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과 명상 | 도연 스님의 '청년이 묻고 스님이 불교로 답하다'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과 명상

도연 스님
봉은사 명상 지도법사, 철학 박사


전 세계가 아직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불안정한 고용의 문제에서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코로나가 바꾼 사회 시스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달라졌고 앞으로 더 많이 변해갈 것입니다. 대면이 당연했던 삶에서 비대면이 일상인 삶으로 바뀌었고요. 그에 따라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원거리에서 소통하는 방식도 익숙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습니다. 소통 방식이 편리해지고 남들의 터치를 적게 받아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홀로 살아가는 측면이 많아지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적잖게 있습니다.

이렇게 코로나는 사회 전반에 걸친 거시적인 변화에서부터 개인의 내밀한 삶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켰습니다. 급격한 변화는 반드시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야 하기 때문이죠. 또한 바뀐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과도기에 놓여 있으므로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는 불편하고 성가시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과정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더 밝고 개선된 미래 사회를 위한 준비의 시기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기존 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펼쳐질 현상을 예측해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앞으로 만들어질 세상의 운영 체제는 지금과 달라질 것이고 달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의 폐단을 의심함으로써 허와 실을 파악해봐야 합니다. 돈이 권력이고 권력이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에서는 가진 자는 늘 가진 자고 가난한 자는 늘 가난한 자가 될 수밖에 없는 윤회의 사슬일 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과 경쟁의 두 바퀴로 움직이며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증폭시킵니다. 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와 권력의 재분배라는 이념 아래 자본과 힘을 극단적으로 중앙으로 집결시키는 사회주의 체제의 형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한 복지 국가는 상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이기심을 갖고 있는 인간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불평등과 불합리가 더욱 만연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절대 권력으로 치우칠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놀랍게도 AI 로봇이 모든 노동자가 바라는 세상을 열어줄 수도 있습니다. AI 로봇의 노동이 보편화되면 인간의 노동, 로봇의 노동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협업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단순 반복의 작업과 위험도가 높은 작업은 로봇에게 맡깁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로봇의 100% 사회화를 목표로 로봇이라는 생산 수단을 점진적으로 사적 소유에서 공유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 기술은 사회의 소산이며 개인이나 기업이 독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소유한 로봇에 대해서는 로봇세를 높은 세율로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죠. 국가의 로봇에서 발생하는 가치와 기업이 내는 로봇세는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무상 주택, 무상 교통을 핵심 골자로 한 보편적 복지를 구현합니다. 기본 소득과 기본 자산, 실업자에 대한 실업 수당과 재교육 등 사회 안정망 확보를 위한 재정으로도 활용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인류의 대부분은 단축된 노동으로 남는 시간을 여가로 보낼 수 있게 됩니다. 노동의 형태도 일과 놀이와 예술이 결합한 형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 구현되고 거기에서 발생되는 잉여가치는 자신과 사회의 몫으로 환원할 수 있게 되고요. 이렇게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면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곳에 갈 수 있지만, 그러한 향락도 진정한 자기실현을 충족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명상은 자신의 본성을 구현하는 삶의 수단으로 더욱 진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가로 누리는 물질적 향락은 부패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의식과 관념이 과거의 부패한 것에 머물러 있다면, 나의 삶 전체가 부패할 것이며 주변을 부패시키고 악취를 풍길 것입니다.

명상은 단지 고요히 앉아서 호흡을 하거나 몸과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명상은 매 순간순간을 맑은 의식으로 깨어 있으면서 정도(正道)를 걸으며 수습(修習)해가는 과정입니다. 불교에서 수행을 의미하는 bhāvanā라는 원어는 ‘경작하고 발전한다’는 의미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명상한다’는 뜻이 되었습니다. Bhāvanā는 ‘되다’라는 의미의 ‘√bhū’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꾸준한 명상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명상을 통해 본성을 회복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공동체적 삶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함께 어울려 살면서 수행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인류는 문명화의 길을 걸으면서 본래 원형의 상태를 찾아왔습니다. 우리의 본래 상태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던 공동체입니다. 인류는 700만 년의 역사 가운데 약 99.9%의 시간 동안 평등한 공동체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인류 사회는 자연과 공존하며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기존의 마인드와 삶의 방식을 갖고 위드 코로나를 할 수 있을까요? 근본적인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코로나는 더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이해서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자연으로부터 나온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 어우러져 살 수 있다면, 질병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명상은 자연에서 나온 우리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통로를 열어줍니다. 명상은 나 스스로가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스스로를 맑히고 고요한 상태로 만드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어도 우울감을 덜 느끼고 자기 안으로 침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명상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기를 이해하는 만큼 남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자연으로부터 나온 우리들이 서로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도연 스님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세계적인 물리학자를 꿈꾸었으나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고 2006년 출가해 탁발과 참선, 마음챙김 명상을 중심으로 수행해오고 있다. 최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봉은사에서 명상 지도법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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