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금지의 의미와 실제 | 음식 문화

육식 금지의 의미와 실제

이자랑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HK교수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일본 도쿄(東京)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각국의 유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스리랑카나 미얀마, 태국 등 소승불교권에서 온 스님들은 그전에 보아온 출가자의 모습과 다른 면이 많아 흥미로웠다. 한국 스님들의 잿빛 가사와 달리 이들은 눈부시게 밝은 주황색 혹은 짙은 자주색의 가사를 입었다. 그 화려한 색이 캠퍼스를 가로지를 때면 너무 신기해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가사의 색깔보다 더 신기했던 것은 이들의 식생활이었다. 함께 학생식당을 간 어느 날, 돈가스를 쓱쓱 썰어 맛나게 드시는 게 아닌가. 주위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에 ‘돈가스는 돼지고기로 만들었는데’라고 생각하며 당혹감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계율에 무지했던 필자는 불교 내부에 육식에 관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불교도의 식생활 중 육식만큼 불교 내부에서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도 드문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소승불교권에서는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육식이 허용된다.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 육식을 했다는 증거는 초기 불교 문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숫타니파타』 「비린내 경(Āmagandha-sutta)」에는 “살생하고, 때리고, 절단하고, 포박하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기만하고, 위선을 떨고, 남의 아내와 교제하는 것,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라는 붓다의 가르침이 전해진다. 살생을 전제로 하는 생선과 고기 섭취에 대해 교단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졌지만, 붓다는 육식이 아닌 ‘악행’이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붓다가 열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섭취한 음식이 ‘수카라맛다바(sūkara-maddava)’, 즉 부드러운 돼지고기 요리라는 점도, 또한 출가자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모아놓은 율장(律藏)에서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 날마다 섭취한 주식으로 밥(odana), 죽(kummāsa), 밀가루(sattu), 생선(maccha), 고기(maṃsa)의 다섯 가지를 열거하는 것도 이들이 육식을 했다는 증거이다. 초기 불교의 경우, 사실상 술을 제외하고 출가자에게 섭취가 금지된 음식은 거의 없다.

다만 육식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제한이 가해지게 된다. 하나는 삼종정육(三種淨肉)이다. 세 가지 점에서 청정하지 못한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세 가지란 자기 앞에 놓인 고기가 자신을 위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거나, 듣거나, 의심 가는 경우를 말한다. 보시를 받은 고기라도 이 세 가지 가운데 해당 사항이 있으면 수용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식육 가능한 고기 종류의 제한이다. 사람, 말, 코끼리, 뱀, 개, 표범 등 일부 고기의 수용이 금지된다. 사람 고기는 숩삐야라는 신심 깊은 우바이가 병을 앓고 있는 비구를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조리해준 것을 계기로 금지되었다. 말과 코끼리는 왕의 재산이므로 설사 보시를 받은 것이라 해도 왕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 뱀은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하고 있다. 한편 개는 짠달라(caṇḍāla)와 같은 낮은 계급의 자들이 먹는 고기라는 점에서 금지되는데, 그 배경에는 정(淨)·부정(不淨) 관념에 근거한 힌두 사회의 카스트 바르나 계급 제도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표범 등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 고기를 금지하는 이유는 육식동물의 경우, 자신의 고기 냄새를 맡고 출가자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적 제한은 불살생에 의한 자비의 입장 등 윤리적인 입장에서 취해진 조치가 아닌, 타 종교인이나 일반 사회의 육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근거해 불가피하게 취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육식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불살생을 강조하는 불교가, 설사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았다 해도 누군가의 살생을 통해 얻은 고기 섭취를 허용한다는 점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붓다는 왜 육식을 허용했을까? 혹자는 걸식을 통해 식생활을 해결해야 했던 불교의 출가자가 특정 음식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앞서 『숫타니파타』 「비린내 경」에서 보았듯이 붓다는 섭취하는 음식물의 내용이 아닌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데바닷타가 승가 분열을 시도하며 붓다에게 생선과 고기의 섭취 금지를 포함한 다섯 가지 주장[五事]을 요구했을 때도 붓다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로 보아 붓다에게는 육식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의사는 없었다. 특정 음식을 거부하는 태도는 붓다가 지향하는 중도(中道)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붓다는 고기를 허용했지만, 고기의 맛을 탐해 스스로 요구해서 보시를 받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했다. 붓다가 경계한 것은 식자재가 아닌 음식에 대한 탐착이었다. 음식은 주어지는 대로 감사하게 수용하며, 수행을 위한 육체를 만드는 자량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붓다의 음식에 대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육식의 전면 금지는 기원 전후로 대승불교가 발생하면서 이루어진다. 대승불교에 이르러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 배경으로는 당시 힌두교의 등장으로 인도 사회에 육식은 계급이 낮은 자들이나 먹는 청정하지 못한 음식으로 간주되는 분위기가 존재하게 된 사정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교단 내적으로 여래장 사상, 즉 일체중생에게는 장래 붓다가 될 잠재적 능력, 불성(佛性)이 있다는 교리가 발전하면서 육식은 기피된다. 이 외에도 윤회하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유정은 전생에 자신의 부모나 형제, 친척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부모 등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거나, 혹은 육식하는 사람은 공격성을 발산하므로 주위의 모든 생명체가 공포에 떨어 보살행을 함에 있어 그들의 신뢰를 얻을 기회를 잃게 된다, 혹은 고기 맛에 대한 집착이 중생을 육도 윤회하게 한다는 등의 다양한 육식 금지 이유가 『열반경』이나 『능가경』 등의 대승 경전을 중심으로 등장한다.

