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는 왜 아픈가?
요통, 허리 아픈 병이 그렇게 문제인가?
세계보건기구 산하 기관에서는 질병이 인류에게 미치는 부담을 조사한다. 질병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고 수명이 단축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질병부담(Global Burden of Disease)’이라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2010년 조사를 보면 인류가 살아 있으면서 가장 장애가 큰 질병이 바로 ‘요통’, 즉 허리가 아픈 것이다. 심장이나 간이 망가져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더라도 건강한 장기로 바꾸는 수술로 생명을 되찾을 수 있는 요즘 세상에 고작 허리 아픈 것 때문에 인류가 그렇게 고생을 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직장인이 병가를 내는 가장 흔한 원인도, 사람들이 1차 진료 의사를 찾는 두 번째로 흔한 병도 바로 요통이다.
아직도 아픈 허리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허리가 왜 아픈지를 전문가들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다른 병들은 수백 년 전에 원인이 밝혀졌고, 다양한 치료법들로 정복되어왔다. 그런 병들에 비하면 허리가 아픈 원인은 아주 최근에야 비로소 밝혀졌다. 그리하여 여전히 적절한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치료법들이 범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 먼저 허리가 왜 아프게 되는지를 알아보자.
좌골신경통과 디스크탈출증
허리 통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허리 가운데만 아픈 경우와 허리가 아프면서 다리 통증이 같이 있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 주로 허리, 엉덩이, 허벅지, 하퇴, 발로 통증이 뻗쳐 내려간다. 뻗쳐가는 통증이 좌골신경(sciatic nerve)을 따라간다고 해서 좌골신경통(sciatica)이라고 부른다. 한자로 된 이름이라 한의학에서 붙인 이름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양의학에서 아픈 위치는 확실한데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좌골신경 따라 아픈 병’, 즉 ‘좌골신경통’이라 불렀던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좌골신경 쪽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드러눕는 병이었던 것이다. 1934년 하버드의대 신경외과 교수였던 믹스터(Mixter)와 바(Barr)가 좌골신경통 환자의 허리를 수술하면서 디스크탈출증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밝혔다. 디스크는 딱딱한 껍질 속에 젤리가 들어 있는 물방석 같은 충격 흡수 장치인데, 껍질이 찢어지면 그 젤리가 밖으로 흘러나와 ‘탈출’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디스크가 탈출한 부분을 수술로 제거하지 않고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줄어들고 신경뿌리통증이 잦아든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90년대였다. 허리가 아프면서 다리가 같이 아픈 좌골신경통의 원인과 자연 경과에 관해 그나마 밝혀진 것이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염증 치료만 잘해도 해결될 좌골신경통에 불필요한 수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허리 가운데가 아픈 디스크성 요통
허리 가운데만 아픈 통증은 어떠한가? 좌골신경통의 원인은 90년 전에 밝혀졌지만 허리 가운데가 아픈 이유는 훨씬 더 늦어지고 있고, 아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다. 짧게 이야기하면, 1980년대 호주의 정형외과 의사 크록(Crock)이 “허리 가운데가 아픈 것은 디스크가 찢어져서 생기는 통증”이라고 주장한 이후로 많은 연구 결과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나 여전히 ‘허리 주변 근육이 뭉쳐서’, 혹은 ‘인대가 늘어나서’ 허리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렇게 요통의 원인을 엉뚱한데서 찾다 보니 잘못된 치료법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적절치 못한 허리 치료는 요통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허리를 더 아프게 하니 큰 문제이다.
찢어진 디스크도 아물까?
디스크가 찢어져서 생기는 디스크성 요통에 대한 전문가들의 또 다른 오해는 ‘찢어진 디스크는 저절로 낫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디스크성 요통이 심해지면 수년 동안 극심한 통증을 겪기 때문이다. MRI를 찍어 보면 디스크와 뼈가 같이 뭉그러진 것이 선명하게 보여 지독한 통증을 평생 겪어야 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렇지만 이 문제도 1990년대 이후 발표되는 여러 논문에서 정답이 제시되었다. ‘살아 있는 양의 디스크에 손상을 준 다음 관찰했더니 1년 반 정도 지나자 찢어진 디스크가 아물었다’는 보고가 호주에서 나왔다. 디스크성 요통이 심한 환자들을 수술을 하지 않고 추적 관찰했더니 2년 정도 지나면서 서서히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세상에 알려졌다. 칼을 잘못 놀려 손가락을 베였을 때 반창고를 붙이고 3주 정도 기다리면 낫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피부와 마찬가지로 허리디스크도 찢어졌다가 저절로 아문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단, 피부는 혈류가 풍부하고 세포의 신진대사가 활발해 2~3주 만에 금방 아물지만 우리 몸속에서도 가장 신진대사가 느린 연골세포로 구성된 디스크는 상처가 회복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아픈 기간도 길다. 더 큰 문제는 회복되다가 다시 찢어지는 일들이 잦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5년씩, 10년씩 허리가 아파 고생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요통의 원인과 자연 경과를 알면 길이 보인다
어떤 병이든지 원인과 자연 경과를 알면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열이 심하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도 그 원인이 호흡기에 감염된 바이러스 때문이고, 2주면 항체가 만들어져서 퇴치될 것을 알기 때문에 얼음찜질이나 해열제, 기침약으로 버티는 것이다. 물론 원인이 세균으로 인한 폐렴이고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투약해서 해결해야 한다. 기침을 계속하는데 바이러스도 아니고 세균도 아닌, 폐에 생긴 암세포 때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폐에 생긴 암을 수술로 제거하고 독한 항암제를 맞아서 암세포를 죽여야 하지 않는가? 가만히 두면 암세포가 급격히 자라고 다른 장기로 퍼져서 극심한 통증을 겪으며 생명을 잃게 된다는 자연 경과를 알기 때문이다.
정선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 및 시카고 재활 센터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활의학교실 교수 및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대한신경근골격초음파학회 총무위원장, 대한임상통증학회 이사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 『백년 허리: 허리 보증 기간을 100년으로 늘리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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