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생명체와 다름에 대한 불교적 관점 | 과학기술과 불교

외계 생명체와
다름에 대한 불교적 관점

이상헌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외계인을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1997)라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단 한 명의 외계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콘택트>는 이른바 SETI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광대한 우주의 신비를 쉽고 명쾌하게 보여준 TV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코스모스>의 해설자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세이건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추진한 여러 건의 행성 탐사 계획에 참여했으며,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설치된 전파 교신 장치로 외계 생명체와의 교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세이건이 시도한 외계인과의 교신은 UFO 같은 것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세이건은 세간에 떠도는 UFO 이야기를 혐오한다.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는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이건의 과학 에세이집인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는 그런 세이건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SETI는 UFO 연구가 아니다
세이건이 시도한 외계인과의 교신 작업은 이른바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외계의 지능 생명체 탐사’ 작업이다. <콘택트>는 바로 SETI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SETI의 주요 수단은 전파망원경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광학렌즈를 이용한 망원경은 광학망원경이고, SETI에 사용되는 전파망원경은 빛이 아니라 전파를 매개체로 한다. SETI는 우주에서 발생하는 전파를 수집해 그 가운데 인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SETI의 기본적인 가정은 인류 이외에도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우주 어디엔가 존재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명체는 인류보다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을 수도 있다. 만일 인류에 버금가는 혹은 인류보다 진보된 문명을 건설한 외계의 지능 생명체가 있었다면 그들 역시 우리처럼 자신들과 다른 외계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외계 생명체를 탐사하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가 외계를 향해 전파를 발사하는 것이다.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미래의 외계 문명이 수신하기를 기대하면서.

우주는 약 140억 년 전에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지구는 약 46억 년 전에 생겼다. 그러니까 지구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우주에서는 약 100억 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생명, 더욱이 지능을 가진 생명이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라고, 이 우주에서, 140억 년 우주 역사에서 인류가 유일한 지능 생명체였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상상이다. 그러므로 SETI 연구자들의 가정은 일견 합리적이다.

우주선을 발사해 외계 생명체를 찾으려는 노력도 있지만 현재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태양계 내의 행성들을 탐색하는 것도 버겁다. 최근에 화성에서 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어서 화성에도 생명체가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생명체와 지능 생명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박테리아 수준의 생명체가 있다고 해서 인류와 유사한 지능 생명체로까지 진화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지구 역사에서만 보더라도 초기 생명에서 인류로까지 진화하는데 40억 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SETI는 단순 생명체가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지능 생명체를 탐색한다.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 밖으로 날아간다고 하더라도 외계인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구와 유사해 환경이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할 수 있는 행성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것도 수만 광년 떨어져 있다. 우주가 끝없이 광활하고 우주의 나이가 140억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기 때문에 인류와 같은 지능 생명체가 출현해 인류 문명을 넘어서는 문명이 출현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지 시간과 범위를 좁히면 그만큼 가능성은 줄어든다. 지구로부터 수만 광년 이내의 거리에 인류와 같은 지능 생명체가 현재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은 지극히 근거가 없다.

SETI는 우리와 만날 수 있는 우주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수백만 년 혹은 수천만 년 이전에 우주 어딘가에 존재했을지 모르는 외계 문명에서 우주를 향해 발사한 전파를 포착하려고 한다. 지구에는 매일매일 수많은 전파들(cosmic rays)이 우주로부터 쏟아진다. 이 전파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들이다. 혹시 그 가운데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여겨질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수학적 규칙에 따라 배열되어 인공적인 것이라고 믿어질 만한 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이 외계인이 보낸 메시지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 외계인을 만날 수 없다. 이미 오래전에 우주에서 사라지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 생명체 탐사의 역사
인간이 외계 문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단순히 상상에 의한 것 말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한 것도 몇 세기 전의 일이다. 18세기 말에 유럽에서는 외계 문명 문제를 다룬 과학 서적이 증가했다. 1686년에 출간된 퐁트넬의 『세계의 다수성에 관한 대화』와 19세기에 출간된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생명체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다수성』은 대표적인 책들이다.

19세기 초에 유럽인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외계 문명과의 교신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Carl F. Gauss)는 시베리아의 넓은 들판을 활용해서 달이나 지구에서 가까운 행성과 소통을 시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가우스는 넓은 시베리아 들판에 직각삼각형 모양의 밀밭을 조성하고 그 주위에 전나무를 빽빽이 심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렇게 하면 색깔과 형태 뚜렷하기 때문에 달이나 지구에서 가까운 행성에 외계인이 산다면 알아볼 것이라고 상상했다. 가우스는 또 거대한 거울을 만들어서 달에 신호를 보내는 방안도 제시했다. 19세기 말에는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다른 행성의 생명체가 전기신호 형태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고 그런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애썼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전파천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했다. 전파망원경이라는 혁신적인 도구 덕분에 우주 공간을 체계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60년에 드디어 SETI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오즈마(Ozma) 프로젝트이다.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와 휴렛팩커드의 컴퓨터 엔지니어 버나드 올리버(Bernard Oliver)가 공동 작업한 오즈마 프로젝트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국립전파천문대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태양에서 12광년 떨어진 두 개의 별, 즉 타우 세티와 엡실론 에리다니 쪽을 향하게 해 하루 6시간씩 7개월 동안 전파를 수신했다. 오즈마 프로젝트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즈마 프로젝트 이후에도 다양한 SETI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언론의 이목을 끄는 계획이 발표되어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와 러시아의 기업가 유리 밀러가 힘을 합해서 사상 최대 규모의 SETI 프로젝트인 브레이크스루 리슨(Breakthrough Listen)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과거 어느 때보다 우수한 최첨단 장비를 활용해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된다.

