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마음챙김에 기반한
우울 치료 프로그램과 효과
박성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릴 정도로 흔한 정서 장애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소홀히 다룰 경우 재발 위험성이 매우 높고,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은 매우 위험한 심리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 치료에서 최우선 치료법은 항우울제 요법과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 CT)이다. 항우울제 요법은 복용 시에는 우울 기분의 감소 등 효과가 나타나나 복용을 중단하면 재발률이 높으며, 항우울제에 부작용이 있거나 임산부와 같이 복용하기 어려운 대상이 존재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이에 비해 인지 치료는 약물 치료에 비해 재발률이 낮으며, 부작용이나 이용이 불가능한 대상 또한 약물 치료에 비해 적다. 이러한 이유로 우울증 재발 예방 프로그램 연구자들은 인지 치료가 급성의 우울증 치료뿐 아니라 우울증 재발을 예방하는 접근 방법으로서도 유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마음챙김에 기반한 우울 치료 프로그램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 치료(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 MBCT)이다. MBCT는 우울증 재발 예방을 목표로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전체 인구 중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인 유병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2~3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의 높은 유병률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높은 재발률이라고 할 만큼 재발 예방은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 재발의 특성을 살펴보면, 우울증에서 회복한 사람들의 약 50%가 이후 적어도 한 번의 우울증을 경험하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과거 두 번 이상의 우울증을 경험한 환자들의 재발률은 70~80%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우울증 재발의 가장 신뢰할 만한 예측 요인은 과거 2회 이상의 우울증을 경험했는가가 된다. 이는 재발성 우울증을 경험하는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들은 단발성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과는 심리적 기제가 다르다는 의미이다. 연구자들은 재발성 우울증의 특징으로 우울증의 초기 발병에는 중요한 부정적 사건(가족, 재산, 명예의 상실 등)이 선행하지만, 우울증 발병 횟수가 많아질수록 스트레스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는 연구를 제시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기존의 반복적인 우울증 발병은 새로운 우울증 발병을 보다 자동적으로 만들어준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이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들의 특징을 ‘차별적 활성화 가설’을 통해 설명한다. 차별적 활성화 가설은 과거에 우울증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약간만 기분이 저조해도 사고 패턴의 급격한 변화(전반적이면서 부정적인 자기-판단)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활성화된 부정적 사고는 저조한 기분을 유지하고 강화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사소한 기분 변화에도 부정적인 사고가 크게 증가하는 경향성을 ‘인지적 반응성’으로 칭했다. 연구자들은 우울증 재발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인지적 반응 양식으로 ‘반추적 반응 양식’을 꼽는다. 반추적 반응 양식이 있는 사람들은 기분이 저조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왜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하는가를 생각해 오히려 지속적이고 강렬한 우울 기분을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우울증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추적 반응 양식’을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MBCT 연구자들은 우울증 재발 방지의 핵심적인 과제를 환자들이 저조한 기분에 빠질 때 반추적인 방식으로 기분을 다루려는 경향성, 즉 인지적 반응성을 줄이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인지 치료가 약물 치료에 비해 우울증 재발률을 낮추므로 인지 치료의 원리를 활용함으로써 우울증 재발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인지 치료의 우울증 치료 모델은 선행 사건에 대한 부정적, 역기능적, 비합리적 사고가 우울증을 일으키고 지속시킨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스트레스 사건에 대한 역기능적인 태도나 신념을 재구조화하는 개입이 치료의 핵심이 된다.
연구자들은 기분이나 사고의 내용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그것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개발자인 카밧-진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챙김을 접하게 된다. 마음챙김은 의도를 갖고 현재 순간에 비판단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훈련이다. 연구자들은 MBSR에 참여하면서 마음챙김 훈련이 넓은 관점을 가지고 정신적 내용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집단 치료가 가능해 비용 대비 효과적인 방식이란 장점도 있었다.
우울증 재발 예방 프로그램의 핵심 치료 요인으로서 마음챙김의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자들은 MBSR의 기본 틀에 인지 치료의 요소들을 결합해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 치료(MBCT)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MBCT의 목표는 환자들에게 깊은 수준에서 이해의 변화가 일어나서 우울증을 재발하게 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신체 감각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내용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는 상위 인지적 통찰로 표현된다. 상위 인지적 통찰은 사고와 느낌들을 실제에 대한 반영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을 매 순간의 정신적 내용들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이다. 예를 들어 우울한 기분과 함께 “나는 엉망이다”와 같은 생각이 떠오를 때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정신적 사건으로서 관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상위-인지적 통찰을 사용하는 것이다.
MBCT에서는 느낌, 정서, 사고와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정신적 내용에 대한 두 가지의 태도를 구분할 것을 강조한다. 행위 양식(doing mode)과 존재 양식(being mode)이 그것이다. 행위 양식은 실제 일어난 상황과 상황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것 또는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감지했을 때의 마음의 태도이다. 행위 양식에서는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습관적인 마음의 패턴이 가동되며 자동적으로 부정적 감정이 유발된다. 만약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이 분명치 않거나 즉각적으로 실행될 수 없는 경우 행위 양식에 갇힌 사람들은 불일치에 초점을 두고 불만족감을 반복해서 경험하며, 차이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모니터와 평가를 하게 된다. 또한 과거나 미래를 분석하는데 몰두해서 현재 경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일어나는 생각들은 정신적으로 ‘실제’처럼 경험되게 된다. 이에 비해 존재 양식은 특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동기화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이다. 존재 양식에서는 실제 상황과 바라는 상황과의 불일치를 제거하기 위한 모니터와 평가를 하지 않으며, 경험되는 것을 바꾸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허용’한다. 존재 양식은 순간순간의 경험을 알아차리고 현재에 충분히 머물게 해주며, 경험을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친밀하게 접촉할 수 있게 한다. 존재 양식에서 생각과 감정은 마음속에서 일어나서 알아차림의 대상이 되었다가 사라지는 지나가는 사건으로 인식된다. MBCT에서는 행위 양식과 존재 양식을 ‘정신적 기어 레버’로 활용한다. 자신이 습관적인 행위 양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정신적 기어를 존재 양식으로 변환함으로써 현재 순간의 경험을 판단하지 않고 마음챙김하는 것이다.
MBCT는 8회기 프로그램으로서 보디 스캔, 좌선, 요가, 걷기 명상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비공식적인 마음챙김 수행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우울증에 대한 강의와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행동적 계획 그리고 전통적인 인지 치료에서 사용하는 기법들(예를 들면 자동적 사고에 대한 탐색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전통적인 인지 치료에서와는 달리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개발하는 것과 같은 사고를 바꾸도록 하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MBCT에서는 부정적으로 왜곡된 사고를 합리적으로 교정하는 것보다는 사고라는 것이 단순히 의식의 장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사건일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하는 데 더 초점을 둔다. 이러한 생각과 실재 간의 동일시에서 벗어나게 하는 탈동일시를 우울증 재발을 방지하는 치료 요인으로 가정한다. 여러 연구들을 통해 MBCT는 기존의 인지 치료와 동등한 수준의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성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자아초월상담학 교수로 있다. 최근에는 자비 명상을 토대로 한 심리 치료 적용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역서로 『자비의 심리학』, 『자비중심치료』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