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있을까? | 불교와 생명과학

무상(無常)한 생명현상

유선경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작용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어떤 생명체나 생명현상도 사멸할 때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나 생명현상은 그들 각각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환경이 바뀌면 생명체에 크고 작은 변이가 생기고 이런 변이는 환경에 다시 영향을 미쳐 환경을 변하게 한다. 변화된 환경은 변이된 생명체에 다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다시 환경으로 향한다. 생명체와 환경과의 끝없는 상호 의존은 이 생명체가 소멸할 때까지 계속된다.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 의존 관계 자체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한다. 생명체와 환경 조건이 서로 작용할 때마다 그들의 상호 의존 관계의 정도나 내용이 매 순간 달라진다. 이차원적 상호 관계가 아닌 마치 나선형 계단 구조와 같은 끊임없이 변하는 상호 의존 관계를 연상할 수 있겠다. 순간순간 변하는 생명체와 환경, 또 그들의 관계는 어떤 생명체나 생명현상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환경 조건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고 소멸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붓다의 통찰인 연기(緣起)의 가르침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생명 현상
그 수많은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머무는 순간이 있을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조건이 얼기설기 겹쳐 변하는 형국에 그 어떤 조건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에 의존하는 모든 생명체나 생명현상은 고정불변하지 않고 언제나 변하는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누구나 잘 알 듯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환경과 상호 의존하며 시시각각 변이하고 있다. 여기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환경이란 우리를 포함한 조건들로 생각하면 된다. 만약 생명체가 환경과는 상관없이 존재한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축출해 박멸하기는 매우 쉬웠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환경과 아무런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생존한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렇게 매 순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환경에 상호 의존해 연기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붓다는 무상(無常, impermanence)의 법칙이 연기법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생명체 구조의 변화
생명체 안을 살펴보면 기관들, 조직들, 세포들, 그리고 분자들이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같은 상태에 머무는 것은 없다. 생명체의 기관과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재생 과정(turnover)을 통해 오래된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사람의 경우 위 내벽 세포, 피부 세포, 간세포, 뼈조직 세포, 뇌신경 세포, 백혈구, 적혈구 등 신체의 모든 세포들이 짧으면 몇 시간에서 길면 몇 달 사이에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어 그들의 조직과 기관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세포를 구성하거나 세포 안에 있는 단백질 분자들은 몇 분에서 몇 시간마다 새로운 단백질로 교체된다. 대사 분자들은 0.1초에서 1초마다 새 분자로 교체되고, 새로운 대사 분자들은 서로 작용해 에너지를 만든다. 또한 대부분의 RNA 분자들은 약 두 시간마다 새로운 RNA 분자들로 교체되고, DNA 분자들은 그 분자를 가지고 있는 세포가 새 세포로 교체될 때 함께 새 DNA 분자들로 교체된다. 또한 유전자 발현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전사 분자들(transcription factors)이 0.01초에서 0.3초 안에 DNA 분자들에 붙는다. 그리고 DNA에서 RNA가 만들어지는 전사(transcription) 과정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DNA나 RNA 분자들은 단백질의 작용으로 일부 분자들이 잘려 나가 없어지는 변화를 겪기도 한다. 나아가 R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번역(translation) 과정이 일어나며, 단백질에 여러 종류의 분자들이 달라붙기도 한다. 지금까지 기술한 것은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생명체들은 그들의 가장 작은 구성 단위인 분자선상에서조차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분자로 신속히 교체되고 이동하고 다른 분자들과 접촉하는 ‘분자들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 그 ‘분자 소용돌이’ 안에는 오래된 분자들과 새로운 분자들 간의 교체, 분자들 간의 접촉으로 일어난 분자들의 이동이나 분자들의 생성과 소멸의 사건 등 분자들이 요동치며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분자 소용돌이 밖의 환경도 분자 소용돌이 내부에 영향을 미쳐 분자 소용돌이를 변화시킨다. 이렇듯 일시적으로 생겨난 분자 소용돌이는 소멸 전까지 수없이 많은 환경 조건과 상호작용하며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현상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러한 ‘분자 소용돌이’가 분자선상에서 생명체를 설명하는 생명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분자 소용돌이 현상은 그 어떤 생명체도 일주일 전, 하루 전, 한 시간 전, 또는 일 분 전의 생명체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보여준다. 분자 소용돌이는 매 순간 변한다. 그러면 이런 분자 소용돌이는 실재할까? 다시 말해, 분자 소용돌이는 이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역동적인 작용에서 창발되어 이들과는 독립적인 실체로서 존재하는가? 분자 소용돌이는 분자들의 수많은 관계로 구성되어 있을 뿐, 이 관계들에서 우연히 창발되어 이들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로 실재하지 않는다. 분자 소용돌이는 이러한 관계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다. 분자들 사이의 관계들과 동떨어져 새로이 창발된 ‘분자 소용돌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성되어 변화하고 소멸하는 분자들과 분자들 사이의 관계의 집합인 분자 소용돌이, 즉 생명체나 생명현상은 변화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을까? 또 그 방향성에는 어떤 필연적인 발전이나 향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언뜻 생각해도 분자 소용돌이는 시공의 좌표 어떤 특정한 점을 향해 진행되는 것 같지 않다. 분자 소용돌이는 발전이나 향상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것 같지도 않다. 조건에 의해 생겨났다 조건들과 상호 의존하며 변화하다 조건에 의해 사멸할 뿐이다. 방향성이나 의지가 담긴 발전이나 향상이란, 자신이 일종의 분자 소용돌이의 집합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인간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생각하고 해석한 잘못되고 부질없는 바람일 뿐이다. 생명체와 생명현상에는 정해진 방향성이 없다. 그렇게 내재된 자성(自性)은 없다.

