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간 대화’의 추이와 전망 | 탈종교 시대 종교 간 대화

‘종교 간 대화’의 추이와 전망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종교 간 대화’란?
‘종교 간 대화(inter-religious dialogue)’란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대화의 노력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종교의 만남에서 시작해 상호 이해의 시도, 그리고 구체적인 대화에 이르는 일련의 상호 작용을 총칭한다. 한편 종교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대화와 교류의 노력을 협의의 ‘종교 간 대화’라 정의할 수도 있다.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 간 대화는 종교의 만남이 활발해진 근대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서구 국가들이 비서구 국가들을 전면적으로 접하면서, 기독교와는 다른 다양한 종교를 마주했고, 이를 계기로 광의의 종교 간 대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종교의 교섭이 없지는 않았지만, 만남은 갈등과 긴장으로 귀결되기 쉬웠다. 즉 이웃 종교를 이해함으로써 종교의 평화적 공존을 지향하는 현대적 의미의 종교 간 대화는 드물었다. 그러니 명실상부한 대화는 근대 이후 등장했고, 특히 대화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사라지면서 가능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서구에 의해 종교들의 만남과 교류가 촉발된 탓에, 대화가 기독교 중심적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이 대화를 주도했고, 심지어 초기에는 기독교의 교리적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평등한 국제 질서의 형성과 함께 종교의 자유가 확산되면서, 종교 간 대화 역시 다원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그간의 대화 노력이 의미 있는 결과를 실제로 가져왔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대화의 시도 이면에 종교의 상호 이해와 공존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의 경우에도 종교 간 대화 노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되었다. 기독교가 주도적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다종교 상황을 반영해 활발한 대화와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져온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새롭게 ‘탈종교(脫宗敎)’ 현상은 지금까지의 종교 간 대화 지형에 심대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현대 사회와 탈종교 현상
‘탈종교’란 사회 전반이 종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추세를 의미한다. 탈종교 현상에는 종교적 교리나 세계관이 영향력을 상실하는 이른바 ‘세속화’와 종교를 아예 갖지 않는 ‘무종교의 증가’가 포함된다.

베버(Max Weber)가 근대의 큰 특징으로 세속화를 지목했듯이, 오늘날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의 제 영역은 ‘합리성’에 근거해 운영된다. 정치, 경제, 교육, 사법 등은 더 이상 종교적 교리나 세계관에 좌우되지 않는다. 즉 ‘성스러운’ 가치나 규범이 아닌, ‘세속적이며 합리적인’ 기준이 사회를 움직이게 된 것이다.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의미하는 ‘정교분리 원칙’이 대표적이다.

또 세속화 경향에 발맞추어 종교를 떠나거나 아예 갖지 않는 이들 역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퓨 리서치(Pew Research)’의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의 ‘무종교인’ 혹은 ‘비종교인’은 2007년 11.77%에서 8년 후인 2015년에 16%로 급증했다. 종교를 더 이상 삶의 핵심적 가치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45%가 무종교인이었다. 그런데 불과 10년 후인 2015년에는 그 비율이 56%까지 늘었다. 1984년 이후 꾸준히 종교 분야의 통계를 파악해온 한국갤럽의 조사도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한국갤럽에 의하면 무종교인의 비율은 2021년 드디어 60%에 달하게 된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2010년을 전후해 인구의 절반을 넘기고, 그 후에도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무종교인의 급증은 그간 이루어진 종교 간 대화에도 필연적으로 지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무종교인의 증가’와 종교 간 대화
무종교인의 증가 현상과 종교 간 대화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종교인이 누구인지를 살펴야 한다. 일견 무종교인은 단일한 집단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내적인 동질성은 높지 않다. 이 개념이 무신론자는 물론, 종교를 잠시 떠나 있는 냉담자, 그리고 종교 단체에는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종교적 세계관을 유지하는 층(Believing without Belonging)까지, 다채로운 이들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태도 역시 철저한 무관심에서부터, 공감적 태도, 그리고 확고한 부정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요컨대 무종교인은 종교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서로 이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한국갤럽의 조사는 무종교인이 급증했다는 사실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점을 확인시켜 준다. 우선 연령이 낮을수록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았다. 젊은 층(19~29세)의 무종교인 비율은 2021년의 경우 무려 78%에 달했다. 또 종교를 갖지 않는 주된 이유가 종교에 대한 반발 혹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데에서 종교 자체에 무관심하다는 것으로 변화했다. ‘무관심’으로 응답한 비율은 1997년 26%에서 2021년 54%로 증가했다. 또 호감을 느끼는 종교가 없다고 밝힌 무종교인의 비율 역시 2004년의 33%에서 2021년 61%로 증가했다.

60%라는 무종교인의 높은 비율과 함께 사회가 종교에 무관심해진다는 사실은 종교 간 대화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대화의 주체와 방식, 그리고 목적과 의미라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무엇보다 과반이 넘어버린 무종교인을 고려하지 않는 대화는 한계가 뚜렷하다. 즉 종교 간 대화가 유용해지려면 무종교인들이 반드시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종교 ‘간의’ 대화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종교에 ‘관한’ 모두에게 열려 있는 대화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화의 목적과 의미 역시 변해야 한다. 예전에는 주로 종교의 상호 이해와 공존에 방점이 있었다면, 무종교인이 폭증한 상황에서는 ‘과연 종교가 개인과 공동체에 필요한가’라는 종교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꼭 다루어져야 한다. 요컨대 종교 간 대화는 종교에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루며, 구성원들 모두를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종교에 관한 대화’를 실현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렇지만 다수인 무종교인의 참여 없이는, 종교 간 대화가 지금껏 추구했던 의미와 목적마저도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무종교인이 누구인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종교의 미래는?
‘종교 간 대화’ 보다 정확하게 ‘종교에 관한 대화’는 종교들의 상호 이해를 비롯해 종교의 근본적인 의미와 역할을 재발견하게 만듦으로써, 종교가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되는데 촉매가 될 수 있다. 무종교인이 종교를 향해 품는 다양한 온도의 ‘무관심’은 종교의 부정적 행태나 폐해에 경종을 울리면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종교의 새로운 역할을 찾도록 채근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탈종교화는 피하기 어렵다. 세속화와 무종교인의 증가는 지구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이슬람 국가를 포함해 세속화가 덜 진행된 사회들 역시 장기적으로 보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탈종교화는 종교 간 대화에 심대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종교 자체의 존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묻게 만든다. 다종교 사회이자, 동시에 어느 곳보다 탈종교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우리나라에서 이 물음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종교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도 우리 곁에 존재할까? 종교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출현은 가장 생생한 변화와 위기의 상징이다. 종교가 개인과 공동체에 위안과 행복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탈종교 현상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탈종교의 극단적인 심화는 종교의 소멸로 이어진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종교 간의 대화’가 ‘종교에 관한 대화’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는 종교의 미래를 가늠하게 만드는 시금석이 되리라 여겨진다.

성해영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사를, 미국 라이스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38회 행정고등고시(일반행정) 합격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있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공저), 『문명의 교류와 충돌 : 문명사의 열여섯 장면』(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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