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견해 | 탈종교 시대 종교 간 대화

인류 문명의 미래와 종교의 운명에 관한
기독교의 견해

장재호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교수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요즘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점차 과학기술이 중요해지고,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이 인간 직업의 상당수를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이런 시대가 펼쳐지면 종교의 중요성은 현재보다 감소될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전망하지만, 필자는 반대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하며, 과학기술이 지배할 미래 세대에 종교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모든 것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시대가 되면, 인간에게는 현재보다 많은 자유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그동안 먹고사는 일에 매여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이, 앞으로는 독서하고 사유하며,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쏟게 될 것이다. 인간은 종교적 동물인지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보통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묻게 되고, 이것에 대해 수천 년간 대답해온 종교적 가르침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둘째로, 미래에는 대부분의 직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인데,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가장 어려운 직업으로 상담사와 종교인을 꼽는다. 대부분의 직업은 인간보다 기계가 더 잘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상담사와 종교 예식을 행하는 종교인은 기계가 대체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즉 미래에 사람들의 생활 패턴은 상당히 많이 바뀌겠지만, 종교 예식에 참여하는 형태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에도 생존하는 직업군으로 사람들이 몰릴 가능성이 있기에, 종교인의 비율은 지금보다 높아지게 될 것이고, 이는 종교의 번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셋째로, 현재까지는 게임의 세계에서만 메타버스가 활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일상생활에서 메타버스가 활용될 것이다. 이때의 사람들은 직접 보고 경험하는 현실 세계보다 가상의 세계, 초월의 세계에 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가상 공간에서 현실과 동일하게 만나서 대화하고 일 처리를 하는 등 가상 현실이 일상화되면, 실제로 만나는 것인지 메타버스 공간에서 만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다. 눈에 보이고 실제로 경험하는 것들만 받아들이는 현대의 사람들보다는, 가상의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이 일상화되면,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도 지금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그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초월을 매일의 삶에서 경험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한국인의 종교”에 의하면, 종교에 관계없이 ‘기적’이 존재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57%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 32%에 한참 앞선다. ‘비종교인’으로 한정해도 기적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비율(45%)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42%)에 앞선다. 이 외에도 초자연적 개념 존재에 대한 믿음은 통계가 시작된 1984년 이래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종교성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에 반대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의 미래가 종교에 야기할 문제들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측면에서 설명했다. 이는 다가올 미래에 종교의 중요성이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기보다는, 종교가 의미 있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가 변화될 미래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종교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종교계가 연합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첫째로, 과학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우리 몸을 구성하는 30억 쌍의 DNA 염기 서열을 읽을 수 있고,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의 일부를 편집할 수 있다. 현재는 생태계 파괴와 윤리적 문제로 치료 목적으로만 제한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된 인간이 등장할지 모른다. 이미 트랜스휴먼(transhuman)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퍼져가고 있다. 현재의 인간인 호포 사피엔스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인간으로 스스로 진화해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유전자 편집 문제와 포스트휴먼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종교계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창세기』 1:26)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7)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본다. 이 역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를 돌보고 보존하라는 의미다. 따라서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남용하거나 포스트휴먼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된다.

둘째로, 미래에는 대부분의 일들을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은 ‘잉여’적 존재로 인식되며 존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또한 생명 복제가 지금보다 증가하면서 인간 복제를 둘러싼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될 것이다. 즉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생명의 소중함이 점차 약해질 우려가 있다. 성경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강조하는데, 특히 바울은 인간만의 구원이 아닌,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말한다(『로마서』 8장).

셋째로, 앞으로의 시대는 빈부 격차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양분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상당수의 일을 기계가 대신한다면, 앞으로는 기술이 가져오는 부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기본 소득을 지지하는 부분이 많다. 예수는 ‘포도원 비유’를 통해 몇 시간 일했느냐에 상관없이 각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을 품삯으로 준다(『마태복음』 20장). 또한 바울은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라고 말한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차별이 없고 모두가 하나 되는 세상이다.

인류 문명의 미래가 초래할 상황에 대해 기독교적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만의 가르침이 아닌, 대부분의 종교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인간을 포함한 전 생태계의 소중함과 빈부 격차 문제 등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기에, 같이 협력해서 앞으로의 일들을 대처해나가야 한다.

과학기술이 초래할 미래는 종교에게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가 초래할 미래를 종교계가 잘 활용해서 종교적 가치가 사회에 잘 정착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과학기술이 초래할 여러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특정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에, 종교계가 연합해서 적극적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

장재호
감리교신학대학교(신학사)와 연세대(철학사)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와 서울대 대학원 석사를 거쳐 서울대 대학원 종교학 박사 수료, 미국 보스턴대 신학 석사,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조교수로 있다. 『창조의 본성』, 『과학시대의 신앙』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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