그런데 분자 소용돌이에 방향성이 부재하다는 사실은 이 소용돌이가 지금 바로 다음 순간 시공의 좌표 어떤 점에 위치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바로 다음 순간 분자 소용돌이(t+1)의 진행 상황이 지금 분자 소용돌이(t)의 진행 상황이나 환경 조건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우연히 다음 순간 새로이 생긴 분자 소용돌이라면, 다시 말해 분자 소용돌이의 진행 상황이 순전히 비결정론적이면, 우리는 분자 소용돌이(t+1)를 전혀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에 상호 의존하는 분자 소용돌이(t+1)의 진행은 그렇게 우연한 비결정론적 현상은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그 진행 방향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있는가 
그렇다면 방향성이 없는 분자 소용돌이는 우리도 모르는 자연의 질서나 법칙에 의해 법칙 필연적으로 결정론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이라는 뜻인가? 질서나 법칙이란 모든 사물을 아우르는, 즉 모든 사물이 따르는, 어떤 것이어서 변하지 않아야 한다. 변하는 질서나 법칙이라면 모든 사물에 적용되는 질서나 법칙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없다. 역사상 생명현상과 관련되어 거론된 법칙은 모두 변화하고 대체되었다. 질서나 법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무상한 자연에서 항상한 질서나 법칙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방향성을 부재한 분자 소용돌이는 법칙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자 소용돌이(t+1)를 정확히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매 순간 변하는 분자 소용돌이로 표현되는 생명체와 생명현상은 우연도 아니고 필연도 아닌, 무질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법칙적이지도 않은, 나아가 비결정론적이지도 결정론적이지도 아닌, 연기의 현상으로서 여여(如如)할 뿐이다. 무상한 자연현상은 모든 이분법을 거부하며 연기한다.

유선경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세포분자생물학과 박사 과정 및 텁스대학교에서 철학과 석사 과정을 수학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과학철학과 과학철학 및 인지과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철학』과 홍창성 교수와 공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가 있고 홍창성 교수와 함께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를 영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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