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 사찰 해인사 | 사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법보 사찰 해인사

용궁에서 온 강아지

그림 | 한생곤

마음의 바다에 무명의 바람이 불지 않아 번뇌의 파도가 쉬어지면 고요한 법성의 세계가 여실히 나타나게 된다. 파도가 잠든 바다위에 진실한 실상의 세계가 나타난 것을 일러 ‘해인(海印)’이라 하고, 이는 월인천강(月印千江)과 같은 심인(心印)을 말한다. 법보 사찰 해인사에는 해인사의 유래와 지극한 보살핌이 가피를 입는 것을 일러주는 설화가 전해온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곧잘 바다에 비유한다. 바다는 깊고, 넓으며 한없는 보배를 간직하고, 또한 만상(萬象)을 비춰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바다도 이와 같이 깊고 넓으며 무한한 보배를 가지고 있으므로 깨달음의 세계를 마음을 통해 비춰볼 수 있는 것이다. 파도는 바람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므로 바람이 자면 바다는 고요하며 만상이 저절로 비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바다에 무명의 바람이 불지 않아 번뇌의 파도가 쉬면 고요한 법성의 세계가 여실히 나타나게 된다. 파도가 잠든 바다 위에 진실한 실상의 세계가 나타난 것을 일러 ‘해인(海印)’이라 하고, 이는 월인천강(月印千江)과 같은 심인(心印)을 말한다. 그리고 번뇌가 잠든 마음의 바다를 ‘해인삼매(海印三昧)’라 한다. 다음의 설화는 ‘해인사(海印寺)’의 유래와 지극한 보살핌이 가피를 입는 것을 일러준다.

자식이 없는 팔순의 노부부가 가야산 깊은 골에 화전을 일구며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슬복슬한 강아지 한 마리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섰다. 하도 귀여워 노부부는 마치 자식 키우듯 정성을 쏟았고, 강아지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랐다. 만 3년이 되는 날 아침,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밥을 줘도 눈도 돌리지 않고 먹을 생각도 않던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는 동해 용왕의 딸인데 그만 죄를 범해 이런 모습으로 인간 세계에 왔습니다.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속죄의 3년을 잘 보내고 이제 다시 용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두 분의 은혜가 하해 같사온지라 수양부모님으로 모실까 하옵니다.” 개가 사람이며 더구나 용왕의 딸이라니 놀랍고도 기쁜 일이었다. “우리는 너를 비록 개지만 자식처럼 길러 정이 깊이 들었는데 어찌 부모 자식의 의를 맺지 않겠느냐?” 개는 이 말에 꼬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제가 곧 용궁으로 돌아가 아버지 용왕님께 수양부모님의 은혜를 말씀드리면 12마리 사자를 보내 수양 아버님을 모셔 오게 할 것입니다. 용궁에서는 용궁 선사로 모셔 극진한 대접을 할 것이며 저를 키워주신 보답으로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져가시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모두 싫다 하시고 용왕 의자에 놓인 ‘해인(海印)’이란 도장을 가져오십시오. 그 도장은 나라의 옥새(玉璽) 같은 것으로 세 번을 ‘똑 똑!’ 치고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뭐든지 다 나오는 신기한 물건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여생을 편히 사실 것입니다.”

말을 마친 개는 허공을 세 번 뛰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얼마 지나 보름달이 중천에 뜬 어느 날 밤이었다. 별안간 사립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12마리 사자가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용왕께서 노인을 모셔 오랍니다. 시간이 바쁘니 어서 가시지요.” 노인은 얼떨결에 따라나서 문밖에 세워놓은 옥가마를 탔다. 사자들은 바람처럼 달려 곧 가마는 찬란한 용궁에 도착했다. 형형색색의 보화들로 장식한 구중궁궐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가운데의 궁전으로 노인은 안내되었다.

“아이고, 수양 아버님 어서 오세요. 제가 바로 아버님께서 길러주신 강아지이옵니다.” 예쁜 공주가 노인을 반겼다. 아름다운 풍악이 울리자 용왕이 옥좌에서 내려와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딸아이를 3년이나 데리고 계셨다니 그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용상 넓은 자리에 용왕과 노인이 나란히 앉아 있고, 좌우 시녀들이 풍악에 맞춰 춤을 추고 이어 산해진미 음식상이 나왔다. 이렇게 용궁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되었고, 노인의 풍채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런데 노인은 갑자기 부인 생각이 나서 돌아가고 싶었다.

“먼 길 다시 오기도 어려운데 오신 김에 조금만 더 쉬다 가시지요.” “말씀은 감사하나 아내의 소식이 궁금해 내일 떠나겠습니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떠나시기 전에 용궁의 보물을 구경하시다가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불현듯 ‘해인’을 가져가라던 공주의 말이 떠올랐다. 노인은 진귀한 보물을 보고도 구경만 할 뿐 달라고 하지 않으니 용왕은 이상했다. 구경이 다 끝나갈 무렵 노인은 까만 쇳조각처럼 생긴 ‘해인’을 가리켰다.

“용왕님, 미천한 사람에게 눈부신 보배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사오니 저것이나 기념으로 가져가겠습니다.”

“허 참! 그것은 이 용궁의 옥새로서 정녕 소중한 것이외다. 하나 무엇이든 드린다고 약속했으니 가져가십시오. 잘 보관했다가 후일 지상에 절을 세우면 많은 중생을 건질 것이옵니다.” 용왕은 ‘해인’을 집어 황금 보자기에 정성껏 싸서 노인에게 주었다. 이튿날 노인이 용궁을 떠날 때 용왕 부부는 구중궁궐 대문 밖까지 전송했고, 공주는 “수양 아버님 부디 안녕히 가세요. 용궁과 인간 세계는 서로 다르니 이제 다시는 뵈올 수가 없겠군요. 부디 ‘해인’을 잘 간직하시어 편히 사세요. 그것으로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되길 바랍니다”라며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노인도 이별의 아쉬움을 안고 가야산에 도착했다. 아내에게 용궁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해인’을 세 번 두들겼다. “내가 먹던 용궁 음식 나오너라”라는 주문과 함께 산해진미 가득한 음식상이 방 안에 나타났다. 내외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뭐든지 안 되는 것이 없었다. 내외는 죽을 나이가 되자 절을 짓고, ‘해인’은 해인사에 보관시켰으며, 이 전설에 따라 절 이름을 ‘해인사’라 불렀다 한다.

백원기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불교설화와 마음치유』, 『명상은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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