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실천과
사성제의 구조
화령 정사
불교총지종 정사, 보디미트라 ILBF 회장
십이연기가 어떻게 해서 괴로움[고(苦)]이 발생하는가를 밝힌 유전 연기의 설명에 중점을 두었다면, 사제팔정도에서는 괴로움에서의 해탈을 논하는 환멸 연기에 중점을 두고 설해졌다. 특히 팔정도는 괴로움으로부터의 해탈을 위한 여덟 가지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성제 자체로서는 유전 연기와 환멸 연기의 모두를 포함하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고제와 집제는 유전 연기를 나타내고, 멸제와 도제는 환멸 연기를 나타낸다. 불교에서는 고를 멸해 열반적정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사성제는 특히 환멸 연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성제 전체의 구조를 보면, 고와 집의 이제(二諦)는 미혹의 인과를 보여주고, 멸과 도의 이제는 깨달음의 인과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집은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고는 집의 결과가 되며, 도는 멸의 원인이 되고 멸은 도의 결과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제의 각 항목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전체로서 성불에 이르는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체계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사성제는 고의 현상과 고가 일어나는 원인, 그리고 고가 멸해진 상태와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사성제의 구조는 마치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고란 몸에 병이 든 것과 같으며, 집은 병의 원인에 해당되며, 멸은 병이 없어진 이상적인 상태이며, 도는 병을 고치기 위한 방법에 해당된다. 병을 고치려면 먼저 그 증세를 정확하게 파악해 진단을 내려야만 병의 원인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병이 없어진 건강한 상태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토대로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붓다께서는 이러한 치병(治病) 원리에 의해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사성제의 구조에 의하면, 우리는 먼저 고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고가 일어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 다음 고가 멸해진 이상적인 상태를 염두에 두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이 곧 팔정도인 것이다. 붓다께서 대의왕(大醫王)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도 이러한 치병 원리에 의해 중생의 고를 멸해주시기 때문이다.
실상을 파악하고 원인을 규명해 그것을 적절한 방법에 의해 제어하는 이러한 사성제의 원리는 괴로움을 없애는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며 과학적인 탐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이다. 즉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문제점을 바르게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가 없어진 상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즉 문제점이 없어진 정상적인 상태, 혹은 가장 바람직한 이상적인 상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정상적, 혹은 이상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성제의 이러한 구조는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 믿고 보자는 식의 저급한 종교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 불교이다.
불교의 모든 교리와 수행 체계도 사성제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그 역할이 더욱 분명해진다. 고·집·멸·도의 네 가지 성제를 통해 인생에서의 고의 실상을 명확히 알고, 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파악하며, 팔정도를 통해 고를 제거하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사성제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와 그 방법을 제시해주는 실천론이기도 하다. 또한 사성제는 이론과 실천면에서 불교의 전체 구조를 축약해 알기 쉽게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께서도 사성제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그대들이 사성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그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그대로 받아 지니지도 못했다면, 우리는 오랜 세월 나고 죽는 가운데서 분주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그대들은 이 고성제에 대한 진리를 그대로 알고 그대로 깨달았기 때문에, 삼계의 번뇌를 끊고 생사에서 벗어나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게 되었다. 또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에 대한 진리를 그대로 알고 그대로 깨달았기 때문에, 삼계의 번뇌를 끊고 생사에서 벗어나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사성제에 대해 아직 밝게 알지 못했거든 부지런히 방편을 쓰고 정진하여 밝게 알도록 노력하라.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성제를 알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윤회를 거듭하면서 괴로움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제자로서 사성제를 아직 잘 모르겠거든 부지런히 노력해서 알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이처럼 사성제는 불교의 실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사성제를 배우기 위해서는 어떤 순서를 밟아야 하는지를 알아보자.
언젠가 붓다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에 어떤 비구가 붓다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성제를 조금도 미혹됨이 없이 밝게 아는 것은 점차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붓다께서는 계단을 오르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이 사성제를 조금도 미혹됨이 없이 밝게 아는 것은 점차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마치 네 개의 계단을 밟고 전당에 오르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첫 계단을 밟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단을 밟고 전당에 오르려 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 계단에 오른 뒤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단을 차례로 밟고서야 전당에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고성제를 미혹됨이 없이 밝게 알지 못하고는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붓다의 말씀으로 미루어볼 때, 사성제에 대한 이해는 고성제로부터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차례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순서대로 사성제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령 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불교총지종 교육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보디미트라 ILBF(국제재가불교포럼) 회장으로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불교 교양으로 읽다』, 『담마빠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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