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행복이란 무얼까, 영화 '소울'

영화 <소울>을 보고 
평범함 속에 있는 진리를 찾아서


영화 대부분은 픽션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현실과 무관한 내용이 많아서 즐겨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지인이 <소울>이라는 애니메이션은 환상 그 이상의 울림이 있다고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소울>은 다문화가 잘 녹아 있다. 대다수의 애니메이션은 백인 주인공이 두드러지지만 이 영화의 장소는 뉴욕이며, 주인공은 흑인이다. 음악 역시 플롯의 연속성을 위해 재즈라는 장치를 두었다.

영화 <소울>의 전반부 주제는 어머니와 자식 간의 갈등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소재가 흥미롭다. 신체를 가진 ‘나’와 영혼만을 지닌 ‘나’와의 갈등이다. 사실 삶은 타인과 나의 갈등보다 나와 나 자신의 갈등이 더 원초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내면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정신을 차려 보니 무빙워크에 태워져 사후 세계인 ‘그레이트 비욘드’로 승천하고 있음을 알게 된 조. 마구 몸부림치다 무빙워크에서 뛰어내리는데, 이번엔 탄생 이전의 세계 ‘그레이트 비포’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탄생을 준비하는 새로운 영혼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곳은 카운슬러 제리가 어린 영혼들을 돌보며 다양한 체험으로 탄생의 열쇠가 되는 ‘불꽃’이라는 특성을 얻어 영혼들의 탄생을 돕는 세계다. 조는 그곳에서 평소 무엇에도 흥미가 없고 관심도 두지 않는 ‘22’를 만난다. 22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레이트 비포를 떠나 탄생을 맞이할 의욕조차 없다. 그래서 공연을 위해 환생하고자 하는 조와 거래에 나선다. 바로 불꽃을 찾으면 지구로 가는 배지를 조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몰래 지구로 다시 돌아온 그들. 하지만 조와 22는 서로 영혼이 뒤바뀐 채로 살아난다. 22의 영혼은 조의 육체로 들어가고, 조의 영혼은 고양이 몸속으로 들어간 상황. 22는 조의 삶을 대신 넘겨받는다. 거리를 걷고 피자를 먹거나 미용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낙엽이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보며 여태껏 몰랐던 삶의 기쁨을 맛본다. 그 과정에서 22의 배지가 완성되고 조는 재즈 밴드 공연에 맞춰 무사히 환생해 성황리에 공연을 끝낸다. 조 일생의 목표였던 재즈에 푹 파묻힌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조는 뭔가 모를 허탈감과 공허함에 휩싸인다. 22가 자신의 정장에 넣어둔 나뭇잎과 도넛을 보며 22와의 추억을 되새기던 조는 조금씩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조는 그레이트 비포로 되돌아가 외톨이가 된 22의 영혼을 찾아낸다. 22에게 나뭇잎을 전하며 겨우 22의 의욕을 다시 살려낸 조. 배지를 돌려주고는 새로운 탄생을 누릴 수 있도록 22를 지구로 내려 보낸다. 여기서 22는 지구로 내려가고 조는 다시 죽음을 맞이하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카운슬러가 조의 위대한 행동에 감탄하며 조에게도 다시 환생할 기회를 줘 그 역시 지구로 돌아오게 된다.

이 영화는 전생과 후생이라는 긴 억겁의 세월을 통해 삶은 자신을 찾기 위한 모험의 여정임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영화는 ‘나뭇잎’과 ‘도넛’이라는 구체적인 현상의 마주함이다. 돈, 명예, 권력이 있든 없든 간에 누구나 ‘나뭇잎’과 ‘도넛’을 미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삶의 의미와 행복을 꼭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 영화는 삶의 참된 행복이나 의미는 어쩌면 ‘그’ 나뭇잎과 ‘그’ 도넛을 향유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툭 던진다. 감각을 통해 우리가 보는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인연으로 모여 있고, 또한 흩어지는가를 이해한다면, 삶의 무상성 속에서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아마 그 끊임없는 순환은 부처님이 삼라만상의 진리를 깨달음으로 지극한 자리에 올라 윤회에서 벗어났듯이 뭇 영혼은 평범한 일상에 숨은 진리를 하나씩 응집해가며 마침내 그 역시 지극한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이치를 묵묵히 전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많은 에피소드와 소소한 장치들을 통해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진정한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세상을 대할 때 세상은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는 것. 어찌 보면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화들의 익숙한 클리셰다.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왠지 구태의연하다. 그런데 흔히 쓰는 그 말 속에 또한 진리가 스몄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유다.

우리는 ‘하나’의 나뭇잎과 ‘하나’의 도넛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향유하는가? 삶의 의미와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는 것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로 가늠된다. 그것이 바로 삶의 기쁨과 슬픔의 역량을 가르는 기준점일 터다.

배수선
프리랜서로서 차와 사찰 전통 음식 강의를 하며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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