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만나야 할
분명한 이유
이무용
대원아카데미 동문회 부회장
오늘은 날씨가 참 무덥다. 습하기도 하다. 무더위의 시작 신호가 울리면 내 안의 불안도 꿈틀거린다. 6년 정도 여름의 무더위만 시작되면 불에 데인 것과 같은 고통과 답답함으로 고생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이제는 좀 좋아졌지만 더위만 생각해도 그때의 고통이 연상되어 불안이 올라온다. 불안하다는 것은 편두통처럼 고통이 되는 일이였으나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나의 스승, 도반이 되어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불안이 아니면 나는 그냥저냥 살아지는 대로 살았을 것이다.
나의 20대에서 30대 초반은 우울증으로 암흑과 같은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우울증은 내면 깊숙한 불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나는 그 불안으로부터 도망가고자 나만의 동굴을 만들어 숨어 지냈다. 그때의 우울은 너무나 거대하고 무서워서 싸우기보다는 도망가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이건 뭐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미약한 의문이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의 기폭제가 되어 여러 공부를 시작하게 된 첫 출발이 되었고 불교를 만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도 되었다. 그 당시 절에서 수행하면 좋아질 거란 지인의 말씀으로 절에 기거하며 나름 수행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불상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제가 왜 이럽니까?’ 하는 질문을 끝없이 해보기도 했었다. 역시나 부처님은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래서 가끔 원망도 좀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답을 주셨어도 답을 들을 수 있는 눈과 귀가 없던 시기였다. 지금도 불안은 가끔 찾아온다. 불안은 어두운 마음과 함께 붙잡을 것 없는 허공에서 막연히 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지금은 그 마음을 조용히 바라볼 때도 있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에너지로 사용하기도 한다. 불안이 느껴질 땐 부처님 말씀처럼 언제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음을 되새기며 미루지 않고 수행의 씨앗으로 삼고자 한다. 바깥이 아닌 나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불안은 내가 나태할 때나 잠시 세상의 재미에 취해갈 때 회초리를 때리는 예쁘지 않은 도반이다.
나는 5년 정도, 유아 대상 학원에서 운전 일을 했다. 운전 일을 시작할 초기에는 음악도 듣고 아이들과 대화도 많이 했으나 이 시간을 온전히 나 자신과의 만남 시간으로 해봐도 좋을 듯싶어 지속적인 알아차림 연습을 통한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갔다. 운전을 하다 보면 날아가도 맞추기 힘든 스케줄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날 차까지 막히면 내 마음은 학원 원장에게로 간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불쾌한 얼굴로 차를 기다리는 애들 부모들이 생각나 마음이 자꾸 원장에게 간다. 내 속의 이런 날 원망은 너무 달콤해서 거부하기 쉽지 않다. 원망과 분노를 경험하기 좋은 환경이다. 차가 심하게 막히면 지름길을 찾아 일방통행인 골목길로 들어간다. 이럴 때 맞은편으로 들어오는 차는 정말 밑바닥 분노까지 올라오게 만든다. 그 분노의 용암 불을 바라보면 내가 옳다는 마음에서 만든 무시무시한 칼 한 자루가 보인다. 이미 그 칼로 많은 이를 베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또 누군가를 베기 참으로 쉽다. 내가 ‘나’를 만나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 그러나 실천은 쉽지 않아서 마음은 자주 저 멀리 제 집을 나간다. 그러나 불안과 분노를 다루어야 하는 법은 결국 바깥 대상으로 향하는 마음들을 내 안으로 돌려 불안과 분노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으로 결국 같다. 나에게는 운전이 수행이고 불안이 수행이고 분노가 수행이 되어준다. 일방통행 길에서 마주한 차도, 학원 원장도 모두 수행을 돕는 참 도반이다.
나의 생활 속 수행을 가능하게 해준 대원아카데미의 명상과 심리 공부는 ‘탈동일시’라는 이름으로 ‘마음 알아차림’의 생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고 내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분노, 원망 같은 감정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해주었다. 수업을 듣다 보면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신 분들도 만나게 된다. 그분들의 열의에 힘내어 스터디를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며 심리나 불교 경전 등 폭넓은 관심사를 같이 고민해보는 그런 시간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했고 나의 시각을 넓히는 계기도 만들어준 것 같다. 불안이라는 예쁘지 않은 도반보다는 정말 귀한 도반을 만나는 소중한 만남의 장소이다. 이 자리를 빌려 도반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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