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은 불멸의 존재인가? |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은 불멸의 존재인가?

이범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초빙교수


1967년 12월 3일 세계 최초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흉부외과 의사 크리스티안 바너드(Christiaan N. Barnard) 박사는 인간의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 수술에는 무려 30명의 의료진이 참가했으며 수술 시간만 9시간이 걸렸다. 인공 심폐기의 발명에 힘입어 1950년대는 신장 이식을, 1960년대에는 간 이식에 성공한 이후 개심(開心) 수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뇌사 이전의 심장 정지를 죽음으로 확정했던 시기에 진행한 심장을 몸으로부터 분리해 죽은 사람을 다른 이의 심장으로 부활시킨 상징적인 사건이다.

근대에 들어 해부학에 눈뜬 인간은 신(神)의 영역인 인간의 속을 열고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래 마치 레고 블록 다루듯 인간의 몸을 모듈(module)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죽은 동류(同類)의 배를 갈라 모듈화한 장기의 교체를 개시한 순간, 그들의 인간 개조의 꿈은 인간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트랜스휴먼(trans-human)은 물론 포스트휴먼(post-human)의 탄생을 예기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트랜스휴먼과 포스트휴먼
2013년 『포스트휴먼』을 출판한 유럽의 철학자 로지 브라이도티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물학적 조건을 초월하고 향상하게 함으로써 포스트휴먼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인간을 ‘트랜스휴먼’이라고 했으며, 포스트휴먼이란 인류의 생물학적 능력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어 현재 기준으로는 인간으로 분류될 수 없는 인간 이후의 존재라고 했다.1)

생명공학의 새로운 기술들은 인간 향상 메커니즘의 작동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유전자 조작이나 선택을 통한 맞춤 아기(designer baby), 퇴행성 질환이나 사지마비와 같은 신체 장애 극복과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2)

이를 통해 포스트휴먼의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능력이 인간의 통상적 범위를 넘어 유기체적 신체를 가진 존재에 이르게 된다면, 그 존재는 지금까지의 인간이 갖춘 조건과는 다른 별개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뇌의 영역마저 정보를 업로드할 수 있는(유기체적 인간과 상관없는 신체를 가진 존재) 사이보그가 된다면, 지금까지의 뇌사나 심장사 등을 죽음의 판정 기준으로 하는 인류와는 다른 종말(終末)의 개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트랜스휴먼 시대의 죽음(死)과 쇠멸(衰滅)
시대가 표상하는 삶과 죽음의 문화는 그 사회가 내거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와 생존 전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현대에 들어 과학기술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넘는 변혁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한 시도는 현대인이 지금까지 경험하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져 눈앞 허공에 날아올라 성가시게 구는 비문(飛紋)처럼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는 “굳이 트랜스휴먼에 이어 포스트휴먼으로 존재할 이유가 있나?”라는 짜증스럽지만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민은 살고 죽는 일이다. 그를 어지럽히는 죽음 불안, 두려움, 공포, 유한성을 철학자들은 존재의 약함(Jaspers), 비존재(non-being)의 두려움(Kierkeggard), 높은 가능성에 대한 불가능성(Heidegger), 존재론적 불안(Tillich)3)이라 한다.4)

죽음은 이제 근대 의학을 통해 인간 과학의 에스테메5)에 포섭되었다.6) 사람들은 ‘생명 연장술’인 ‘인체 냉동 보존술’, 프로스테시스(보철술) 기계장치 개발과 사이보그화 등을 통해 생물학적 죽음(死)을 넘어 ‘쇠멸하지 않음(不衰滅)’까지 욕심내고 있다.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생각들로 가득 찬 죽음의 우리 안에 갇힌 현대인의 욕망은 ‘인간 향상 기술(human enhancement)’을 발판으로 다양한 의료적, 기술공학적 수단을 동원해 생명 연장 및 불로(不老) 기술 개발에 함몰되어가고 있다.

