보리심 수행의 공덕을 회향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조망한다면 제1장은 원보리심, 제2장부터 제9장까지는 행보리심, 제10장은 보리심 회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 1935~) 존자는 『입보살행론』을 설명하시면서 “보리심에 관한 모든 경론 중 최고의 가르침 중 하나”라고 찬탄하십니다.
남방불교 전통에서는 불교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보다 부처님의 명령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불자들도 이러한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일대사인연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 이것을 부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 사소한 쾌락에 휩쓸려 다니며 헤매는 삶을 멈추어야 합니다. 원보리심이라는 나침반을 수지하고, 행보리심의 지도를 따라가며, 이 모든 공덕을 일체중생의 성불에 회향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고귀한 불보살의 가문에 어울리는 불자로 화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붓다의 명령입니다.
원빈 스님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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