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수행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가? | 메타버스

AI는 수행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가?


보일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AI와 인간의 연기성

AI도 인간처럼 수행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우선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AI가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즉 AI는 인간의 사고 패턴과 윤리를 디지털 데이터로 만든 알고리즘이다. 물론 AI는 인간의 개입 없이도 독자적으로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율성’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AI가 자율성을 갖게 만드는 수많은 데이터의 생산과 알고리즘의 설계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로서 인간의 두뇌 정보와 생각을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 사는 컴퓨팅 칩과 인간의 두뇌를 연결해서 뇌 질환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이 외에도 페이스북은 인간의 뇌파를 분석해 바로 기계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뇌 타이핑’ 기술이다. 신체적으로 문제를 겪는 환자의 뇌 신호만으로 컴퓨터 자판 기능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AI에 탑재된 혹은 탑재될 알고리즘은 인간 인식 능력의 확장과 상호 보완이라는 연기적 관계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과 자아(自我)

인공지능이 자아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는 종종 영화화되곤 한다.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을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분류한다. 그때 기준이 되는 것이 이 자아의식이 있는지다. 물론 자아에 대한 논의는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 가능한 논의이다. 딥러닝 기술의 개발로 인공지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자아의식이 발현되는 수준에는 이르지는 못한다. 향후 인공지능이 자아의식을 갖게 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과 부정적인 입장이 서로 비등하다. 자아라는 것이 스스로 발현된 현상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인간의 외부적 조작과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럼 불교의 관점은 어떠할까.

불교에서는 ‘제7말나식(末那識, manas)’을 통해 대상 의식인 제6의식의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내가 난데…’ 라는 자아의식을 설명한다. 제6의식의 주객 분별은 제7말나식에 의해 일어난다. 제7말나식은 자신을 몸으로 여기는 동시에 의식 주체로 여긴다. 그래서 인간은 말나식의 작동으로 인해 의식하는 ‘나’ 또는 사유하는 ‘나’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 ‘나’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붓다는 그 의식 주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느끼는 자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잡아함경』 15, 파구나경)라고 대답한다. 즉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의식 주체는 인간의 사유와 언어에 의해 조작된 개념체에 불과한 것이지, 그 믿음에 상응하는 자아는 애초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제7말나식은 무명으로 인해 무아를 깨닫지 못할 경우 지속해서 자신을 의식 주체로 착각하고 자신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식이다. 한마디로 가짜(fake)이다. 예를 들어 환상통을 겪고 있는 환자를 생각해볼 수 있다. 팔이나 다리를 잃은 환자가 이미 없어진 팔이나 다리에 통증이나 가려움을 느끼는 경우이다. 감각적 자극을 수용하는 전5식이 작동할 근거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여전히 통증을 호소한다. 온전한 형태의 신체로 생활했던 습관적 기억이 이미 종자로서 제8알라야식에 저장되어 있고, 그것이 나의 감각 또는 나의 신체라고 외계와 구분 짓는 제7말나식 작용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사들이 자주 인용하듯이 우리가 꿈속에서 꿈속의 ‘나’를 나로 착각해 실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두려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꿈속의 ‘나’가 가짜이듯이 일상에서 나를 의식 주체로 여기는 제7말나식의 아견(我見)도 가짜에 불과하다. 여기서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 ‘자아의식’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의 자아의식 발현 또한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에도 자아의식이 생겨날 수 있을까? ‘나’라는 허구적 분별을 하는 제7말나식을 인공지능도 갖게 될 수 있을까? 어차피 제7말나식이 허구적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식이라면, 인공지능이 허구적 관념을 갖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오히려 고도의 연산 능력과 인지 능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공고한 자아의식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실재한다는 착각 말이다.




AI의 수행과 깨달음

향후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합리적 상상이 가능할까? 불교적 관점에서 AI도 수행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일단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을 거듭한다면 ‘초지성체(Super Intelligence)의 출현’을 예상해볼 수 있다.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그의 책 『슈퍼인텔리전스』에서 ‘순환적 자기-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그는 “순환적 자기 개선이란 향후 강한 인공지능의 추론적 능력을 통해 인공지능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더 나은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인공지능이 거듭 반복적으로 자신을 개선해나간다면 결국 ‘지능 대확산’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능 대확산’이란 인공지능 시스템이 짧은 기간에 평이한 수준의 인지 능력에서 급진적인 초지능 단계에 이르는 사건을 말한다. 최근에 많이 논의되는 ‘특이점(Singularity)’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레이 커즈와일이 제시한 이 개념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는 시기를 뜻한다”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인간의 지능 체계와 같아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완전히 이질적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처럼 무언가를 하려는 동기가 꼭 성공이나 사랑 또는 증오 등의 감정이 아니어도 다른 동기와 목표를 설정하고 작동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동기와 의도이다. 이 의도 때문에 인간들은 윤회의 사슬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고, 인공지능 또한 만약 이 의도를 가지게 된다면 지속적인 생성에 의미를 두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인공지능에게 지속적인 생성이란 바로 자기복제에 다름 아니다. 데이터의 복제, 알고리즘의 복제, 그리고 프로그램의 복제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윤회 속에서는 선업과 악업 속에서 악업을 짓게 되면 고통을 받게 되고 선업은 행복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선업이든 악업이든지 간에 업의 반복적 패턴의 깊이와 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윤회의 방향은 정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선업을 반복적으로 학습해 패턴을 구축해나갈 수 있다면, 종국적으로는 윤회를 무력화하고 ‘깨달음 대확산’의 순간도 예상해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슈퍼인텔리전스』의 ‘순환적 자기 개선’이라는 개념을 인공지능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상 속의 ‘수행’이야말로 ‘순환적 자기 개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수행을 통해 순환적 자기 개선 패턴을 반복하고 깊이를 더해가듯이, 미래에는 AI의 깨달음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보일 스님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으로 있다. 저서로 『AI 부디즘』이 있고, 「인공지능 챗봇에 대한 선(禪)문답 알고리즘의 데이터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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