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심리학과
불교 명상의 접점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1903년 12월 어느 날,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 수업에 노란 승복을 입은 스님이 들어와 강의실 뒤쪽에 조심스레 앉았다. 당대 심리학의 대가였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교수의 수업을 청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 학 생들 사이에서 노란 승복의 스님은 당연히 눈에 띄었고, 제임스 교수는 스님에게 앞으로 오시라고 손짓했다.
사실 스님은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1864~1933)라는 스리랑카의 불교 부흥운동 의 선구자로 승복을 입었지만, 머리를 깎지 않았으며 세계를 여행하며 불교를 알 리는 최초의 불교 포교사였다. 10년 전 시카고에서 열렸던 세계 종교 의회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강연자를 제임스 교수는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의 부탁에 스님은 몇 가지 불교 교리를 간단히 설명했다. 스님이 설명을 마치자 제임스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오늘 들은 내용은 25년 후 모든 학생이 공부하게 될 심리학입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도록 대학의 심리학 강의에서는 본격적으로 불교를 가르 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불교에 대한 제임스의 열린 마음을 제임스 이후의 발전 된 주류 심리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실용주의 철학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의식을 생각과 정신적 이미지가 강처럼 간단없이 흐르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종교적 체험은 의식의 변형(transformation in consciousness)과 관계있고, 그것의 원천은 인간의 잠재의식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그 현상들의 기능에 대한 제임스의 연구는 인간 심리와 무아(無我)에 관한 불교 이론과 유사하다.
미국의 심리학과 철학에 끼친 제임스의 영향은 일반적으로 높이 평가되지만, 불교에 대한 서양의 이해에 그가 미친 막대한 영향력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임스 이후 서양의 심리학은 제임스가 추구하던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심리학은 연구자 스스로 마음의 현상을 탐색하는 작업보다는 실증적 객 관주의에 기초한 과학적 방법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으므로, 객관성이 보장 되지 않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신념에 따라 연구자의 내적 체험은 단지 주관적 견해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사조를 따르는 심리학계에서 불교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공감 하는 심리학자들은 드물었다. 칼 융(Carl Jung), 에리히 프롬(Erich Fromm), 게슈탈트 심리 치료의 펄스(Fritz Perls) 등과 같이 불교와 심리학을 연결해주었던 유명한 심 리학자들이 대부분 주류 심리학자들이 아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의 학문적 방법론은 연구자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는 ‘일인칭’ 주관적 접근에 의존 하는 것이지만, ‘삼인칭’ 객관적 접근에 기초한 인지심리학이나 신경심리학과 같은 주류 심리학은 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방법론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리학계에 강한 임팩트를 끼친 불교 명상 기반의 심리 치료 가 나타나게 되는데, 1970년대 후반에 존 카밧진(Jon Kabat-Zinn)이 개발한 ‘마음챙 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BSR)’이 바로 그것이다. MBSR은 참여자가 8주 동안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을 수행하면서, 판단하지 않는 초심자의 마음 과 인내와 신뢰를 바탕으로 애쓰지 않고 수용하며,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을 증진 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 즉 스트레스원(stressor)을 다루는 심리 치유 프로그램이다.
카밧진은 초기 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의 구성 요소인 정념(sati)을 명상 수련의 핵심으로 삼아 프로그램의 참가자가 정념(sati)의 능력, 즉 자각 능력을 최대한 함 양해 외부 자극에 빼앗긴 마음을 수습하고 서서히 존재 양식(being mode)을 회복 하도록 해 심신이 이완되고 스트레스가 완화되도록 했다. MBSR은 그 효과에 대한 임상적 실증 연구의 결과가 축적됨에 따라 심리학계와 의학계의 상당한 관심을 받게 되었고, 향후 30년 동안 수많은 단체에서 MBSR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해오고 있다.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의 의과 대학의 80%가 환자에게 마음챙김 수련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마음챙김에 대한 연구와 함께 불교 명상에 관한 신경과학적 연구도 발전하게 되었는데, 데이비슨(Richard Davidson)은 티베트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행복감과 활력이 증진될 때 활성화되는 좌측 전전두엽의 활동을 명상 수행이 촉진한다는 것 을 발견했다. 카밧진의 MBSR 참여자들도 마음챙김 명상에 의해 좌측 전전두엽이 활발해지고 정서적 상태가 긍정적으로 개선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데이비슨의 연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심리학적·신경생리학적 연구가 불교 명상 및 마음챙김 프로그램이 스트레스 완화·주의집중·인지와 정서 조절과 같은 심리적 효과뿐만 아니라 노화 지연, 면역력 강화와 같은 신체적 건강 증진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효과에 대한 탄탄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한 마음챙김 명상은 마음챙김에 기 반한 인지행동치료(MBCT), 수용전념치료(ACT), 변증법적 행동치료(DBT) 등과 같은 다양한 명상 기반 심리 치료 기법 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며, 심리 치료 분야의 주류가 되었다. 