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다이세츠
서구에 선불교 붐을
일으키다
지혜경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전문연구원
(1870~1966) |
선불교가 미국 사회에서 인기를 끈 이유
스즈키 다이세츠(Daisetsu Teitaro Suzuki 鈴木大拙, 1870~1966)는 1950년대에 서구 사회에 선불교를 소개한 불교학자로, 그가 소개한 선불교는 미국 사상과 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소개한 선불교가 미국 사회에서 인기를 끈 이유는 서구 사상계의 종교적 경험(religious experience) 담론의 연장선에서 선불교를 소개했기 때문이며, 또한 시대적 요구에 맞는 대답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폴 카루스와 윌리엄 제임스, 신지학회의 영향
스즈키 다이세츠가 미국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추어 선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11년간의 미국 생활과 그의 아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스즈키는 엔가쿠지의 주지였던 샤쿠쇼엔(釋宗演, 1859~1919)의 추천으로 폴 카루스(Paul Carus, 1852∼1919)의 오픈코트(Open Court) 출판사에서 일했다. 오픈코트 출판사에서 그는 『도덕경』, 『대승기신론』 등 여러 경전들을 영어로 번역했고 대승불교에 대한 그의 영어 저작을 출판했다.
카루스는 당시 사상계의 흐름에 밝은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화두였던 종교와 과학의 화해를 이루려던 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다윈주의의 진화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이해했으며, 모든 진리의 근원에 깔린 본질적 하나를 강조하는 일원론(Monoism)에 서 있었다. 그는 이 본질적 하나는 과학적 이성의 작업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과학적 종교라는 개념을 세워, 계시 대신 법칙을 수용하고, 의례나 교조로부터 자유로운 종교를 주장했다. 카루소의 교조나 의례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적 방법론의 사유와 일원론적 관점은 스즈키의 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스즈키의 아내 베아트리스 레인(Beatrice Erskine Lane, 1878~1939)은 스즈키와 함께 대승불교를 연구하고, 동방불교학회(Eastern Buddhist Society)를 설립해 불교에 대한 글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도왔다. 또한 그에게 초월주의자이면서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와 신지학회를 소개했다.
신지학회는 러시아 귀족 출신의 블라바스키(Blavaski,1831~1891) 부인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안적 종교 전통의 일종이다. 1874년 올콧트(Henry S. Olcott, 1832~1907)대령은 영적 카리스마를 지닌 블라바스키를 만나 이듬해 “진리보다 높은 종교는 없다”라는 구호하에 동양의 현인들만이 알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우주의 법칙, 고대의 지혜를 공부해 세상에 알리는 모임인 신지학회를 설립한다. 올콧트 대령은 영적인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사람으로, 불교를 세계의 모든 신앙의 핵심으로 생각했으며, 불교가 종교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의 통합을 이루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스즈키에게도 계승되어, 불교를 중요 사상 사조의 하나로 소개할 수 있었다.
초월주의자이면서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종교 개념 또한 선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신비주의 전통 속에서 제임스는 종교적 체험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고 분석하는 과정 속에서 개인적 종교적 경험들이 공통적으로 신성함(divine)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그는 그 신성함에 대한 경험은 기독교적 신으로 한정하지 말고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성성으로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제임스의 주장을 받아들인 스즈키는 선의 깨달음 체험을 선의 본질로 보고, 이를 불교, 나아가 모든 종교와 철학의 영혼이라고 했다. 선불교의 깨달음을 언어 이전의 선험적 경험으로 규정하면서 선의 체험은 어느 종교보다도 종교의 본질에 가까운 것으로 자리매김되었다.
