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가르침은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김경희대원아카데미 학생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맘때면 늘 기억 속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아마도 서울 근교의 어느 사찰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한복을 곱게 입은 엄마는 하염없이 부처님 앞에 앉아 있었다. 탱화 속의 신장님들이 무섭게만 느껴졌던 나는 대웅전 앞에 가득 핀 모란밭을 이리저리 거니며 엄마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여름으로 가는 시기라 활짝 열린 대웅전 안,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평온함과 든든함이 느껴졌다.
훗날 내 자신이 엄마가 되어 아이의 입시를 앞두고 불안감이 들어 예전 엄마가 다니시던 사찰의 스님을 찾아 전화로 확인을 하게 되었다.
“스님, 저 000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경전에 액운을 쫓는 방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잠시 침묵하시던 스님께서는 “가까운 곳의 사찰에 가서 3,000배를 해보세요.”라고 하셨다.
“절을 잘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3,000배를 합니까?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씀해주시면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일단 해보고 말하시죠” 라고 하셨다.
분명 3,000배를 하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왜 말씀을 안 해주시는지 투덜대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의 마음은 수능 3일 전이 되자 점점 더 불안해졌다.
불안한 마음이 감당이 안 되자 다시 스님께 전화를 드렸다.
“스님, 그럼 나눠서 해도 되나요?” 하니 “아이고 그럼, 나눠서 해도 됩니다” 하신다.
3일 전이면 하루 1,000배를 해야 하는데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근처 사찰을 찾았다. 나는 급한 마음에 마구 헤집고 들어가 무턱대고 정신없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10을 세고 왼손으론 하나씩 접어가며 열심히 절을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염주를 건네주었다. “이것으로 세며 하세요.” 빨리 1,000배를 채워야 한다는 다급함에 고마운 것도 모른 채 덥석 받아 정신없이 절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고 수능 당일 아침, 마침내 3,000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마음 안에 가득 찼던 그 힘겨운 무언가가 사라진 것이었다. 더 이상 어떠한 불안감도 궁금한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기초 교리부터 시작해 경전 강의, 템플스테이, 대학원에서의 명상심리상담, 지금의 대원아카데미에서의 불교심리상담 공부까지 끊임없이 배우며 또 배우고 있다. 특히 대원아카데미와의 만남은 또 다른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강의는 물론 도반들과의 교류를 통해 현실에서의 삶의 자세와 수행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물론 틈틈이 봉사도 열심히 했다. 절을 통해 ‘하심(下心)’이라는 이쁜 말을 알게 되었고 ‘시절 인연’이라는 멋진 말로 묵묵히 지켜보며 인내하는 힘도 키울 수 있었다. 비로소 오래전 그날, 엄마가 왜 부처님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맹목적으로 절을 하던 나에게 조용히 염주를 건네주었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분이 관세음보살이셨음도 이젠 알겠다.
학창 시절엔 불교를 철학적인 하나의 사상으로 이해했다면 지금은 불교의 가르침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즉 삶 속 지혜를 일깨워준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고 있다. 삶은 무엇을 성취하는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온전히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조차 나 자신임을 말이다.
‘마음챙김(Mindfulness)’ 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한 생각을 돌이키는 방법도 이젠 알 것 같다. ‘살아 있는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그런 힘을 키운다면, 언젠가는 내가 다니는 사찰의 새벽 기도 발원문에 있듯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지혜로운 안내자가 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마음을 모아본다.
김경희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청소년명상심리상담사. 한국여성연합신문 편집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대원아카데미 심리상담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맑고 향기롭게’ 법정 스님 책읽기 독서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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