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견해 | 탈종교 시대 종교 간 대화

인류 문명의 미래와 종교의 운명에 관한
불교의 견해

김응철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학부 교수


빅뱅(Big Bang) 이론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는 약 138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 46억 년 전에 태양계가 탄생했고, 약 37억 년 전에 지구상에 최초의 단세포 생명체가 등장했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는 크로마뇽인 등이 나타난 것은 약 4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등을 거치면서 현재의 인류가 형성되었다.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대략 신석기 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종교의 원형이 등장한 시기는 긴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매우 짧은 약 4,000여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 현상 또한 자연현상에 정령과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애니미즘(animism), 특정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하는 토테미즘(totemism), 범신론, 다신교, 일신교 등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불교에서는 연기론적 세계관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하는 인류가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가졌느냐에 따라서 세계는 변하고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관찰할 수 없는 큰 우주와 은하계, 그 속에서 먼지처럼 존재하는 태양계, 그리고 태양과 지구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류와 그들이 만들어낸 종교는 고정불변의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연기법으로 설하고 있다.

또한 인류와 각각의 인류들이 만들어낸 종교적 현상도 일정 기간 존속했다가 소멸해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모습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인류가 번성하고 있는 동안 그것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석연료의 과도한 소비로 인한 지구 온난화, 해수면의 상승, 기후의 급격한 변화, 인구의 과도한 증가 등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위협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인류가 형성한 집단적 지혜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불교는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류의 생존과 공동 번영의 실천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제로섬(Zero sum) 사회에서 과도한 인구 증가는 집단과 국가 간의 이익 갈등을 불러오고 이는 전쟁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이런 갈등과 전쟁의 와중에 종교가 별로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부 종교계가 앞장서서 전쟁을 부채질하고 확산시키는 악행을 벌이는 세태는 종교의 미래를 어렵게 만드는 우려할 만한 일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무신론자의 증가와 더불어 탈종교화, 반종교화 현상은 제도화된 종교들이 세계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향후 인류 문명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 예측한다는 것은 난해한 일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심화 학습이 가능한 인공지능과 이를 탑재해 운영할 수 있는 로봇의 개발은 새로운 사회 변화를 예고하는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 사회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을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하면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인류는 우주, 사회, 생명, 가족 등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으며 종교관의 변화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일반 사회의 구성원들은 종교가 제시하는 신념 체계에 반발하거나 부정하는 종교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미 인류가 축적한 과학기술적 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교들은 사라지거나 미신적 종교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이 더 이상 종교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 구성원들의 종교관의 변화에서 초래된 것이다. 기원전 약 2,000년경부터 서아시아에서 발달한 수메르와 바빌론 신앙, 아스텍의 태양신, 만주족이 믿었던 샤먼교, 고대 슬라브인들의 페룬 신앙 등은 현재 유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불교로 습합된 미트라교, 여러 종교의 교리를 결합한 마니교 등도 사라졌거나 소멸되는 과정에 있다.

2011년 미국의 노스웨스턴 대학과 애리조나 대학의 교수들이 참여한 연구에서는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체코, 핀란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9개국의 인구 조사 자료를 분석했는데 이들 국가들은 장차 종교가 소멸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약 10여 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무종교인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국가들도 있는데 대한민국도 여기에 속한다. 무종교인의 증가와 더불어 탈종교화를 넘어서서 반종교화의 현상도 일부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종교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또 영원한 것도 아니다.

지구촌에서 종교적 변화가 나타난 것은 결국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정 시대, 특정 사회를 지배했던 종교가 나타나는 계기는 뛰어난 종교 지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교가 사라지는 것은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선지식, 엘리트, 분야별 지도자, 그리고 학자들의 인식 수준과 변화는 인류 문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고, 종교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특정 종교가 대중화되고 그 사회를 주도해나가기 위해서는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고, 행복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보편적 방법의 제시가 필요하다. 종교의 존립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선택에 의해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부처님의 성도로부터 시작된 불교는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라는 가르침으로 자연 및 사회 변화를 바라보는 지혜를 제시했다. 그리고 12연기법의 가르침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설명했다. 또한 인간이 어떻게 지혜를 체득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는 사성제와 팔정도로 그 실천 방법을 제시했다. 삶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방법으로 다양한 선정 수행법을 개발했으며, 인류가 이익과 향상과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깨달음의 길과 지혜로운 실천적 삶을 보살행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불교가 이웃 종교들과 함께 협력해서 나아가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공동선(共同善)의 가치관과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로 신라 시대의 원효대사는 귀족 불교를 버리고 민중 속으로 들어갔으며,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정혜결사운동을 통해 수행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조선 시대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일조하면서 현대 불교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이러한 힘들이 축적되고 전승되면서 현재까지 1,700여 년 동안 현대 한국 불교의 전통을 만들고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다종교 사회에서 한국 불교는 존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출가자 급감과 불자의 감소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불자들의 인식 전환과 새로운 포교 방법의 개발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김응철
경기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승가대 불교사회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처님 직제자들의 수행과 포교 이야기』, 『재가불자가 되는 길』 , 『10분 치유명상』 등의 저서가 있으며 다수의 문화 치유 명상 관련 논문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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