1962년 일본에서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와 만난 스즈키 (출처|금강신문) |
당시 미국의 영성적 사조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스즈키의 선 만들어져
이처럼 스즈키의 선은 당시 미국의 영성적 사조와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 윌리엄 제임스의 이론, 신사고 운동과 당시의 시대사조에 맞게 깨달음의 특징을 규정하고, 나아가 이것이야말로 선의 핵심이고, 선은 바로 이 순수한 신비적 체험 그 자체라 규정해 미국인들의 순수한 체험에 대한 갈망에 맞게 각색되었다. 물론 선불교에 스즈키가 언급한 부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미국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졌던 신비주의 전통의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강조점을 달리했을 뿐이다. 이렇게 접점이 마련되었던 스즈키의 선은 이후 1950년대의 젊은 세대의 시대적 요청과 만나면서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스즈키의 책, 비트 제너레이션과 1960년대 히피 문화에 영향
1950년대 스즈키의 선은 앨런 왓츠(Alan Watts, 1915~1973), 카를 융(Carl Jung, 1875~1961),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등의 지지를 받으며 미국인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책은 미국 내 비트 제너레이션과 1960년대 히피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1950년대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예사조로 이들은 기존의 획일화된 삶의 기준, 물질주의에 반발하고, 마약과 성에 개방적이고 실험적이었으며, 동양 사상에 심취했었다. 스즈키의 선이 비트 제너레이션을 매료시킨 것은 신비적 체험뿐만 아니라 도그마로부터의 자유로움이었다. 스즈키는 선을 모든 도그마들과 2차적 종교적 요소들, 철학, 의례, 조직 등으로부터 분리하고 순수 깨달음의 경험으로 치환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그의 책 속의 선은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삶의 정신과 딱 맞아떨어졌다.
스즈키 선불교의 대중화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앨런 왓츠
비트 제너레이션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교류했고 특히 1960년대 히피들의 대장이 되었던 앨런 왓츠는 스즈키 선불교의 대중화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동양 고전에 관심을 갖고 탐독했던 그는 어떤 한 종교에 정착하지 않고 보편주의적, 개인주의적, 절충주의적 입장에서 온갖 종교 전통을 선택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1936년 런던대학에서 열린 세계종교인대회(World Congress of Faith)에서 스즈키의 강연을 듣고 선불교에 심취해 선 수행도 하고, 선불교에 대한 책을 내고 강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불교도라 불리는 것을 꺼렸으며, 어느 불교 단체에도 정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스즈키가 말한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운 선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즈키의 가르침에서 선 체험이 결국 이분법적 사유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불교가 더욱 호소력을 갖게 했다. 왓츠의 지적은 이분법적 사유, 이원론적 사유에 익숙했던 서양인들에게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고, 이것이 스즈키의 선이 뿌리내리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 히피 세대와 만나면서 선은 비 온 뒤의 버섯처럼 성장했고,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스즈키의 선불교 없었다면 서구의 동양학의 관심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것
1990년대 이후 스즈키의 선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 실제 선불교와의 괴리, 일본의 민족주의와의 결합, 역사성을 제거한 이상적 불교의 문제 등이 미국 학계에서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스즈키의 『선불교 입문』과 앨런 왓츠의 『선의 정신(The spirit of Zen)』과 『선의 길(The way of Zen)』은 선불교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의 일종의 필독서라는 점은 변함없다. 세대가 변해도 신비주의적 경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즈키를 읽고 열광하다가 그에 대한 글을 읽고 조금은 실망스러워하면서 불교를 이해해간다. 조금 달라진 것은 지금의 세대들은 스즈키가 뿌린 선의 이미지, 동양의 이미지가 담긴 <쿵푸팬더>를 보고, 애플의 상품을 쓰며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소개한 선불교가 비록 미국인들에게 맞춰진 형태라 할지라도 스즈키의 선불교가 없었다면 서구의 동양학의 관심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것이고, 나아가 지금의 미국, 서구도 없었을 것이다.
지혜경|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방문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연세대 철학연구소 전문연구원, 경희대 강의교수, 희망철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불교인물열전』(공저), 『철학 중독을 이야기하다』(공저) 등이 있고, 「가상현실 시대에 불교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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