불교의 중국 전래 후, 5세기 중·후반경에 중국에서 『범망경』이 찬술되면서 육식은 더욱더 명확한 형태로 동아시아의 불교도에게 있어 금기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 경 하권에서는 보살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10중 48경계를 설하는데, 그중 제1중계에서는 모든 형태의 살인을 금지하며, “보살은 항상 자비심과 효순심에 머무르고 일으켜야 하며, 방법을 찾아 일체중생을 구호해야 하거늘, 도리어 자신의 방자한 마음에서 즐겨 생물을 죽인다면,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이니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3경계에서는 ‘만약 불자가 고의로 고기를 먹는다면 큰 자비의 소질을 갖춘 종자를 끊고, 일체중생이 도망친다’라는 취지로 식육을 금지하며, 제20경계에서는 “일체 남자는 내 아버지, 일체 여인은 내 어머니이다. 나는 생생[윤회 전생할 때마다] 이로부터 생을 받지 않는 일이 없다. 그 때문에 육도의 중생은 모두 내 부모이다. 따라서 죽여서 먹는 자는 내 부모를 죽이고, 또한 내 몸도 죽이는 것이다”라고 해 생물을 그물이나 우리에서 풀어주는 적극적인 방생을 권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고 하는 이 유명한 문구에도 나타나듯이, 대승불교의 실천자인 보살에게 있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이타행(利他行)은 무엇보다 중요한 실천행이다. 따라서 무자비하게 다른 생류의 목숨을 빼앗아 마련되는 고기나 생선의 섭취는 지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만 초점을 두다 보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집착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오관게’에 표현된 것처럼, 육식을 비롯해 지금 내 앞에 놓인 음식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자신이 이 음식을 받을 만한 덕행을 쌓고 있는지 돌아보며, 탐·진·치 삼독을 마음에서 제거하고, 여윈 몸을 지탱해 깨달음을 얻는 자량으로써 음식을 섭취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자랑
일본 도쿄(東京)대학에서 「초기 불교 교단의 연구 –승가의 분열과 부파의 성립」이라는 주제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HK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나를 일깨우는 계율 이야기』, 『율장의 이념과 한국불교의 정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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