포스트휴먼에게도 불멸이 가능한가?
인간의 기억과 정보의 기계적 업로딩(up-loading)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포스트휴먼은 업로딩된 소프트웨어인 정신으로 로봇 신체를 획득해 실재의 세계 속에 거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가치, 태도, 감정적 성향이 정보적 패턴으로 보전되고, 업로딩 이전의 단계와 이후 단계 사이에 인과적인 연속성이 존재하는 한 포스트휴먼은 여전히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며 생존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또한 백업 복사본을 만들어 만일의 경우에 재부팅함으로써 거의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고 주장한다.7)

하지만 푸코는 정신병 환자(로 규정된 사람)들이 죽음과 맺는 특정한 관계에 대해 주목했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실존 방식은 특정한 방식으로 변질된 시간 체험을 포함하며, 일차적으로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 즉 과거-현재-미래라는 연결로부터 사유적으로 이탈한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시간은 순간에 갇혀 있거나 파편화되어 있거나 방향을 상실해서 더 이상 과거나 미래로 향하거나 흘러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8)

포스트휴먼이 기계적 장치로 쇠멸의 유한성을 극복했다 해도 역시 그 장치들의 유한성의 극복과 무한한 작동의 가능성을 전제로 할 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타 존재의 손을 빌려 관리, 유지, 보존되어야 하는 냉동장치에 누워 부활을 기다리는 인간을 보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방식은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데 급급해 영원히 도피할 수 없는 언제든 기계장치의 고장으로 뒤엉켜버릴 수 있는 죽은 시간으로 뛰어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삶의 시간을 늘리는 무작정의 생명 연장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교는 중생이 살아가는 사바세계를 욕망이 강한 유정들이 머무는 욕계라 한다. 고의 주요 원인인 죽음의 두려움도 욕망과 그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잡아함경』 「무지경」에는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생사에 대한 집착과 무지를 경계하는 내용이 나온다.

“색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밝지 못하여 끊지 못하고 탐욕을 떠나지 못하여 마음이 거기서 해탈하지 못하면, 그는 생로병사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할 수 없느니라.”9)

포스트휴먼 역시도 쇠멸의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슈퍼지능으로 발전해 불사의 존재가 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휴먼 역시 인간과 같이 생로병사의 두려움을 초월하려는 욕망과 탐욕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며, 극복하지 못하고 그 우리에 갇히면 생로병사를 초월한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

포스트휴먼도 쇠멸의 공포로부터 자유를 향한 욕망 해결 방식을 추구하기보다는 쇠멸의 두려움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해소하는 근원적인 해법으로 대응해야 한다.10) 무화(無化)되지 않으려는 욕망도 영원한 것이 아닌 무상함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므로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색의 무상함을 자각하는 일이다. 붓다의 일관된 가르침인 고(苦)를 벗어나 해탈 열반에 이르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1)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이경란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2) 『호모사피엔스의 미래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신상규, 아카넷, 2014, p.66
3) (역자 주) 20세기가 배출한 가장 역량 있는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실존주의를 연구했고, 심리학과 신학에 연계했다. 유니온 신학대학, 하버드 대학, 시카고 대학 교수 역임
4) 『실존주의 심리치료』, Irvin D. Yalom, 임경수 역, 학지사, 2007, p.61
5) 인식론적 토대/기반
6) 『임상의학의 탄생』, Foucault, Michel Die Geburt der Klinik. Frankfurt a. M., 인간사랑, 1999, p.155
7) 앞의 책, 신상규, pp.96~97
8) 『죽음을 살다』, 「미셀 푸코의 근대적 죽음론」, 천선영(2012), 나남, 2012, p.27
9) 『잡아함경』 제1권, 무지경 3, (한글대장경), p.3
10) 『종교교육학연구』 31, 「욕망의 관점에서 본 불교의 교육론」, 박범석, 한국종교교육학회, 2009, p.7

이범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장례문화학과 석사, 서울불교대학원대 상담심리학 박사 수료 및 동국대 대학원에서 응용불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생명문화학회 회장 등을 지내고, 현재는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유족의 사별애도 상담과 치료』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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