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증(乾燥症)을 이겨내자
정지천
동국대학교 일산한방병원 한방내과 교수
가을은 금(金)에 해당되고 ‘조(燥)’, 폐장에 연관된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기 후가 건조해서 산불이 잘 나듯이 우리 몸에 ‘조증(燥症)’을 일으키는데, 입이 마르고 입술이 타며 기침, 기관지염, 천식 등의 호흡기 질환이 잘 생긴다. 폐가 건조한 기 운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한 폐 계통에 속하는 코, 피부, 머리카락, 대장도 건조 해지므로 비염이 생기고 피부가 거칠어지며 가렵고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변비가 생기기 쉽다. 코로나19 감염의 후유증 가운데 호흡곤란, 흉통, 검붉거나 보랏빛의 피부, 두드러기, 탈모증 등이 생기는 것도 폐를 침범해서 건조시킨 탓으로 보인다.
조증은 다른 원인으로도 생길 수 있다. 근심과 걱정이 많거나 화를 내거나, 혹 은 일이나 성생활이 과도하거나, 혹은 굽거나 볶은 음식, 술, 매운 음식, 열성이 강 한 약, 땀을 내게 하는 약, 이뇨제나 설사를 나게 하는 약을 오래 먹는 등이다. 그 리고 폐결핵 같은 만성 소모성 질환이나 암환자에서도 잘 생긴다.
몸이 건조해지면 물이 부족해지게 되는데, 물은 ‘음기(陰氣)’에 속한다. 특히 폐 의 음기 부족을 일으키고 그것이 간장에 영향을 주어 간장의 기를 맺히게 하므 로 옆구리에 통증을 일으키고 기, 혈, 담의 소통에도 장애를 준다. 그래서 신경정 신계도 안정을 잃게 되어 쉽게 짜증과 화를 내고 얼굴에 열이 달아오르며 가슴이 꽉 막힌 듯이 답답하고 기분이 우울하고 치밀어 오르는 ‘울증(鬱症)’이 생기게 된 다. 울증은 머리가 무겁고 아프며 변비와 설사가 교대하고 생리통, 냉증, 가려움 증, 두드러기, 불면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조증은 노인에서 많이 생긴다. 체내 수분량이 신생아기에는 70%가 넘지만 점 차 줄어서 노년기에는 53% 정도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침, 위액, 장액, 땀, 소변 등 몸속의 모든 물을 총칭해서 ‘진액(津液)’이라고 하는데, 진액이 부 족하거나 넘치면 병증이 생기게 된다. 진액을 비롯한 몸속의 음기는 중년기부터 점점 부족해지므로 당뇨병, 고혈압, 중풍 등이 유발되기 쉽고 노화가 촉진된다.
건조한 기후로 인해 몸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 작용을 하는 것은 ‘양기(陽氣)’인데, 찬 기후는 폐를 상하게 하고 양기를 약화시키므로 건조한 기운이 쉽게 침습해오게 한다. 그러므로 보온에 힘써야 하며 특히 몸이 수척하면서 냉한 사람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반면 몸이 수척하면서 열이 많은 사람은 열이 더욱 심해져 음기를 상하지 않도록 음기 보충에 힘써야 한다.
조증을 예방하려면 신경을 많이 쓰거나 화를 내는 것을 피하고, 실내에 적당한 습기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음식은 일반적으로 기를 발산시키는 매운맛을 적 게 먹고 음기를 도와주는 신맛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조증에 가장 해로운 것이 담배다. 맵고 뜨겁고 매우 건조한 성질이기 때문인데, 습기를 물리치는 데 최고의 약이 되지만 피부를 까칠하게 만들고 머리카락을 가늘어지게 하고 잘 빠지게 한다.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중환자로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두 배가 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 같다.
조증에는 꿀, 검은깨, 더덕, 사과, 배, 포도, 토마토, 귤 등이 도움이 되고, 지황, 맥문동, 구기자, 산수유, 오미자 등의 한약재와 ‘경옥고(瓊玉膏)’를 쓴다. 음기를 보 충해주므로 기침, 천식, 변비, 탈모를 비롯해 목이 마르고 잘 쉬며 몸이 수척한 경 우, 오후에 열이 조수처럼 올랐다가 내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잠잘 때 식은땀이 나 고 피로한 경우에 효과적이다. 우리 몸은 너무 습하거나 건조하지 않고, 음기와 양기가 조화되어야 건강한 상태이다.
정지천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한의대 교수로 재 직하면서 서울 동국한방병원 병원장, 서울 강남한방병원 병원장, 대한한방내과학회 부회장, 동국대의료원 부의료원장 겸 일산한방병원 병원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부터 대한체육회 의무위원회 위원, 대통령 한방의료자문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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