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에 스며든 불교 정신 | 문학으로 읽는 불교

김소월 시에 스며든 불교 정신

김관식
시인


들어가며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은 190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34년 짧은 생 애를 살다 갔으면서도 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할 정도의 시를 창작 해 오늘날까지 그의 시는 애송되고 있다. 소월 자신의 내면적 고뇌와 갈등을 빚은 비운의 가정사와 생애는 1920년대 수난의 역사와 관련되어 한(恨)의 정서로 확장 되었고, 한국적 자연환경 속에서 자리 잡은 토속적 민간 신앙과 불교가 융합한 생활 정서를 애절하게 노래한 시인은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소월뿐이다.

소월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를 발간했다. 이 시집에는 152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자연 정서와 향토미의 구현, 한국 고유의 전통 정 서인 한의 미학, 불종성(佛種性)과 존재론적 미학 등을 잘 구사했다는 찬사를 받아 왔다. 그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는 불교 정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적 정서와 불교와의 관계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4세기경이었다. 이후 오늘날까지 오랫동안 토착 화되면서 우리 민족의 사회, 문화, 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생활 규범이나 사유 체계에 깊숙이 자리 잡아왔다. 이에 따라 한국 시문학 정신의 큰 줄기는 상 당 부분 불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작용해왔다. 전통적 민요조의 운율을 한의 정 서로 체화한 소월의 많은 시들이 불교의 인연설과 윤회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만물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생물과 무생물 등 모든 만물을 시인의 직관과 시적 감수성으로 시적 대상을 오감으로 순간 포착하고 압축해 언어로 결박한 결과물을 시라고 할 때, 시는 불교 정신을 기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자연에 침묵하는 것들에 귀 기울임으로써 무의식 적으로 불성에 대한 인식을 시로 발현하게 된다. 불성은 불종성과 동의어로 이미 제 안에 있는 것으로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 민족의 정감과 한의 가락을 서정시로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 인 소월은 불성을 바탕으로 한 한민족의 원형인 전통적 정서를 시집 『진달래꽃』 에서 형상화했다.

김소월 시에 스며든 불교 정신
한국의 토착적 정서는 불교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불교문화가 민속 풍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널」에서도 알 수 있다.

성촌(城村)의 아가씨들/ 널 뛰노나/ 초파일날이라고/ 널을 뛰지요// 바람 불어요/ 바람 이 분다고!/ 담 안에는 수양(垂楊)의 버드나무/ 채색(彩色) 줄 층층(層層) 그네 매지를 말아요.

그뿐만 아니라 그의 시 「칠성」에는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통해 만나는 전설을 토대로 쓴 민요적인 시인데, 민간 신앙과 불교가 융합된 칠성신을 모시는 우리 민족 의 풍습이 드러나고 있다. 음력 7월 7일을 칠월 칠석(七夕)이라고 해 해마다 민간에 서 불교적 행사가 개최되어왔다. 불교적 행사일인 칠석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 고 하는 것은 단순한 비의 신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적 의미와의 결합이라는 것도 알 수 있는 점이다. 칠석에 대한 설화 가운데 비를 내리는 설화가 있고, 이것이 칠석 또는 칠성신과 결합한 것은 칠성신이 비의 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성)

이 밖에도 「산유화」, 「접동새」 등 그의 시는 설화적 상상력으로 우리 민족의 생 활 풍습으로 자리 잡은 불교의 생활 문화를 형상화해 한의 정서를 드러낸다. 특히 그의 시 「묵념」은 죽음의 상징성으로 충만한 영성으로 우주의 신비에 다가가는 행위로 규정하는 민간 신앙과 불교적 연기설이 융합한 토착화된 우리 민족의 민속적 상상력을 펼쳐놓기도 한다.

좋은 시의 공통된 특성은 ‘말’, 즉 ‘시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유의 과정을 온 전히 포괄하는 말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세계를 잠재하고 있을 가 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전적인 품격을 지닌 좋은 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좋은 시는 말이나 사유의 과정이 전제되어 창작된다. 따라서 좋은 시에 내 재된 세계의 깊이나 아름다움을 민중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잠재 능력을 지니 고 있기 때문에 소월의 시는 대중성을 갖게 된 것이다. 좋은 시는 어느 한 개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해 오랜 시간을 견디는 과정을 통해 탄생되는데, 소월의 시가 대중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적인 정서는 물론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를 내재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소월 시 중에서 불교의 생활 문화를 소재로 불교적 상상력으로 펼친 시는 「합 장(合掌)」이다.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빛은 배여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불 빛에 거리는 헤적여라, 희미한 하느편(便)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힌,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하고, 더 안가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감고 마주서서.
먼먼 산(山). 산(山) 절의 절 종(鍾)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 김소월의 「합장(合掌)」 전문

두 사람이 말을 하며 달밤에 등불을 밝히고 나들이를 하는 생활 모습이다. 풀밭 에 이슬이 번쩍이고 밤이 깊어갈수록 사방은 고요한데, 서로 말을 안 하고 더 가 는 것을 멈추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 감고 마주 서서’ 합장하고 ‘먼먼 산. 산 절의 절 종소리. 달빛은 지새어라’고 노래한다.

소월 작품에 스며든 불교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시는 우리 생활 속 에 스며든 불교의 생활 문화를 설화적 상상력으로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한의 정서를 시로 형상화하기 때문에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나오며
소월은 1920년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민요적 전통을 계승해 독특한 음조미(音調美)로 형상화했다. 그의 작품들은 비록 33세의 짧은 생애를 살 다갔으나 생전에 발간한 시집 『진달래꽃』 한 권으로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자리매 김했고, 오늘날까지 대중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의 대표 시라고 할 수 있는 「진달래꽃」를 비롯해 「봄밤」, 「제비」, 「부엉새」, 「귀뚜라미」, 「가을 저녁에」, 「나의 집」, 「집 생각」, 「고향」, 「강촌」, 「왕십리」, 「달맞 이」, 「엄마야 누나야」,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산유화」, 「널」, 「진달래꽃」, 「초 혼」, 「가는 길」, 「못 잊어」, 「묵념」, 「무덤」 등 자연과 인간을 소재로 자연 정서의 향토미와 한의 정서를 형상화한 명시를 창작해 시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그는 민속적 풍습으로 생활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의 정서를 이끌어낸 천재적 시인이었다.

김관식 시인. 『전남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과 계간 『자유문학』에서 시로 등단했다. 서초문인협회 감사, 국제PEN한 국본부 및 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김우종문학상과 노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시집 『가루 의 힘』, 평론집 『한국 현대 시의 성찰과 전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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