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내 삶의 나침반 | 나의 불교 이야기

불교는 내 삶의 나침반


박혜경
대원아카데미 학생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오는 대사이다. ‘인연(因緣)’은 원래 불교 용어로 산스크리트어인 ‘헤투 프라티아야(Hetu-pratyay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헤투(Hetu)’는 모든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인(因)을, ‘프라티아야(Pratyaya)’는 원인을 도와 결과를 만드는 연(緣)을 의미한다.

이 인연의 법칙을 알고 나면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부터 매일 마시는 물 한 잔까지 예사롭지 않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헤아릴 수 없는 인과 연이 쌓여서 생긴 기적 같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후 불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 인연의 법칙이 작용한 덕분이리라.

2년 전 가을, 더 이상 일을 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때 사표를 썼다. 일요일 늦은 오후, 텅 빈 사무실에 나가 짐을 정리했다. 15년간은 기자로, 나머지 14년간은 편집자로 살아온 내 삶이 상자 3개에 담겼다.

회사를 그만두고 어렵게 찾은 마음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무료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허전했다. 그리고 그 빈 공간 사이로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며들었다.

과거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휘청거리던 그 무렵 한 후배와 연락이 닿았다. 후배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녀가 택한 방법이 불교 명상 공부였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 인연이었을까.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후배를 따라 불교 명상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사람은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다. 이 어쩔 수 없는 괴로움을 불교에서는 ‘첫 번째 화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원망하고 자책하고 슬퍼하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이다.

첫 번째 화살이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두 번째 화살은 내 의지에 따라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 다르다.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이 들어 있는 불교 경전 『잡아함경』에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불교 명상을 공부한 후 내가 계속 힘들었던 이유가 첫 번째 화살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쏜 두 번째 화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마음은 그 이름이 마음일 뿐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 마음도 인과 연에 따라 잠시 생겨났다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체가 없으니 가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많은 사람이 이 물거품 같고 신기루 같은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산다. 나 역시 실체도 없는 마음에 늘 휘둘리며 살았다. 원망과 분노, 자책 등으로 스스로를 지옥에 빠뜨렸다.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으려면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사자처럼, 바람처럼, 연꽃처럼 살아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2,000여 년의 세월을 건너 괴로움에 빠져 길을 잃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삶의 나침반이지 않을까.




박혜경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우먼센스』, 『여성동아』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출판팀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대원아카데미 명상지도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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