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나의
연구 소재이자 방법론
윤원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우리는 어느 특정 종교를 믿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두고 어느 정도 배타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다른 종교는 안 믿거나 싫어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종교학자는 개종(改宗)이 아니라 가종(加宗)을 천거하기도 하고, 실제로 자기는 여러 종교의 신봉자라고 선언한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니니안 스마트(Ninian Smart)는 “다른 전통이나 문명에서는 배울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미친 사람이다. 다른 종교들에도 배울 게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이를테면 ‘불교 신자이자 성공회 신자’라거나 ‘힌두교인이자 무슬림’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불교 신자이자 동시에 성공회 신자임을 자처했다.
우리가 어떤 특정 종교의 신자가 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 종교의 가르침이 진리라고 판단해서 받아들이는 게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겠는가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러 종교의 가르침을 비교하고 가늠하며 심각하게 고민을 거쳐서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드문 경우이고, 대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존 힉(John Hick)이라는 종교철학자가 이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즉 “어떤 종교를 믿느냐 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한 것이다. 그 법칙이 대략 98~99%는 적중한다는 것이 힉의 주장이다.
돌이켜보면 나와 불교의 인연도 그렇게 생래적으로 맺어졌다. 할머니들과 어머니께서는 가끔씩 절에 다녀오셨다. 동네의 부인네들과 여럿이 함께 먼 길을 다녀오실 때도 있었다. 나도 따라나서서 산길을 한참 걸어가서야 당도하는 어느 큰절에 다녀온 기억도 있다.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그 산길은 대관령 길이었고 절은 오대산 월정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집에서 한두 구역 건너에 포교당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었고, 거기는 수시로 들락거렸다. 이 또한 당시에는 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도심 포교를 위해 세운 오대산 월정사의 포교당으로서, 지금은 관음사라고 불린다.
포교당 전역이 연등으로 덮이고 많은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여드는 잔칫날도 있었다. 초파일 행사였을 것이다. 고모와 큰누나 결혼식도 그 포교당에서 치렀다. 어린아이 눈에는 거대해 보이는 건물 앞의 광활한 공터가 인상적이었고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놀이터였다. 고향을 떠나고 성인이 된 뒤에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을 때, 그사이에 포교당이 아주 작아졌다고 웃음을 터뜨렸었다.
아무튼, 불교는 그렇게 태어났을 때부터 내 환경의 일부였다. 그것을 천주교나 개신기독교에서는 모태신앙(母胎信仰)이라고 부르던데, 위에서 존 힉의 말을 인용했듯이 우리 대부분은 모태로부터 이미 결정된 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후 성장하면서 차차 인지와 판단 능력을 기르고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는 가운데 자신의 그 생래적인 성향, 주어진 신앙까지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모태신앙을 더욱 돈독하게 다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버리고 다른 종교의 신행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의 성정과 능력을 감안하건데, 두 가지 경우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도 충분한 비판적 성찰 없이 무조건 자신의 모태신앙을 절대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유치하고 편안한 신행 생활에 안주한다는 데 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자기 종교에 습관적으로 붙들려 사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종교들도 많다는 사실이 그런 이들에게는 당혹스러운 “불편한 진실”이다. 그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도 대개 치졸해서, 다른 종교들은 모두 틀렸다고 치부하거나 심지어 기회와 능력이 있다면 폭력적으로 진압해버리려고 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버렸지만, 그런 치졸함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참혹한 사건들의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도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기해보면, 이는 인류 문명의 참으로 중대한 문젯거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마다 나름대로 절대 진리의 주장을 내놓는다. 하지만 진리라는 개념 자체가 막연하다. 어떤 진리 선언이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절대적으로 진리인 것은 아니다. 역시 좀 막연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역할을 해야지 비로소 진리 구실을 하는 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종교에서는 이를 두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하기도 한다(“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해야 한국어 어법에 맞는다). 아무튼 어떤 명제가 누구에게는 그의 정신을 인간의 한계 너머까지 탐사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진리가 될 수도 있고, 똑같은 명제가 다른 누구에게는 치졸한 고집과 독선에 사로잡히게 하는 족쇄로 쓰일 수도 있다.
나는 이를테면 나의 모태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에 대해서 성찰하고 급기야는 전공 분야로 삼아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나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힘을 그 가르침으로부터 새록새록 얻는다. 타 종교 신자 내지 심지어 타 종교 성직자이면서 불교학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 많은데, 그들도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진리를 불교에서 배울 수 있었기에 불교학의 대가가 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도 굳이 한마디를 집어내자면 공(空)의 가르침이 특히 요긴하다. 공은 비움이요 비움은 곧 열림이다. 시공(時空)상의 보잘것없는 한 점일 뿐인 이 한 몸의 구차한 살림살이를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버둥거리는 게 우리들의 버릇인데, 그것을 놓아버리고 나를 비우라고 한다. 나를 비운다 함은 나를 온 세상에다가 열어젖힘이요 그럴 때 온 세상이 내게 들어올 수 있다. 상충하는 양극을 “걸림 없이” 다 성립시키는 중도(中道)를 실행할 수 있다.
종교는 각자 절대 진리 주장의 장벽을 치고서는 배타적으로 웅크리고 있다. 그 장벽에 막히지 않고 여러 종교들을 두루 깊숙이 탐사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학문이 종교학이다. 그래서 종교학자에게 공, 중도 등 불교의 가르침은 그대로 학문적 방법론으로 요긴하다. 특히 다른 종교도 아니고 연구의 소재와 방법론을 한꺼번에 제공해주는 불교를 전공 분야로 삼는 나와 같은 경우는 참으로 행운아이다. 그럼에도 미천한 학문에 머물고 있는 것은 오직 나의 게으름 때문일 터, 더 용맹스럽게 정진해야겠다.
윤원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술로 『불교사상의 이해』, 『똑똑똑 불교를 두드려보자』, 『종교와 과학』 등을 공저했고, 『종교의 탐구』, 『선불교에 대한 철학적 명상』 등 역서가 있으며, 「민속종교 제의의 기능에 대한 일고찰」, 「불교와 영성」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