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에 가면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다

절경에 가려진
설악산 신흥사의
부조 장식들

곽동해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극락전 보조 기단 우측 탱주의 부조 장식, 모란과 해태상

사철 색다른 옷을 갈아입는 산세의 아름다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또 찾는 곳이 설악산이다. 그 절세가경 호젓한 산경 속에 예스러운 신흥사가 자리한다. 기암절벽 등에 업고 동해 일출 향해 고즈넉이 자리한 천년가람이라! 이곳을 찾는 이는 쉽게 설악의 절경에 심취해 정작 신흥사는 뒷전이기 쉽다. 그러나 필자는 근자에 신흥사를 수차 답사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몇 가지 독특함을 만났다.

백두대간 중추 외설악동에 자리한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낙산사, 백담사, 봉정암 등 큰절들을 말사로 두고 있을 만큼 신흥사의 불격은 깊다. 신흥사의 초창은 신라 652년 자장율사가 조성한 ‘향성사’였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화재의 불운을 맞았다. 그 후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다시 이곳에 선정사를 중창했다. ‘설악(雪岳)’이란 석가세존께서 6년 동안 선정삼매 끝에 성도한 설산(雪山)의 다른 이름이다. 그 설산의 선정(禪定)을 기리려 세운 절이 곧 선정사인 것이다. 이후 선정사는 오랜 세월 동안 법등을 이어왔고 임병양란 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1642년 큰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외설악동에 자리한 신흥사는 652년 지장율사에 의해 ‘향성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특히 이 절은 조선 태조대왕부터 영조대왕에 이르는 대대손손 선대왕과 왕후의 기제를 지낸 곳으로 이전에는 특이하게도 절 이름에 귀신 ‘신(神)’자를 썼다.

신흥사에 붙여진 귀신 '신(神)'자
오늘날 신흥사의 한자명은 ‘新興寺’이다. 그러나 불과 29년 전만 하더라도 ‘神興寺’라 칭했다. 1644년 사찰이 재차 재건되면서부터 붙은 이름이다. 귀신 ‘신(神)’ 자를 전통 사찰에 붙인 사례가 신륵사(神勒寺)를 제외하고는 전무할 만큼 희귀하다. 분명 귀신 ‘신(神)’ 자는 사찰 이름으로 부적절한 글자이다. 석가세존도 설산수도 중 마구니[귀신]로부터 훼방을 물리치고 성도하셨다. 즉 호법으로 물리쳐야 할 잡귀를 오히려 흥하게 한다는 의미의 ‘신흥사(神興寺)’인 것이다. 그 속에 어떠한 연유가 담겼을까? 필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오늘의 신흥사에서 찾았다.

어느 날, 세 스님이 똑같은 꿈을 꾸었다. 화재로 폐허가 된 절터에서 비범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르기를 “이 터는 만대에 이르도록 삼재(三災)가 오지 않고 큰 불법의 도량이 되리라” 하였다. 동상 현몽의 세 스님은 중창을 시작했다. 1647년 절이 완공되자 신인이 영원히 흥할 수 있는 절터를 잡아주었다 하여 절 이름을 ‘神興寺’로 정했다.

이상은 절에 전해지는 신흥사 명칭의 유래다. 현몽 속 그 신인은 누구인가? 잡귀가 아닌 선귀신(善鬼神: 불법을 수호하는 선량한 귀신)이 분명하다. 극락보전 앞 보제루 내부에는 신흥사와 오랜 세월을 같이한 성보문화재들이 보관되고 있다. 그 가운데 금고는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것이다. 금고 배면 내부 중심에 백서(白書)의 ‘神’자가 또렷이 남아 있다. 즉 금고의 울림이 신(神)을 위한 의식의 소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 이름에 ‘神’자를 쓰게 된 까닭을 추정할 수 있는 단초다.

극락보전 계단 소맷돌의 귀면상과 삼태극 문양 부조. 태극 문양은 일반적으로 궁궐과 종묘, 능원의 장식으로 사용된다.

신흥사와 조선 왕실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부조 장식들
극락보전 기단 우측 탱주에는 특이한 부조 장식을 볼 수 있다. 여느 기단과는 달리 탱주석을 크고 넓게 다듬고 그 전면에 모란과 해태상을 조각한 것이다. 화강석에 새긴 얕은 릴리프 조각으로 오랜 세월에 다소 풍화되었지만 뚜렷한 형상과 투박한 질감이 오히려 곰살갑다.