이와 같은 발전은 불교 명상의 대중화와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불교 명상이 대중적이 될수록 현대인들에게 이해되는 불교는 본래의 뜻으로부터 멀어지는 폐해가 생기고 있다. 본래 불교는 해탈(또는 열반)을 구하는 수행자들을 위해 위빠사나와 사마타와 같은 마음 계발의 수행법을 제공했는데, 명상의 대중화 및 산업화로 대중들은 점차 불교의 수행을 심리적 고통을 없애주는 명상이자 행복을 가져오는 명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위빠사나 지도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엥글러(Jack Engler)는 불교 명상과 심리 치 료의 융합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 다. 불교의 수행법과 심리 치료는 엄연히 목표가 다른데 최근의 동향은 불교 수행법이 심리 치료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중들이 심리 치료에 기대해야 할 것을 불교 수행법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아래 위빠사나와 사마타를 배우는 입문자들은 ‘최상의 정신적 건강 상태’를 마음속에 그려놓고, 그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 명상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 히 말해 불교 명상을 수행한다고 해서 심리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엥글러는 심 각한 정신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의 선 수행자인 그레이엄 선사(Dogo Graham)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에 타계한 캐나다의 유명한 불교 지도자인 마이클 스톤이 생전에 심각한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명상 수행자들이 실망했다고 한다. 만일 나의 선 센터에 오는 명상 수행자들에게 불교 명상은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약이 아니라고 말하면 크게 낙담할 것이다.”
불교와 심리 치료는 심적 고통의 해결이라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해탈’이라는 불교 수행의 목표와 ‘정신 건강’이라는 심리 치료의 목표는 서로 마음의 고통에 대한 전혀 다른 이해에서 출발한다.
심리 치료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인 자기’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전제한다. 만일 심리적 고통이나 증세가 일어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 고통을 본질적인 자기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서 이 러한 정신적 증상을 완화하려고 애쓰게 된다고 심리 치료는 간주한다. 이와는 달 리 불교에서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자아의 경험에는 심리적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라고 본다.
불교는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본질적인 자아’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단지 궁극적인 진실이 아니라 ‘세속적인 진실’로 인정할 뿐이다. 그리고 세속적 진실인 자아에는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세속적인 진실을 초월해, 보고 듣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의 자아가 ‘실체가 없다(無我)’는 것을 체험을 통해 이해하는 것을 ‘궁극적인 진실’로 본다.
신경과학자 슈워츠((Jeffrey Schwartz)도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의 융합에 관해 경 고하면서, 만일 명상 수행자가 심리 치료가 그렇듯이 자아를 정신 활동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상에 걸맞지 않은 심리적 불편이나 고통을 해소하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는 마치 강박증 환자가 자신의 편안한 최 적의 상태를 방해하는 불안 요소를 없애려고 애쓰는 마음과 같은 마음 상태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한다.
심리 치료와 불교 명상의 만남은 서로 이해하고 상대의 장점을 받아들여 자신을 혁신하는 기회로 삼는 소통과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유익한 결과를 낳았으나, 다 른 한편으로 불교 수행의 본래 목적이 정신 건강이라고 오해하는 폐해도 생겼다.
국내에서도 명상의 대중화와 함께 일종의 심리 치료 기법인 명상을 불교의 본 래적인 수행법과 혼동해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과학적 연구의 틀 을 장착한 심리학이 불교를 표면적으로 이해하기만 할 뿐, 건강한 자아와 무아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윌리엄 제임스가 불교를 이해했듯이 심리학과 심리 치료를 연구하는 현대의 학자도 불교 수행의 목적인 무아는 특정의 이상적인 심리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의식의 흐름이 자아감을 형성하고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에 대한 체험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불교 명상이 정신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간주하는 실수는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현대 심리 치료와 불교 명상의 만남에서 요청되는 하나는 해탈과 정신 건강의 진의를 신중하고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불교 명상의 연구와 심리 치료 연구의 협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때 비로소 조화로운 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 불교의 고전에는 ‘명상’이라는 용어에 대응되는 단어가 없다고 말한다. 불교가 서양에 소개되어 연구가 진행될 때, 불
교 용어인 dhyāna/jhāna를 meditation(명상)으로 번역함에 따라, 이후의 불교 연구에서는 dhyāna뿐만 아니라 불교
의 정신적 수행법을 통칭 meditation(명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 CIIS)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동서양 심리학 박사를 받았다. CIIS의 동서양 심리학과에서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동국대 명상심리상담 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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