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기르 | 각전 스님과 떠나는 부처님 성지 순례

꽃과 미소로 승화된
전법의 중심지

라즈기르

라즈기르의 구릉과 온천사원 전경

라즈기르는 보드가야 북동쪽 71.5km, 파트나에서 남쪽 102km에 위치하며 해발 73m, 다섯 개의 바위 구릉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빔비사라왕이 앙가국을 병합한 후 바이샬리의 침공에 대비해 성을 쌓고 그 성에 머물렀다고 해 왕사성(王舍城)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터가 방어에는 좋지만, 좁고 식수 공급에 문제가 있어서 아자타샤트루왕이 새로 성을 짓고, 파트나로 이전을 준비하게 된다. 그의 아들 아자타샤트루왕은 투석기, 라타무살라(낫을 장착한 전차) 등 신무기를 개발해 북인도를 통일한다.

최강대국의 수도 라즈기르는 종교와 철학, 문화의 용광로였다. 인근에 가장 높은 선정 수행자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가 머물렀다. 또 가장 선진적인 사상가들인 사문들이 모여든 고행림도 라즈기르에서 가까운 우루벨라에 있었다. 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천 명의 제자를 거느렸던 가섭 삼 형제 역시 우루벨라에 있었다.

라즈기르의 불교 유적은 영축산, 빔비사라왕 감옥터, 죽림정사, 온천정사, 핍팔리 석실, 칠엽굴 등이다.

이 도시는 무엇보다 출가한 싯다르타의 행선지였다. 출가 후 처음으로 이곳에서 눈물 어린 탁발 공양을 하셨음에도 강대하고 부유한 나라를 주겠다는 빔비사라왕의 제안도 마다하고 우루벨라로 고행의 길을 떠나셨으니, 부처님은 궁극적 진리를 향한 열정을 재차 보여주신 것이다.

라즈기르는 부처님의 활동이 가장 역동적이고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마감된 승단과 전법의 중심지였다. 상수 제자인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 훗날 선종의 비조가 된 마하가섭 존자를 제자로 받은 곳이며, 빔비사라왕이 보시한 최초의 절 죽림정사가 생긴 곳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성하는 당대 최대 도시였던 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살심과 이욕, 배신과 의리, 질투와 자애 등 사람의 극한 감정들이 맞부딪혔던 뜨거운 삶의 현장이었다.

데바닷타를 지원한 아자타샤트루왕은 아버지를 죽이기에 이른다. 빔비사라왕은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옥에 수감된다. 그 왕을 위해 왕비가 몸에 꿀을 발라서 감옥에 들어가 연명시키지만 결국 굶어 죽는다. 감옥 터에서 멀리 보이는 영축산정만이 수감된 왕의 마음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아자타샤트루왕은 그 후 악몽에 시달리다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직전 영축산으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참회한다. 그때 『사문과경』이 설해진다. 사문이 출가해 얻는 이득이 무엇이냐에 대한 경전인데, 이 법문을 듣고 아자타샤트루왕은 마땅히 법의 깨끗한 눈이 열려야 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과보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왕이 죽어서는 지옥보를 다 받은 후에 벽지불이 될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예언하신다.

영축산 산정법단

죽림정사의 카란다 연못

데바닷타는 부처님께서 반열반하기 8년 전에 승단을 인계받으려다 실패하자 따로 승단을 구성하고 부처님을 시해코자 한다. 그는 아자타샤트루왕의 전투 코끼리 닐라기리를 빌려서 술을 먹여 부처님께 돌진하게 한다. 부처님을 향해 난폭하게 코끼리가 술 취한 채 달려오자 아난존자가 그 앞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부처님 앞에 온 코끼리는 갑자기 공손히 무릎을 꿇는다. 이를 취상조복(醉象調伏, 술 취한 코끼리를 항복받음)이라 하는데, 인도의 불탑이나 건물 벽에 많이 작품화된 주제이며, 인도 팔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코끼리를 막으려 한 아난존자의 행동에 대해 『본생담』이 설해졌는데, 그것이 『함사 본생』이다.

영축산정 정사 동쪽의 긴 바위가 부처님께서 경행하던 곳인데 이곳에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해치려고 돌을 굴려 그 파편이 튀어서 부처님 몸에 피가 났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본생담』이 『마하카피 본생』(남전 『본생경』 516번)이다.
부처님 석굴에서 참배하는 태국 스님

핍팔라 석실

웃타라와 창녀 시리마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이 사건에서 자애관과 백골관이 등장한다. 바라문 교도인 시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못해 부처님을 뵐 수 없었던 웃타라는 친정아버지가 준 돈으로 하룻밤에 천 냥을 받는 유녀 시리마를 사서 보름간 남편 시중을 들게 하고, 자신은 죽림정사에 계신 부처님께 직접 공양을 올리게 된다. 보름의 마지막 날 시리마는 공양을 준비하는 웃타라를 질투해 펄펄 끓는 기름을 웃타라에게 퍼붓는다. 웃타라는 자애 삼매에 들어 위기를 모면하고 시리마를 부처님께 귀의케 한다. 시리마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수다원이 된다.

그 후 시리마가 죽자 부처님은 그녀의 시체를 시내의 길 중간에 두어 썩게 해 시리마의 미색에 홀린 비구로 하여금 정신 차리게 하고 이를 방편으로 도과를 증득하게 한다. 여기서 백골관이 실천되었다.

이렇듯 격렬한 삶의 현장이던 라즈기르는 불교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첫째, 부처님께서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고 정리하신 출발지이자 부처님의 말씀을 모은 1차 결집지이다. 온천정사 위에 위치한 칠엽굴에서 불멸 후 3개월 뒤에 시작해 7개월 동안 거행되었다. 결집을 발의한 마하가섭 존자에게는 “부처님의 교법을 오천 년 세월 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는 환희심이 생겼다.

둘째, 부처님의 모든 교법을 종합한 곳이다. 영축산에서 설해진 『법화경』은 모든 물줄기가 바다로 모여들 듯,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은 결국 일불승(一佛乘, 궁극적으로 모두 부처가 되는 가르침)이라고 설하시어 모든 다양한 경전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부처님 사후 사상적 혼란에 대비하고, 수많은 제자들이 미래세에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수기해 모든 제자들을 포함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셋째, 선종의 사상적 기반이 된 삼처전심(三處傳心,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함) 중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현장이다. 말씀은 일불승으로 통합, 정리했지만, 말씀이 진리는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손에 꽃을 쥐고 들어 보이셨다. 이를 보고 마하가섭 존자가 미소를 지으셨다. 마음은 없앨 수도 없고 떼어낼 수도 없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마음은 존재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스승의 주먹을 펴신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마음을 전해 영원히 꺼질 수 없는 등불을 켜셨다.

글과 사진|각전 스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출가했다. 현재 전국 선원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저서에 『인도 네팔 순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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