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암의 ‘무소유’ 밥상 | 내 기억 속의 절밥

불일암의 ‘무소유’ 밥상

문순태
소설가


지방신문사 기자였던 나는 1980년 5월 직후, 이른바 반체제 기자로 낙인찍혀 타의에 의해 해직되었다. 그 무렵,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송광사 불일암으로 법정 스님을 자주 찾아다니곤 했었다. 엄혹했던 그 시절 법정 스님도 요시찰 인물이 되어 행동이 자유롭지가 못했다. 송광사에서 가까운 주암 지서가 법정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법정 스님을 만나러 갈 때는 신문기자를 사칭(?)하고 스님이 계시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1981년 늦봄이었다. 그날도 나는 지서에 전화를 걸어 법정 스님이 암자에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서둘러 시외버스를 탔다. 아침밥을 먹고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도 버스에서 내려 송광사 경내로 들어섰을 때는 해가 정수리 위에 덩실하게 떠 있었다. 수십 번도 더 걸어본 길이었지만 송광사 진입로 숲길은 언제 걸어도 마음이 소쇄해지면서 심신이 간질간질하도록 향기로웠다. 나는 송광사 본사로 들어서기 전 개울을 건너 불일암으로 가는 등성이 길로 접어들었다. 대낮인데도 고즈넉한 산에서는 귀촉도가 서럽게 울어댔다. 등성이 길로 추어 오르자 노란 달맞이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법정 스님은 불일암 마루에 한가하게 앉아 있다가 나를 맞아주었다. 암자 뒤쪽에서 귀촉도가 다시 피를 토하듯 서럽게 울어댔다.

“귀촉도가 밤에만 우는 줄 알았는데 송광사에 오니까 낮에도 우네요.”

“어젯밤에 귀촉도가 어찌나 서럽게 울어쌌던지 잠을 통 못 잤어.”

“귀촉도가 왜 스님을 귀찮게 해서 잠 못 들게 했을까요. 스님께 무슨 하소연할 일이 있었나 보네요.”

“아마 전생의 인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전생에 내가 누구에겐가 잠 못 들게 했을지도….”

“스님 전생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전생에도 중이었을 것 같애.”

“그걸 어떻게 아시죠?”

“나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 스님이 탁발을 오면 반가워서 쫄래쫄래 따라다녔거든. 그리고 스님을 우리 집까지 모시고 가서 어머니한테 공양미를 듬뿍 주라고 졸랐거든. 스님이 우리 마을을 떠날 때는 동구 밖까지 나가 스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니까.”

스님과 나는 마루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전생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전생 이야기로 시작해서, 스님이 순천장에 장 구경 다녀온 이야기로 이어졌다. 스님은 그즈음에 지서의 허락을 받아 순천, 승주, 주암 등 인근 5일장 구경 다니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장에 가서 무엇을 사십니까?”

“사는 건 없어. 살 게 뭐가 있겠어. 그냥 세상 구경하는 거지. 나를 충전하러 장에 가는 거야. 장에 나가서 민초들이 땀 흘리며 세상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게는 충전이야. 그들을 보면 게으름을 피우는 나를 반성하고 수행에 더욱 용맹정진할 수가 있거든.”

그러면서 스님은 근동의 5일장 날을 다 외웠다.

어느덧 1시가 되었다. 이야기에 취해 시간 가는 것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님의 공양 시간을 뺏은 것 같아 그만 산을 내려가려고 천천히 일어섰다.

“조금만 기다려 봐.”

스님은 일어서는 나를 다시 붙잡아 마루에 앉혀두고는 주방에 들어가 개다리소반에 식은 밥 두 그릇과 생된장 종지기를 받쳐 들고 나왔다. 나는 스님이 밥상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안절부절못했다.

“절에까지 내려가기 싫으니까 그냥 여기서 상추쌈으로 요기를 때우기로 하드라고.”

스님은 밥상을 마루에 놓고는 암자 모퉁이에서 상추 한 움큼을 뜯어왔다. 암자의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너무 초라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상추와 생된장에 생오이 몇 조각과 된장에 버무린 취나물이 전부였다. 밥상은 포만을 위한 아무 욕심도 없는 ‘무소유’의 밥상 그대로였다.

“한데 스님, 왜 불일암에는 상좌가 없습니까. 이런 거는 상좌 스님한테 시켜야지요.”

나는 법정 스님이 손수 밥상을 차린 것을 보고 너무 송구하여 그렇게 말했다.

“나는 상좌 필요 없어. 아랫사람 하나 거느리는 것은 지옥 하나를 끼고 사는 것이나 진배없거든. 그런데도 왜 세상 사람들은 한사코 높은 자리에 올라가 많은 사람을 거느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스님은 내게 마루 위로 올라앉으라고 하여 우리는 겸상으로 마주 앉았다.

“이거면 충분히 한 끼 때울 수가 있겄지? 돼지는 입이 맨 앞에 있지만 사람의 입은 얼굴 맨 아래에 있거든. 그것은 사람은 먹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지. 먼저 생각하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그다음이 먹는 거지. 그런데 세간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먹는 것을 우선으로 치거든.”

스님은 밥숟갈을 뜨기 전에 생오이 조각을 된장에 찍어 와삭와삭 씹었다. 나는 스님이 직접 기르고 뜯은 상추와 오이 취나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밥상에는 밥 한 톨, 상추 한 잎, 오이 한 조각 남기지 않았고 된장 종지기와 취나물 접시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이날 스님이 손수 차려준 밥상은 비록 소박하고 단출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접을 받은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이 있었고 기억에 오래 남게 되었다. 특히 달맞이꽃 바라보며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밥상머리에서 들었던 스님의 법어와도 같은 소중한 말씀은 내 정신의 자양분이 되고 소중한 삶의 좌표가 되었다.

문순태
전남 담양 출생. 조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소설 『백제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주요 작품으로는 『징소리』, 『철쭉제』, 『타오르는 강』, 『된장』, 『41년생 소년』, 『생오지 뜸부기』 등이 있다. 한국소설문학 작품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요산문학상, 채만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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