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화쟁인가? | 소통과 통합

왜 지금 화쟁인가?

조형일
한국갈등조정연구소 대표


한국 사회는 갈등 공화국
세계 여론 조사 기관인 입소스에서 2021년 6월, 28개국 2만 3,000명을 대상으로 12개의 갈등 항목을 조사한 바를 발표했다, 한국은 전체 12개 항목 중 이념 갈등, 빈부 갈등, 성별 갈등, 학력 갈등, 정당 갈등, 나이 갈등, 종교 갈등 등 7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빈부 격차의 심각성이나 성별 갈등, 나이에 의한 갈등, 교육 수준으로 인한 갈등은 세계 평균의 두 배나 높게 나타났다. 한국은 갈등 공화국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고 최소화하는 갈등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이 2019년 기준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부의 갈등 관리 지수는 30개국에서 24위로 거의 꼴찌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의 역할
“부처가 중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살면서 힘든 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중생들이 답합니다. 첫째는 먹고사는 문제고, 둘째는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의 고통 중 ‘먹고사는 문제’는 종교가 해결해주기 어렵다. 그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로 힘든 문제는 종교의 가르침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자식과 부모와의 갈등, 동료와의 갈등, 주변 이웃과의 갈등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심적 고통을 받고 있다. 그리고 절집에서는 스님 간 갈등, 스님과 보살과의 갈등, 신도 단체 회원 간 갈등, 종무원과 신도 간 갈등 등으로 마음이 상하곤 한다.

종교가 이런 사람들 간의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음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화쟁을 통한 갈등 해결
갈등은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힘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갈등은 더 큰 미움과 대립으로 이어지고 결국 파멸로 빠질 뿐이다.

갈등은 화쟁으로 풀어야 한다. 화쟁의 사전적 의미는 화해하고 회통하는 것으로 맺힌 갈등을 화해로 풀고 소통하게 하는 화쟁은 가장 불교가 정통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원효 스님은 서로 달라서 빚어지는 갈등에 대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하나라고 말하시며 부질없는 다툼을 화쟁으로 풀 것을 말씀하셨다.

갈등 공화국, 사람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중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화쟁인 것이다.

바람직한 화쟁은 무엇인가?
갈등이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때로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참는 경우가 있는데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반드시 재연된다. 그리고 그 재연된 갈등은 더 첨예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갈등은 제때에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화쟁적 방식의 해결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화쟁은 어떤 것일까?

첫째 신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둘째는 갈등 당사자 모두 만족하는 해결이어야 한다. 셋째는 갈등 당사자들의 관계가 평화적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넷째로는 향후에는 유사한 갈등이 당사자 관계에서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

화쟁을 위한 세 가지 접근 방법
화쟁을 위해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요소는 감정의 해결이다. 갈등은 보통 문제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이해와 주장이 서로 달라 그로 인해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감정이 생긴다. 무시당하는 기분, 억울한 느낌, 참을 수 없는 분노들이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문제보다는 이 감정이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감정을 무시하고 문제 해결에만 접근한다.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대화도 합리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나쁜 감정이 있으면 문제 해결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비난하게 되고, 비난당한 상대는 더 상처를 받아 격하게 공격을 해서 갈등은 풀리지 않은 채 더욱 꼬이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 상대방의 감정을 풀어야만 문제에 제대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화난 감정을 알아주고 들어주고 때론 사과하면서 감정을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면 두 번째 화쟁 접근 방법은 문제 해결을 위해 겉으로 드러난 주장이 아닌 숨겨진 속마음을 찾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과 속마음이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갈등 상황 속에서 상대방에게 하는 말(주장)은 공격적인데 이유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크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난 표현보다는 표현하지 못한 속마음, 즉 두려움이나 걱정, 혹은 진짜 원하는 바를 찾아 확인하고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 화쟁 접근 방법은 스스로 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갈등이 심각해지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충돌이 일어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죽이는 해결책 말고 합리적 시각에서 풀고자 하는 해결 대안을 갖고 있다. 화가 나거나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고 합리적 해결 대안을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감정을 풀고 속마음을 파악한 후에는 어떤 해결안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렇게 갈등 당사자가 스스로 제시한 해결안을 파악하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것이 바로 화쟁적 해결 방법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타인의 해결안보다는 자신이 제시한 해결안에 만족하곤 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수용하자
갈등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갈등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부처일 것이다. 살아 있는 평범한 우리 모두는 다양한 갈등 요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갈등 요소가 표출되고 상대방과 대립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생활에서 쉽게 시시비비(是是非非)에 빠진다. 어떤 사안을 보고, 혹은 어떤 행동을 보고, 어떤 사람을 보고 그는 “틀렸어”라고 쉽게 규정하게 되고 이런 규정이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시선에서 본 옳음일 뿐이다. 그는 틀린 것이 아닌 나와 다른 것이다. 바로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화쟁적 삶이라고 본다.

조형일
현재 한국갈등조정연구소 대표, 광주광역시 갈등관리심의위원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사람은 왜 이렇게 싸울까?』(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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