상부에 새긴 부조는 만개한 모란이 굵은 줄기에서 잎과 어우러져 피어난 모습이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한다. 조선시대에는 궁궐 장식화의 소재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곧 모란화였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궁궐에서는 모란 병풍이 다수 그려졌다. 영·정조 시대에 들어서는 화려하게 묘사된 오채의 모란 병풍이 국상(國喪)의 재단에 설치되었다. 상·장례뿐만 아니라 신주를 모시는 종묘와 왕릉의 정자각에도 반드시 모란 병풍을 둘렀다. 그 소거를 『국조상례보편』 의궤에서 찾을 수 있다. 모란의 상징이 부귀영화의 의미를 초월하여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국가적 차원의 대길상화로서 그 위상이 확대되었다는 내용이다.

극락보전 기단 우측 탱주 상부에 새겨진 모란과 해태상 세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과 화재와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인 해태상은 조선시대 궁궐 장식화와 부조로 사용되는 소재로 조선 왕실과 신흥사와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모란은 사찰 장식 문양으로서는 희귀한 소재다. 화성 용주사 대웅전과 전남 미황사 대웅전 등의 단청 소재로 장식된 사례가 전할 뿐이다. 따라서 신흥사 기단의 모란 부조 장식은 조선 왕실과 신흥사와의 밀접한 개연성을 보여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보제루 내부에 있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후의 기일을 새긴 국기일(國忌日) 현판

신흥사와 조선 궁궐과의 긴밀한 관계에 더욱 심증을 갖게 하는 것은 하부에 새겨진 해태상이다. 해태의 본래 이름은 해치다. 이 해치상은 등에 특유의 지느러미가 돋아났고, 오른발로 보주를 밟은 모습이다. 고개를 우로 돌려 주시하는 동세가 광화문 앞 해태상을 연상케 한다. 풍화된 화강암의 질감과 미소를 머금은 얼굴 표정에서 익살과 고격의 조형미가 배어난다. 해치는 상상의 동물로서 시비와 선악을 판단한다. 중국 문헌 『이물지(異物志)』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으로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면 악한 사람을 뿔로 받아 해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재와 재앙을 막아주는 신수(神獸)로 여겨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등장했다. 또 정의의 편에서 시비를 가림으로 조선시대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加飾)되기도 하였다. 즉 해치는 조선 궁궐 화재 예방의 수호신이자 정의의 사신인 것이다. 지금까지 해치상이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 장식된 사례는 조사된 바 없다. 불교 사원 초유의 이 해치상은 조선 궁궐에서 신흥사로 파견되어 극락보전을 수호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격이다.

극락보전을 오르는 계단 소맷돌에도 왕실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특이한 부조장식이 또 하나 있다. 석계 좌우 소맷돌 외면에 귀면·삼태극·안상(眼象) 등이 새겨졌다. 귀면상은 불단이나 창호 궁창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식이다. 하지만 삼태극은 사찰 장식으로는 역시 희귀 소재다. 태극 문양은 궁궐과 종묘, 그리고 능원의 장식으로 사용된 것이다. 특히 조선 왕릉에는 홍살문과 정자각 단청 문양에 반드시 태극 문양이 나타난다. 사찰에서는 정조임금이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용주사 대웅전 계단 소맷돌에 새겨진 태극 문양이 또 하나의 희귀 사례다. 따라서 태극 문양은 선대왕과 왕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식 문양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 계단 소맷돌에 새겨진 태극 문양 역시 이러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극락전 앞 보제루에 있는 금고의 앞면과 뒷면. 정조 임금 때 조성된 금고의 뒷면(아래) 중심에 흰 글자의 귀신 신(神)자가 또렷이 남아 있다.

현재 보제루 내부에는 신흥사 창건 이후 역사를 알 수 있는 다양한 현판이 전한다. 그중 조선의 역대 왕과 왕후의 기일을 새긴 국기일(國忌日) 현판은 이 절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결정적 자료다. 정조임금 초기에 조성된 이 현판은 태조대왕부터 영조대왕까지 21대 국왕과 왕후의 기일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즉 신흥사에서 해마다 선대왕과 왕후의 기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명으로 붙여진 ‘신(神)’ 자는 곧 역대 조선 국왕 및 왕후의 신위(神位)와 깊은 개연성을 시사해준다. 17세기 중반에 중창된 신흥사는 정조대왕 치세까지 국기일 제사를 거행한 사찰이었다. 따라서 “신(神)이 흥(興)한다”는 절 이름은 곧 역대 조선 국왕의 혼신(魂神)이 흥하기를 기리는 의미에서 지은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신흥사 창건 전 세 스님이 동시 현몽했던 신인(神人)은 곧 조선의 선대왕의 혼신이었던 것이다.

곽동해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종과 단청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단청』,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 『사찰에서 만나는 불교미술』, 『범종』 등이 있고, 「한·중·일 종의 조형 양식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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