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것
도연 스님
봉은사 명상 지도법사, 철학 박사
살다 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바쁠 때는 그걸 하느라 정신없이 살다가도 그 시기가 지나 한가해지면 정신을 차린다는 기분이 들어요.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알려주세요.
우리는 일상을 바쁘게 살다가 덜 바쁘게 살기를 반복합니다. 사실 바쁘고 바쁘지 않음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바쁠 망(忙)이라는 한자를 보면 ‘心’(마음 심)과 ‘亡’(잃을 망, 없을 무)이 합해진 글자예요. 즉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바쁘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무언가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그저 바쁘기만 할 뿐이에요.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바쁘게 움직이고 무언가에 열중하더라도 마음을 챙기면 바쁘지 않아요. 마음을 챙기면 몸은 부지런하면서 장시간 집중할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이 상태를 Mindfulness(마음챙김)와 Mindless(마음놓침)라는 상태로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음챙김은 대표적인 명상 상태로도 알려져 있으며 불교 수행의 기본인 사띠(sati, 순수한 주의, 깨어 있음/알아차림)의 현대식 표현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띠가 한자로 념(念)이라는 것입니다. ‘念’은 心(마음 심)과 今(이제 금)이 합해진 말로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집중하고자 하는 그것에 온전히 마음을 다해 전념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 일이 많건 적건, 사람을 만나건 만나지 않건 마음을 과거나 미래에 두지 않고 현재에 둡니다. 따라서 ‘나에게 시간이 많으면 바쁘지 않다’, ‘시간이 적으면 바쁘다’라는 이분법적 개념에서 벗어나 마음의 상태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망중한(忙中閑)이라는 표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보통 망(忙)과 한(閑)은 반대 의미로 쓰입니다. 흥미롭게도 망중한(忙中閑)에서는 대립하는 두 개념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건강하고 정신이 깨어 있으면 아무리 바쁜 상황에서도 한가하고 느긋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를 강조합니다. 이 마음에서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마음에서 균형감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현악기의 줄이 너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을 때 아름다운 선율을 낼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중도적으로 살기 위해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생을 보다 여유 있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독서입니다. 여기에서 독서란 공부와 자기 계발까지 포함합니다. 책을 집중해서 읽게 되면 지식이 쌓이게 되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예로부터 전해져온 고전의 지혜를 습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수많은 사람의 온갖 사건과 인간 군상을 총망라해 다루고 있으며 각 상황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더불어 최신 기술이나 학문을 접할 수 있어 세상에 쓰일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온갖 지식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에서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치우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예로부터 TV를 ‘바보상자’라고 한 것은 스스로 생각할 힘을 길러주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보를 습득하는 창구로 활용하는 것은 좋으나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으며 잠시 멈추어 사유하고 호흡하면서 자기만의 사상과 철학을 정립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휴식입니다. 여기에는 명상과 숙면 그리고 여가를 포함합니다. 자신의 본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쉴 때 잘 쉬어야 합니다. 공부할 때 머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머리를 식혀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몸을 많이 쓸 때는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이렇게 충전해주지 않으면 에너지는 금방 고갈되어 다음번에 다시 하기가 어렵습니다. 집중력도 떨어지게 되지요. 명상은 마음을 쉬게 하는 행위이고 숙면은 몸을 쉬게 하는 행위입니다. 깨어 있으면서도 명상하면서 마음을 쉬게 하지 않으면 계속 에너지가 소진됩니다. 이것은 잠자리에도 영향을 미쳐서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합니다. 또한 여가에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함으로써 정서적 허기를 채울 수 있습니다. 바쁘게 살고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상황이 생기고 결핍감으로 누적되어 욕구 불만이 생깁니다. 적당한 때에 운동, 여행, 예술 활동과 같은 여가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셋째, 단절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휴식과 다소 비슷한 의미이기도 한데요. 여기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멈추고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습관대로 살다 보면 계속 그렇게 살게 됩니다. 잠시 멈추고 자신을 챙겨야 합니다. 먼저 관계에 있어서 정돈이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지요. 계속 사람을 만나다 보면 기운을 쓰게 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고 듣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나도 관련한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반드시 만나야 하는 만남이 아니라면 빈도를 조절함으로써 자기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기운이 충분하게 채워지면 그때 만날 사람을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또한 과다한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전 국민을 당혹케 했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오히려 연락이 안 되어서 편했다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모 통신 회사의 광고 문구로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를 쓴 적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잘 쓰기 위해서는 잘 멈추어야 합니다. 특히 잠자기 전과 일어난 후에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을 확인한다거나 간단한 확인은 별문제가 없지만, 과도한 사용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삶을 보다 균형 있고 충만하게 살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능력을 계발하고 휴식과 멈춤을 통해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바쁘지 않을 때 자신을 돌보고 내면을 풍요롭게 할 수 있어야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삶의 중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도연 스님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세계적인 물리학자를 꿈꾸었으나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고 2006년 출가해 탁발과 참선, 마음챙김 명상을 중심으로 수행해오고 있다. 최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봉은사에서 명상 지도법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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