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임상 효과
박성현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붓다의 별호 중 하나가 대의왕(大醫王)이다. 붓다의 일생일대의 관심은 인간의 괴로움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다. 명상은 붓다께서 괴로움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핵심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명상은 붓다의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수행법으로 면면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감성 지능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심리학자이자 『뉴욕타임스』 기자이기도 했던 대니얼 골먼 박사는 명상을 메타세러피(meta-therapy)로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명상이 고통의 치유에 관한 정교한 이론적 체계와 실천 방법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서구 심리 치료에서 도달하고 있지 못한 고통의 근원적 원인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료를 넘어선 치료’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명상에 부여했다.
서구 과학계에서 동양의 명상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심장내과 의사였던 허버트 벤슨은 달라이 라마가 전파한 티베트 금강승 전통의 명상 수행법에 대한 신경생리학적인 연구를 시작으로 동양의 명상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인도의 요기 마하리시 마헤시가 미국인들에게 가르쳤던 ‘초월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연구를 통해 ’이완 반응(relaxation response)’이라는 임상적 치료법을 개발했다. 이완 반응은 고혈압이나 관상동맥 질환을 포함한 만성적인 스트레스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발표되었다.
1980년대 이후 명상의 임상적 연구를 이끈 인물은 ‘마음챙김에 기초한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MBSR)’을 개발한 존 카밧진이다. 그는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이 만성 통증 환자들의 자기-조절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며 서구 의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90년대에는 명상이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의 맥락에서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하며 정신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이라는 치료 이론에서 핵심적인 치료 기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서구 심리학계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심리 치료에 적용하는 시도가 활발히 일어났다. 경계선 성격 장애 치료를 위한 변증법적 행동 치료(Dialectical Behavior Therapy: DBT), 우울증 재발 예방을 위한 마음챙김에 기반한 인지 치료(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 MBCT), 다양한 정서 장애 치료를 위한 수용 전념 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2000년대 이후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마음챙김 명상을 축으로 해 문자 그대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명상의 치료적 잠재력에 대한 일각의 의구심을 잠재우고, 인간 고통과 치료에 대한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정도의 거대한 전환이 21세기 초반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명상은 반복적인 연구를 통해 신경생리적, 신체적, 심리적 측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증상과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임상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명상은 신경생리적 측면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면역 반응을 감소시키고, 만성적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 반응을 안정화시킴으로써 스트레스의 지표가 되는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 수치를 낮추고 심박변이도를 증가시킨다. 이러한 신경생리적 변화는 만성적 스트레스와 깊은 관계가 있는 심혈관 장애, 고혈압, 만성 통증 등을 예방하고 완화하며, 암 환자들의 면역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치료의 긍정적인 예후 가능성을 높인다.
명상 연구자들은 뇌전도(Electroencephalogram: EEG), 신경 이미징(Neuro Imaging),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등의 기법을 통해 명상이 뇌구조를 활성화해 인지적 통제 능력, 정서 조절 능력, 지각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명상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지각적 민감성, 집중력, 자기통제력, 창의성과 같은 역량이 증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상은 다양한 심리적 장애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명상은 불안 장애, 주요 우울증, 공황 장애, 섭식 장애, 외상성 장애, 중독 문제 등 다양한 심리적, 정서적 문제의 치료에 적용되고 있으며 유망한 효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자비 명상(compassion meditation)은 부교감신경의 일종인 미주신경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심장의 건강 수준을 높일 뿐 아니라 긍정적 감정을 증가시키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서적 회복 탄력성을 증대시킨다. 또한 자비 명상은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자기-비난 경향을 줄이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과 친사회적 행동을 증가시키는 등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가 발표되고 있다.
명상이 가져오는 다양한 임상적 치유 효과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날까? 우선, 명상은 신체적으로 생리적 이완 현상을 일으킨다. 명상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신체의 대사 과정을 느리게 한다. 명상 중에는 호흡이 길어지고, 심장박동이 느려지며, 근육의 긴장 또한 풀어져 몸과 마음은 평화롭고 안정된 휴식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스트레스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어 긴장된 몸과 마음을 명상을 통해 의도적으로 이완 상태로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스트레스에 기인한 다양한 신체적, 심리적 문제들을 예방하거나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명상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휩싸이지 않고 그것을 관찰하는 힘을 키워준다. 대부분의 심리적, 정서적 장애들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할 때 일어난다.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흔히 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억압하거나 또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휩싸여 이를 무분별하게 분출한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결과적으로 자신과 관계를 해치고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명상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이것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능력을 키워준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건강한 공간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관찰하고 흘려보내는 기술을 배우게 된다. 명상은 생각과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그것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도 않는 새롭고 지혜로운 길을 가르쳐준다.
마지막으로 명상은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 지켜야 한다고 배운 도덕이나 금기 등은 대개 부모, 교육, 사회, 문화에 의해 내면화되고 조건화된 경우가 많다. 조건화된 자기에 대한 개념이나 가치는 삶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선택의 순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기에 대한 개념과 자신이 믿는 가치에 부합한 선택을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기 존재의 정당성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된 자기 개념과 가치는 자기 고유의 진실한 필요나 관심과는 무관하게 자동적이고 습관화된 방식의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명상 훈련을 통해 우리는 선택의 순간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진실한 느낌이나 욕구, 동기를 알아차림으로써 자동적인 선택이 아닌 반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명상은 습관화되고 조건화된 자기에 대한 개념이나 가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매 순간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결과적으로 명상은 타인, 권위자, 문화를 포함한 다른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실현하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박성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 대학원 심리학과(상담심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불교대학원대 상담심리학과 자아초월상담학 교수로 있다. 최근에는 자비 명상을 토대로 한 심리 치료 적용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역서로 『자비의 심리학』, 『자비중심치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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