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의 원리
서혜경
전주대학교 명예교수
사찰음식이란 불교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위해 그들이 모여 사는 절이나 공동체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을 말한다.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의 남방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신도들이나 일반인들이 마련한 음식을 스님들이 매일 아침 탁발해 얻어먹으면서 살아가므로 특별히 사찰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율장에 의하면 탁발을 할 때에는 여러 가지 규범이 있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음식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신도들이 마련한 음식이라면 소중하게 생각하고 먹으라는 것이다. 초기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음식은 없으나, 살생의 업과 관계되는 고기나 세간의 비난을 받거나 수행에 방해가 되는 음식은 피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심산유곡에 거주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며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원칙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절에서는 생선이나 육류 등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유제품을 제외한 일체의 동물성 식품과 술, 그리고 오신채라고 해 매운맛을 내는 다섯 가지 채소인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는 금해 먹지 않는 식품이다. 『입능가경(入能伽經)』의 「차식육품(遮食肉品)」에는 오신채와 술과 고기를 냄새나고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면 고기를 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불교도가 받는 기본 계인 5계 중 제일 첫 번째가 불살생계이다. 육식은 반드시 살생을 동반하므로 불교를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이나 신도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의 원시 교단에서는 생각 외로 육식에 대해 너그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아무 고기나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먹어서는 안 되는 고기도 있었으나 계율마다 조금 차이가 있는데 공통적으로 금하는 고기는 사람, 코끼리, 말의 고기이다. 그러나 깨끗한 고기라고 해 먹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깨끗한 고기란 비구를 위해 죽인 고기가 아닌 고기를 말하며 보고(見), 듣고(聞), 의심하는(疑) 세 가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모든 계율에서 말하고 있다. 본다는 것은 눈앞에서 죽이는 것을 보았으면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듣는다는 것은 자신이 귀로 듣거나 다른 사람이 누구를 위해 죽였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면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의심한다는 것은 죽은 동물에 대해 마음에 의심이 생기면 물어보고 스님을 위해 죽였다고 답하면 그 고기는 먹어선 안 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고 죽였는데 다 먹지 못하고 남았으니 드리겠다고 하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깨끗한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왜 육식을 금지하게 된 것일까? 『열반경(涅槃經)』에 보면 고기를 먹는 것은 자비의 종자를 끊는다고 해 육식을 금하고 있다. 그러면 어찌해서 깨끗한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셨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계율은 어느 것이든 겉에 나타난 것 외에 그 속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그 속에 있는 특별한 의미 때문에 깨끗한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는 생각, 즉 식탐으로 먹는다면 고기도 끊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 식탐의 있기에 육류는 일절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며 일부러 죽인 고기뿐만 아니라 자연사한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즉 식탐을 경계한 것이다.
술을 금하는 이유는 율장에 술에 취하는 것이 모든 죄의 근원이 되며 지혜의 종자를 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신채를 금하는 이유를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에서 “냄새가 독해서 가까이하기 어려우므로 어진 이들은 피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수능엄경(首楞嚴經)』에는 오신채를 끊어야 한다고 하며 오신채를 익혀 먹으면 음욕을 일으키고 날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을 늘린다고 해 수행에 방해가 됨을 지적하고 있다.
『불의경(佛醫經)』 또는 『불의왕경(佛醫王經)』이라는 아주 짧은 경전이 있다. 이 경전에서 사대(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地水火風)의 부조화에 의해서 병이 난다고 설하고 있다. 인간이 사대의 부조화에 빠지는 원인을 오래 앉아 있기만 하고 밥을 먹지 않으며,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으며, 근심, 피로, 분노, 과다한 성욕, 대변을 참는 것, 소변을 참는 것, 하품을 참는 것, 방귀를 참는 것의 열 가지라고 한다. 또 단명의 원인 아홉 가지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는 것, 제철 음식을 먹지 않는 것, 음식을 먹을 때 과식하며, 식사 시간을 지키지 않고 지나치게 간식을 많이 먹으며, 먼저 먹은 음식이 소화되기 전이나 복용한 약이 체내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식사를 하는 것, 대소변을 지나치게 참는 것,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 나쁜 벗과 사귀는 것, 마을에 들어가 법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 출가인답게 행동하지 않는 것, 피해야 할 위험에 부주의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이 아홉 가지 단명의 원인 중 먹는 것과 관계있는 것이 다섯 가지나 된다. 이것만 잘 지켜도 단명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절에서는 공양 전에 오관게를 외운다. 그 내용은 이 음식이 온 곳과 그 공덕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보고, 공양을 받기에 자기 덕행이 완전한지 부족한지 헤아려보고, 마음을 다스려 탐욕 등의 허물을 벗어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아, 마른 몸을 치료하는 좋은 약으로 여겨, 도업을 이루기 위해 이 음식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찰음식의 재료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나물이나 들풀, 제철의 채소이다. 어디에나 있는 푸성귀야말로 부처의 씨앗을 키우고 도심(道心)의 싹을 키운다고 말할 수 있다. 사찰음식 중 발우 공양은 옛날부터 단체 급식으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사찰에서 발우 공양은 누구나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므로 평등하며, 개인이 발우에 덜어 먹으므로 위생적이며, 개인이 발우에 덜고 남은 음식은 다시 사용할 수 있어서 식품을 절약하며, 발우에 덜은 음식은 남김없이 다 먹으므로 환경을 보호하며, 자기가 사용한 발우는 앉은 자리에서 설거지까지 마치므로 부엌일을 줄여주는 탁월한 단체 급식 방법이다. 발우 공양은 스님들이 법랍의 순서대로 앉아서 원하는 음식의 양과 종류를 덜고 옆으로 음식을 돌리는 것이다. 요즘 대다수의 절에서는 뷔페 형식으로 상차림을 한다. 그러나 발우 공양만큼 좋은 방법은 아니다. 뷔페와 발우 공양의 차이는 발우 공양은 음식이 움직이고 뷔페는 사람이 움직인다.
요즘은 우리나라가 풍요로워진 탓인지 절에서도 음식을 귀하게 다루는 마음이 적어진 것 같다. 끝으로 시대와 맞지 않는 면도 있지만 사찰음식에 대한 마음가짐을 간략하게 써놓은 야운(野雲)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옮겨본다.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받아 쓰지도 먹지도 말아라. 밭을 갈고 씨를 뿌릴 때부터 입과 몸에 이를 때까지 사람과 소의 정성과 힘이 클 뿐만 아니라 벌레로 인한 손해가 끊이지 않으니 저들을 힘들게 해 나를 이롭게 하는 것도 옳지 못한데 하물며 다른 목숨을 죽여서 나를 살리는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 농사를 짓는 사람도 늘 춥고 배고픔의 고통이 있고 길쌈하는 아낙네도 잇달아 몸을 가릴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오랫동안 손을 놀리고 있는데 어떻게 춥고 배고픔을 싫어하겠는가? 좋은 옷과 맛있는 밥은 당연히 시은(施恩)이 무거워 도를 덜고 누더기 가사와 나물 반찬과 밥은 반드시 시은이 가벼워 음덕(陰德)을 쌓는 것이니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하기 어려우니라.”
서혜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중앙대 대학원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주대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전주대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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