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 그리고 인간의 삶 | 메타버스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
그리고 인간의 삶


송운석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경제 성장을 토대로 하는 사회 발전을 모색해왔다. 경제 성장은 민주화는 물론 다양한 물품의 생산을 통해 인간의 욕구 충족의 기반을 마련하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건강한 삶과 안전한 삶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나타난 기술 발달은 마침내 인간을 점차 노동으로부터 해방하고 각종 인터넷 및 스마트 기술의 발전으로 전 지구촌 사람들의 상호 교류가 동시적으로 가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지구촌은 하나의 수요와 공급망으로 연결되는 거대 생산과 소비의 경제 체제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발전은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동반했다. 그중 하나가 지구 환경의 심각한 파괴와 더불어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로 인한 기후 재난이다.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로 지구온난화는 가중되고, 녹아내리는 빙하로 그 안에 있는 수만 종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지구상에 퍼져 온갖 전염병과 질환을 가져올 것이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농작물이 자랄 수 없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때문에 지구촌은 인간이 살기 힘든 곳으로 변모했다. 기술 발달로 각종 최신 살상용 무기가 개발되고, CCTV는 인간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수단이 되었으며 고용 없는 성장, 사람 없는 생산으로 인해 대량 실업난을 이야기시켰다. 최근 코로나19는 인류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을 멈추게 했고 문명사적 대변혁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급부상한 것이 4차 산업혁명으로 칭하는 메타버스의 출현이다.

메타버스의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의 하나는 인간의 ‘아바타가 살아가는 디지털화된 가상현실 세계’의 등장이다. 인간은 디지털화된 가상의 현실 세계를 구축하면서 그 세계에서 인간을 대변하는 아바타들이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은 디지털화된 ‘가상현실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바타’를 통해 사람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이러한 삶에 대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먼저 가상현실 세계는 가상과 현실 세계로 나누어지는 이분법적 세계가 아니다. 현재 형성되고 있는 메타버스는 인간의 무한한 창조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간 생활 환경의 확장이다. 물리적 환경을 토대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만든 현실적으로 상상 가능한 가상과 현실의 혼합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와 가상의 생활 환경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쪽이 실제 생활 환경이라고 하면 그 연속선상에서 디지털 세계로 형성되는 다른 쪽은 가상의 생활 환경인 것이다. 사람들은 HMD 관련 기기들을 통해 디지털 신호를 전달받게 되면 디지털화된 정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가상의 현실을 자신의 체험 현실로 만들어간다. 고성능 CPU와 그래픽 표현 기술 그리고 네트워크 속도의 발달은 점차 인간을 디지털 환경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도록 하고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실재감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 환경에서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사람들은 사회적 맥락의 실재감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가상 세계는 점차 타인과 공존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정서적 관계도 형성하면서 사용자들의 자율적 경제 및 문화 활동이 가능한 가상현실 세계로 확장해갈 것이다.

사람들이 메타버스에 접속하지 않으면 메타버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에 사람들이 접속하도록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먼저 사람들은 아바타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여러 제약 때문에 하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경험을 증강시켜 그들의 체험의 밀도와 깊이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상 세계에서 미리 적용해보고 조작해서 새로운 경험을 생성하는 신 경험 창조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바타는 현실 세계 인간의 결핍된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는 현실의 자신과 달리 사회적 지위가 주는 굴레를 벗어남은 물론 신체적 그리고 경제적 제약 없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고 새로운 삶의 영역을 창조하고 체험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사람들을 메타버스로 흡입하고 과몰입시킬 것이다. 이와 더불어 메타버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들은 끊임없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욕망 충족의 공간으로 메타버스를 변모시킴은 물론 경제적 활동으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인간 삶의 영역으로 발전시키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미 메타버스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장차 일어날 변화가 10년 앞당겨졌다고 했다. 앞으로 우리가 접할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변하는 거대 가속화 사회가 된다. 아침에 엄마 아빠한테 뽀뽀하고 유치원에 간 아이가 저녁에 돌아올 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 격이다.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이제 메타버스를 통해 대학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개최하고, BTS 공연에 전 세계 수천만 명의 팬들이 동시에 접속해 공연을 즐기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게임을 개발한 초등학생의 한 달 수입이 수천만 원에 달하며, 어느 대학생은 학교에 다니면서 한 달에 3억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제는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 화상 회의는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은 예측 불허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은 삶의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현재 변화에 소외되어 디지털 문맹으로 전락하고 메타버스가 주는 많은 혜택과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되어 잊힌 세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메타버스가 펼치는 가상현실 세계에 과몰입되어 완전 디지털 중독된 사회 부적응자의 삶을 살아갈 가능성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와 디지털화된 가상현실 세계의 삶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현실 세계와 가상현실 세계는 둘이 아니라는 것(不二)이다. 즉 오른손과 왼손은 둘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러나 각각의 용도는 구분되어 있다. 단지 쓰임만 다른 것이다.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쓰임이 있을 뿐이다. 현실 세계나 디지털 세계도 단지 쓰임만 있을 뿐으로 볼 때, 우리는 두 세계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그 주인이 되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꽃피울 수는 있게 될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모든 존재는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몸과 마음은 실체가 없으나 이를 있게 한 불성은 항상 청정하다고 했다. 현실 세계나 디지털 세계는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다고 인식해보자. 그리고 나라고 하는 존재는 보는 것은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은 듣기만 하며, 아는 것은 알기만 하면서 자기의 참된 본성인 청정한 불성인 지혜와 자비의 통로가 되어보자. 그럴 때 우리는 새롭게 펼쳐지는 메타버스를 부처님의 자비 광명을 구현하는 가능성의 장으로 장엄할 수 있을 것이다.




송운석

단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오리건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포트랜드 주립대에서 행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신뢰중심의 인간관계론』, 『신뢰중심의 조직관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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