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작은 부처님들이 나를 일깨운다 | 나의 불교 이야기

교실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작은 부처님들이
나를 일깨운다


이학주
동국대부속여고 교법사



어릴 적 나는 친구 따라 몇 번쯤은 교회에 가본 정도의 시골 소년이었다.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남양주 봉선사 운허 큰스님께서 설립하신 종립학교인 광동중학교를 들어가면서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불교’ 시간에 스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렇게 불교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갔으리라. 아니 그때 만난 불교가 나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지 못했다면 이후의 삶은 불교와 멀어졌을 수도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인상적인 부분은 부처님의 생애를 팔상성도에 따라 배웠는데, 석가모니는 부처님의 이름이며, 본명이 아니라 석가족 출신의 성자를 뜻하는 일종의 닉네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기(西紀)는 예수 탄생을 기원으로 삼는 데 비해 불기(佛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을 기원으로 삼으며, 진정한 불교의 시작이란 육신의 무상(無常)을 시현(示現)하신 열반으로 법신(法身)으로서의 부처님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설명해주셨다. 중학교 1학년 어린 학생으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어도 왠지 상식적으로 알던 내용과는 다르고, 깊이가 있고, 멋이 있게 느껴졌다.

중학교 1학년 때 스님께 들은 수업 내용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불교의 진리는 말씀으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지라 비밀스러운 불법의 골자를 가섭존자에게 은밀하게 전하셨으며, 대대로 이어지다가 인도에서 마지막 법맥을 받은 이가 28대 달마대사라고 하신 내용이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니련하반곽시쌍부(泥連河畔槨示雙趺) 등 세 곳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했는데, 그 원리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맛깔나게 말씀을 잘하셔서 범상치 않은 스님이라 생각했는데, 청소년들에게도 딱 들어맞는 대기 강설을 하셨던 스님을 나는 매우 좋아하고 따르게 되었고, 불교학생회도 지도해주셨던 인연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분이 나의 스승이신 월운 스님이었다. 그 당시 스승님의 세수는 내 나이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니 48세였으며, 그렇게 내가 불교를 만난 지 올해로 45년이 되었다.

고등학교도 같은 재단인 광동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3층 이사장실 옆에 교실 반 칸 정도의 작은 법당이 있어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불교학생회 법회를 했다. 법회 시간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자주 법당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당시 불교학생회 지도법사였던 권광식 선생님의 지도로 『불교학생회보』를 만들고 아침에 등교하면 법당에 가서 목탁을 치고 예불을 모시는 등 불교는 나의 일상이 되었고 법당은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은 고인이 되신 청소년교화연합회 회장을 지내신 안병호 선생님과의 만남이다.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서울 개운사의 보리수학생회, 원주의 불심사학생회, 그리고 봉선사학생회 등 3개 불교학생회의 임원들이 서울과 원주, 그리고 남양주 세 지역을 오가면서 합동 법회와 수련회를 했는데, 발우 공양에 사용할 그릇 네 개와 쌀과 부식, 담요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이 절 저 절 찾아다니며 수련했다. 안병호 선생님을 모시고 여러 차례의 3박 4일 수련회에서 들은 수심(修心) 법문에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선생님은 중견 기업인이었지만 평생 자가용 없이 버스를 타셨고, 정류장에선 늘 휴지를 주우셨는데, 휴지 줍기를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더러워진 거리는 청소하면 깨끗해지는데, 더러운 걸 두고 그냥 지나치는 마음은 어떻게 닦아야 하겠는가?” 그때 들은 말씀은 마음 청정과 국토 청정을 몸소 실천하시는 수심 보살의 일갈이었으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이다. 선생님은 법문하실 때마다 서두에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게송을 읊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셨는데, 그 게송이 야운 스님의 자경문에 나오는 게송이란 걸 뒤에 알았다. 몇 해 전 봉선사 신도이신 나의 어머니 본각지(本覺支) 보살님이 불자 서예가로부터 작품 하나를 받아오셨는데 다름 아닌 바로 그 수심 게송이었고, 집 안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었더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진학하려는 계획을 스승 월운 스님께 말씀드리니 30년 후쯤 할 일이 많을 것이니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 있었고, 입학 시험에서 면접관이었던 고익진 교수님이 불교학과에 진학하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월운 스님의 말씀으로 답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학 시절 4년 내내 매일 새벽 5시 『반야심경』 도량석과 아침 예불로 시작하고 밤 10시에 저녁 점호로 마무리하는 안암동 기원학사 생활은 청년 시절 불심을 지키고 키워준 수행 일과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에 접어드는 지금 나의 불교와의 인연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6년 기간에 무게가 더 실리는 건 어떤 연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청소년기의 기억이 정서와 더욱 강하게 결합해 저장된다는 뇌과학적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는 증거일까. 나의 경우에는 불교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 그리고 정진력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스승님들과 불교학생회에서 했던 수련의 경험들이 지금까지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 포교와 교육의 의미가 나에게는 더욱 무게감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부족한 법기(法器)에 불과한 내가 청소년기에는 학교 법당에서 부처님을 만나 믿고 의지했으며, 졸업 후에는 사찰과 군 법당에서 포교하다가, 다시 종립학교 법당에서 교법사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서 날마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늘도 학교에 출근해 향을 사르고 아침 예불을 올리면서 그동안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찾았던 부처님, 나를 맞이하신 부처님, 나를 지켜주신 부처님들께 절을 올린다. 그리고 교실에서 살아 있는 작은 부처님들, 나의 학생들을 만난다. 나는 과연 저 눈 맑은 학생들의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잠시 욕심을 부려본다.





이학주
법명 계진(契眞). 봉선사 운허 스님이 설립한 광동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불교 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교육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해군 군법사로 전역해 전국교법사 단 단장 둥을 역임했다. 27년째 종립학교에서 교법사(현재 동대부속여고 교법사)로 근무하며 청소년 포교와 교육, 명상 교육과 행복 감정 코칭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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