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샀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

나는 또 샀다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나는 수집광이었다
어릴 때부터 모으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흔히 수집한다는 우표부터 책, 만화, 그림, 심지어 다 쓴 볼펜, 껌종이에서 벗긴 은박지까지 모두 모았다. 내 주위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이런 습관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주변 증언에 따르면 다섯 살 때 종이 인형을 오려서 모으는 모습에서 이미 그런 기질은 드러났던 것 같다. 그 종이 인형들을 하루에 몇 시간이고 계속 오렸는데, 종이 인형이 상자에 반 이상 차 있었다고 한다. 당시 종이 인형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작은 것은 5원, 큰 것은 10원에 팔았다. 우리 집은 다섯 살짜리에게 용돈을 주는 집안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엄마나 언니가 사준 것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직접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곧잘 누군가 해놓은 것에서 스스로 창조해내는 기쁨을 누리고자 하기도 하니까. 그저 확실한 증거는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가위로 열심히 종이 인형을 그리는 작은 꼬마가 찍힌 사진이다.

무소유의 여파
고등학교 2학년 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처음 읽었다. 충격이었다. ‘아끼는 난조차 줘버리다니!’ 적은 양이지만 생기는 돈은 모두 만화책에 쏟아붓고, 그 책을 형제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책장, 서랍, 베란다 등 곳곳에 숨기고 있던 나로서는 아끼는 것을 넘긴다고 하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충격을 받았으나, 나는 만화책들을 지키려 애썼다. 그러나 고 3인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 부모님에 의해 만화책들과 강제로 이별했다. 스스로 떠나보냈다면 덜 억울했을 텐데 강제로 떠나보낸 아끼는 물건들은 많이 가져봐야 별수 없다는 허망함을 안겨주었다. 이런 경험을 했으면 만화책을 모으는 일은 그만두게 마련이지만 내 의지로 처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철저한 계획을 세워 내가 수집한 만화책들을 지키고자 애썼다. 그렇게 나의 소유하는 삶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잦은 이사는 자연스럽게 나에게서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점점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해보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새삼 ‘무소유’가 크게 다가왔다. 그런 삶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화책 수집은 끊었지만, 대신 다른 책들을 아주 열심히 모아대고 있었다.

미니멀이 진짜 미니멀?
나는 이사를 꽤 자주 다니는 편이다. 그때마다 내가 모아둔 책은 이삿짐센터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래도 난 꿋꿋했다. 그러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바꿔보기로 했다. 집을 줄이고 짐도 줄이고 새로운 곳에 가 살아보기로 했다. 딱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거나 기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처분했다. 나는 눈 딱 감고 아끼던 책도 되도록 과감히 넘겼다. 스무 평 안 되는 집을 채우던 짐은 1.5톤 트럭 한 대에 모두 실렸다. 무소유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았다.

이사를 간 후 1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나는 그사이 적응했고, 내 공간도 처음과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무소유를 추구하려 했으나, 이래저래 필요한 물건들이 생겨나면서 새롭게 또 물건을 사들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물건도 다시 산 것이 제법 있었다. ‘나, 새거 사고 싶었던 거야?’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무소유가 아닌 소유하고 있었다고 깨닫는 순간 생각이 많아졌다. 무언가를 손에 집어넣는 순간의 행위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버리고 새로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유한다는 것
쓰레기 소각장 몇 군데를 가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형체도 구분되지 않은 수많은 쓰레기들이 수거 차에 실려와 10m는 족히 되는 구덩이 속에 던져지고 있었다. 쓰레기 매립지에도 갔다. 커다란 수거 차가 아주 작아 보일 만큼 넓은 땅에 싣고 온 쓰레기들이 끊임없이 쌓이고 있었다. 재활용을 하는 곳에서는 수거된 모든 것이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었다. 그중에 내가 떠나보낸 수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외치며 내 눈앞에서 물건들을 치웠지만 대부분의 물건들은 결국 쓰레기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보낸 자리에 다른 물건을 채웠고, 그것은 또 언젠가 내 눈앞에서 치워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나’라는 개인의 소유사에서 시작했다.

소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에게 받거나, 줍기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하며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유의 대상은 계속 변한다. 나의 소유사만 돌아보더라도 그렇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끊임없이 버리고 다시 산다. 그러다 죽으면 내가 가진 대부분이 버려진다. 혹 일부가 남을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 사람의 인생이 사라질 때 함께 버려진다. 버려지는 것들 너머에는 지구의 자원이 있다. 지구는 한정되어 있고 나는 사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지불한 돈은 인간 사회에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것일지 몰라도 지구에는 아닌 것 같다. 마치 버리기 위해 사는 나는 변해야 하지 않을까?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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