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 시대의 윤리 |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윤리
- 인간, 기계, 동물의 공존

허남결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포스트휴먼 시대는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비인간(nonhuman) 사물과 인간(human)의 관계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되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도덕적인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동물의 지위나 권리도 자연스럽게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관심의 변화를 학자들은 ‘동물로의 전환(animal turn)’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모든 영역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려는 포스트휴머니즘의 기본적 인식과도 맥락이 맞닿아 있다.

인간과 동물은 감정적 유대 관계를 갖는다
쾌락주의적 전통을 잇는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에 따르면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것이 과학적 이유건, 철학적 이유건 이는 마찬가지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다른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 또한 의심해서는 안 된다. 동물들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중략) 동물이 느끼는 고통(또는 쾌락)이 인간이 느끼는 동일한 양의 고통(또는 쾌락)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피터 싱어의 지적은 우리가 동물을 도덕적으로 차별할 중요한 근거를 없앰과 동시에 동물을 윤리적인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감각적 동물의 경험적인 사실을 가지고 도덕의 형이상학적인 근거를 허물어버렸다.

인간과 동물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의지하는가 하면,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와 외로움을 위로받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과 동물은 상대방에 대한 희로애락의 감정 교환을 서슴없이 표현한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머리 미용과 피부 관리도 주저하지 않는다. 철 따라 예쁜 옷도 사 입힌다. 늙고 병들면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고 유해는 동물 납골당에 안치한다. 동물을 대하는 개인의 의식과 사회적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한 단면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윤리학뿐만 아니라 의학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심리신경내분비학(psychoneuroendocrinology)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과 동물은 끈끈한 감정의 공유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과 반려동물 사이에도 강력한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인종 가정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인간 주인은 부모가 되고 동물 친구는 자식의 역할을 하면서 공동의 공간인 집안을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함께 사는 동물에게는 말하고 싶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동물도 인간에게 상처받고 학대받은 경험을 다른 인간 주인의 보살핌을 통해 보상과 안정을 되찾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서로에게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며,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슬프게 하지만, 동물은 같은 인간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성 소수자가 받는 차별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표현하는 용어로 ‘LGBTQ+’가 사용된다. 레즈비언과 게이, 트랜스젠더와 퀴어 그리고 그 외의 성 소수자들을 모두 망라하는 개념이다. 오늘날에는 무성애자까지 이 그룹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인 것 같다. 이들이 받는 사회적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성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적대자들의 공격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성 소수자들은 고용의 차별과 주거의 불안정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로부터도 소외당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편견과 선입견은 인간적으로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성 소수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으며 이들이 반려동물로부터 얻는 이익과 위험도 객관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성 소수자들은 반려동물로부터 건강한 정체성을 회복하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할 힘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한 몸이다
불교는 무엇보다도 뭇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다루는 윤리적 자각에서 출발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훗날 대승 보살의 자비 사상으로 자연스럽게 계승, 발전되었다. 불살생계와 윤회 사상의 강조는 대중을 교화하는 훌륭한 방편이었다. 악업을 저지르면 그에 따르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공포심의 조장은 불교 윤리의 유용한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현재의 행복보다 미래의 불행을 더 두려워한다. 동물의 살생은 지옥에서의 환생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만큼 무서운 말은 없을 것이다. 동물을 살생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법문을 들은 불자들은 누구나 붓다의 불살생계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과 동물의 동반자적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대승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아상가(Asaṅga)의 에피소드다. 어느 날 동굴에서 선정에 들었다가 나온 아상가는 구더기로 뒤덮인 종기를 앓고 있는 병든 유기견을 발견했다. 구더기가 개의 살점을 파먹고 있었다. 아상가는 당장 개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자비심이 솟구쳤다. 동시에 구더기들에게도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불살생계를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상가는 이 딜레마를 자기 자신의 살점 한 조각을 베어내 구더기에게 던져 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가 구더기들의 먹이가 될 핏덩이를 헝겊 위에 올려놓자마자 개의 고통은 즉시 사라졌다. 구더기들이 아상가의 싱싱한 살점으로 몰려갔던 것이다. 그 개는 미륵보살의 현신(現身)이었다. 이 퍼즐 같은 이야기는 아상가의 덕성을 시험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였던 셈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와 동물’이 공존할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동물로의 전환’이 시작되고 인간 중심적 역사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성격의 과학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그동안의 전통적인 휴머니즘은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전혀 다른 사유 체계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는 인간 외에도 기계(인공지능)와 동물이 주어로 등장한다. 이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이 기계나 동물과 같은 비인간적 사물로도 대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가운데 인간과 동물의 경계도 무의미하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유전공학의 눈부신 발달도 인간과 동물의 간격을 크게 좁혀주었다.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는 생각만큼 큰 차이가 없으며 이러한 생물학적 유사성은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차별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와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과 같은 철학자들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나섰다. 이런 시대적 환경의 변화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당연한’ 차별에서 ‘필연적’ 공존의 길을 추구하도록 가르친다.

이처럼 포스트휴먼 시대의 주인공은 인간만이 아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인간과 기계와 동물이 도덕적으로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누리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다. 포스트휴먼 사회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동시에 인간과 기계의 관계 설정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인공지능이 발달해 자율성을 갖는 로봇이 등장한다면 그에게 도덕적 지위와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도 발생하게 될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는 인간과 기계와 동물을 동시에 저 피안의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줄 유토피아의 뗏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 반대의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불자다운 건강한 윤리 의식이 아닐까 싶다.

허남결
동국대학교 국민윤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공리주의 윤리문화 연구』가 있고, 번역서로는 『불교와 생명윤리학』, 『자비 결과주의』, 『불교응용윤리학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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