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된 아버지 | 나의 불교 이야기

부처님이 된 아버지

박동성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박사 과정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 정호승의 시 「나팔꽃」 중

2018년 5월 21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심장이 칼로 긁히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날, 아버지의 사신(死身)은 나의 마음속 어두운 깊은 곳에 새빨간 상흔으로 새겨졌다.

그 핏빛 상처는 나의 마음을 갉아먹는 사신(邪神)이 되어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가 죽어서 이 세상에 이미 없다는 슬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 있어서 이 세상의 어느 곳에서 계속 외롭게 떠돌고 있을 것 같다는 환각이 밤마다 나를 엄습해오고는 했다. 실낱같은 미소조차 지을 수 없는 우울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른 희망은 바로 불교였다. 열 살 때부터 거대한 황금빛 불상을 볼 때마다 장중한 압도감과 묘한 이끌림을 느꼈던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 불교가 최적의 종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집 근처의 절을 찾아갔다.

절의 한 스님이 나에게로 다가와 상냥하게 공양을 권했다. 그 스님과 함께 공양간으로 자리를 옮겨 그에 얽힌 사연과 불교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불교에 본격적으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공양간에서의 식사 후 일주일이 지난 뒤, 나는 다시 그 절을 찾아가 정식 법회에 참석했다.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추어 읊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회가 끝난 후에 절 밖으로 나가 사바세계의 자연을 볼 때 세상이 새롭게 빛나 보였고, 나의 마음은 한층 더 온화해진 느낌으로 충만했다.

그렇게 나는 불도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마음을 고요하게 다듬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음으로 인해 타락했던 마음을 부처님께서 나누어주신 선(善)으로써 조금이나마 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매주 일요일 법회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요, 절의 어린이 법회 교사로도 활동했으며, 조계사에서 정식 수계와 법명을 받으면서 불교 신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몸소 절감할 수 있었다.

불자가 된 이후로 사람들에게서 인상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부쩍 많이 들었다. 모두 부처님께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나의 얼굴에 첨부해주신 덕이리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이렇게 사신(捨身)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열어준 것이 그의 죽음임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재앙의 은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을쏜가, 식물인간이 되어 침대에 누운 채 죽어가면서 그가 겪어야만 했던 참혹한 고통을. 그 고통이 이따금 떠오를 때마다 은은한 미소를 보내주는 것이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처님으로 다시 살아난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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