드레이크 방정식과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
드레이크는 오즈마 프로젝트를 시작한 1년 뒤인 1961년에 그 유명한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쪺을 발표했다. 이 방정식은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교신 가능한 문명의 수를 계산하는 것으로, 우리 은하 안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계산하는 식이다. 드레이크는 이 방정식의 해가 1만 이상일 것이라고, 다시 말해 우리와 교신 가능한 지적 문명이 우리 은하에 1만 개 이상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각각의 변항을 어떻게 추정하는지가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데 필수적이지만, 각 변항을 추정하는데 있어서 의견이 분분했다.


최근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애덤 프랭크 교수가 드레이크 방정식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드레이크 방정식에 내재하는 세 가지 불확정성 때문에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최근까지 쌓은 우주에 대한 지식 덕분에 그런 불확정성들이 충분히 완화되었다고 말한다. 프랭크 교수는 그 덕분에 드레이크 방정식의 해를 좀 더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르면 우주에 기술이 발달한 문명이 인류밖에 없을 가능성은 100억조 분의 1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는 그동안 수많은 기술 문명이 존재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프랭크 교수는 그런 기술 문명이 현재에도 존재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인류 문명 이전에 등장했다가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인 마틴 리스(Martin Rees)는 외계 문명의 가능성으로 새로운 상상을 제안한다. 리스는 SETI 프로젝트로 인공적인 신호를 감지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그런 신호가 감지될 경우에 그것은 지구와 비슷한 행성의 문명에서 보내온 신호가 아니라 자유롭게 떠도는 비유기적인 뇌에서 보내온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신호라는 것이다. 인간과 같은 유기체는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계 지능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나?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 외계 문명을 발견한다면, 그래서 외계의 지능과 조우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또 지능 생명체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외계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 우주생물학 연구가 진전을 보이고 있어서 외계 생명체가 발견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외계인 하면 할리우드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에 등장하는 괴물이 우리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처럼 낯선 것, 우리와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혐오와 증오심으로 표출되었다. 불교적 관점에서 외계인 혹은 외계 생명체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엉뚱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지구 안으로 좁히면 우리와 다른 나라,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또 불교의 핵심적인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가까운 장래에 우주 시대가 열리고 인간 이외의 지능적 존재가 발견되거나 출현할지 누가 알겠는가?

불교사상은 서양적 사고와 달리 매우 포괄적이고 유연하다. 불교 경전에 외계 생명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동물에 대해 언급한 여러 구절을 통해 우리는 외계 생명에 대한 논의를 유추해낼 수 있다. 불교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이 그 생명이라는 점에서 평등하며, 또한 인간에서 동물까지 모든 중생이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더욱이 불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범부와 성인, 인간과 동물의 차별이 없다. 생명이라면 외계의 것이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불교는 지구에만 국한된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우주적인 진리를 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다양한 설화에서 동물이 법을 알아듣거나, 심지어 법을 설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런 비유는 참다운 진리의 영역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가비마라 존자가 산으로 수행하러 가다 뱀을 만나 곤경에 처했을 때, 삼귀의를 일러주자 뱀이 물러갔다는 기록이나, 영명연수 선사가 천태산에 들어가 60일 만에 『법화경』을 모두 암송하자 염소 무리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들었다는 설화 등이 그런 것들이다.

또 불교의 윤회전생 사상은 모든 중생이 나와 다른 것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중생이 종을 교차해 윤회한다는 생각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혹은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외계의 어떤 생명체이든 일체 중생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와 경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이의 관점에서 보면, 부처와 중생, 고등동물과 하등동물, 인간과 외계인 사이에 다름이 없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가 동일 법성으로 인식된다. 생명의 종이란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교사상은 멀리는 우주 시대, 좀 더 가까이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여타 생명의 관계를 규정하고 반성하는 데 주요한 관점을 제시할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사상은 서양적 사고와 달리 매우 포괄적이고 유연하다. 불교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이 그 생명이라는 점에서 평등하며, 또한 인간에서 동물까지 모든 중생이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더욱이 불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범부와 성인, 인간과 동물의 차별이 없다. 불교는 지구에만 국한된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우주적인 진리를 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이(不二)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가 동일 법성으로 인식된다. 생명의 종이란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교 사상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여타 생명의 관계를 규정하고 반성하는 데 주요한 관점을 제시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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