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의 깊은 계곡에서 벗어나는 법 | 소통과 통합

젠더 갈등의 깊은 계곡에서
벗어나는 법

박사
북 칼럼니스트


경험에서 배우는 게 맞다면 역사 속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인류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날 세우는 갈등 상황은 여전하다. 부처님이 이미 수천 년 전에 싸우지 않는 법을 명쾌하게 가르쳤는데도, 오랜 후손인 우리는 그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서툰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다.

수많은 갈등이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과 오해로 일어나고 손댈 수 없이 번지곤 한다. 젠더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역사가 오래된 젠더 갈등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쟁점으로 불거지곤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특히 극렬하게 드러났고, 여성가족부, 군대, 고용 불평등, 임금 격차, 경력 단절 등의 쟁점이 부각되면서 오래된 싸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벌어지는 현실 자체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은 사실 관계를 밝히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서로 연기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진리가 바탕이 되어야 전후 사정이 환하게 드러난다.

여성과 남성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골이 깊다. 여성이 보기에 현재의 쟁점은 여성에게 ‘목숨의 문제’인데 남성에게는 ‘기분의 문제’이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보며 수많은 여성들은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공포에 떨었다. 살인범이 공용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남성 여섯 명을 보내고 일곱 번째 여성을 살해한 이 사건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 여성들이 위험을 느낀 건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인 ‘n번방’ 사건, 소라넷, 여성 화장실 불법 촬영, 데이트 폭력 등은 여성의 일상이 폭력에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여성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여성이 살해된 비율은 『한겨레21』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0만 명당 1.26명으로 OECD 가입국 38개국 중 아홉 번째로 많다. 2021년 온라인 성범죄는 1월부터 11월까지 4,058건이 발생해 2년 전에 비해 세 배가 넘게 늘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온라인 성범죄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가해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다. 2021년 경찰청의 범죄 통계에 따르면 강력 범죄자의 남성 비율은 95.3%, 강간은 98.4%, 강제 추행은 95.9%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는다고 반발할 만한 상황이 일어난다. 더구나 여성이 악의적으로 자신을 성폭력범으로 고발해도 피해자의 일관된 증언만 있으면 유죄가 나올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무고죄로 신고하는 사례도 급증해 2019년 역대 최초로 1만 건이 넘었지만 기소율은 3% 내외밖에 되지 않았다.

20~30대의 젊은 남성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이뿐 아니다. 이전 세대의 경우 여성이 차별받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신과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지금은 역차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핵심에는 ‘군대’가 있다. 한창 미래를 준비할 시기에 군대에서 “썩는” 동안 여성들은 인생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박탈감은, 제대하고 보니 그나마 있던 좋은 자리는 여자들이 다 차지하고 있더라는 억울함으로 연결된다.

한국이 고도 성장기를 지나던 1990년대 상반기에는 대학을 졸업한 남성의 84%가 정규직에 취업할 수 있었으나 세계적인 금융 위기 시기인 2007~2008년에는 비율이 56.3%로 떨어졌다. 높은 실업률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전에도 취업률이 높지는 않았기 때문에 남성만큼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젊은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강력한 경쟁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여성에게는 ‘군대’라는 핸디캡이 없으니까. 군대 문제에서 여성은 결정권이 없고 그 모든 결정의 책임은 국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여성을 탓한다. 그들은 “만기 제대하는 신체 건강한 젊은 남성” 또한 전체 남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넓은 관점을 갖기 힘들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힘이 세다. 20~30대의 젊은 남성들에게 젠더 갈등이 문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녀차별 현상은 여전하지만, 사회 초년생인 그들에게 그 상황은 ‘체감’의 영역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평균 연 3,000만 원 정도를 적게 받거나(여성가족부 2021년 성별 임금 격차 조사)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직업을 유지한 1983년생 여성은 39.6%에 그치는(통계청 2021년 인구 동태 코호트 데이터베이스) 현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삶에 밀려난다.

그 대신 그들의 삶을 차지하는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꼽히는 에펨코리아, 일간베스트, 루리웹, 클리앙 등은 남성 이용자가 훨씬 많은데, 소통의 도구로 반페미니즘 정서를 활용한다. 여성 혐오뿐 아니라 다양한 혐오가 온라인 놀이문화가 된 지는 오래되었다. 여성들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네이트판 등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빠르게 공유되고, 이 과정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면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확증 편향 때문에 자신의 신념에 맞는 ‘팩트’만을 수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념이 있는 이들은 이에 맞는 정보만 모아 공유하고, 커뮤니티에서 근거는 더 강화되고 주장은 한층 과격해진다. 객관적인 정보를 근거로 한 논쟁은 더 이상 소통의 방법이 되지 못한다.

이쯤에서 짚어보아야 하는 것은 실제로 이 갈등이 눈에 보이는 것만큼 큰가 하는 점이다. 인터넷은 특성상 자신의 생각을 공개하는 이들의 의견만 보인다. 신념이 확고하지 않은 사람들은 침묵한다. ‘2021년 양성평등 실태 조사’(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여성이 더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65.4%, 남성은 41.4%로, 절반에 가까운 남성이 현재의 사회구조가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극성스럽게 충돌하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젠더 갈등을 이야기하는 젊은 세대가 많지 않다는 특이한 현상의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양보와 타협이 아니다. 서로가 인지하는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판단이 바탕이 되어야 해결의 실마리도 함께 드러난다. 그러한 전제하에 대화해야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성에게 불평등한 사회는 남성에게도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여성의 임금이 낮고 지위가 불안정하면 남성이 부양해야 한다. 여성이 범죄에 당하면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고통스럽다. 연기의 관점으로 보면, 차별할수록 양쪽이 다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제대로 보고 알아야 양보와 희생 없이도 갈등의 깊은 계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넓고 긴 시야가 필요하다. 현실은 모니터 속에만 있지 않으니까.

박사
북 칼럼니스트. 일간지를 비롯해 각종 월간지와 주간지에 책과 문화와 관련한 글을 연재했다. KBS <김태훈의 프리웨이>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가꾼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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