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젊음을 깨우는 마음챙김의 힘 『늙는다는 착각』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내 안의 젊음을 깨우는 
마음챙김의 힘

『늙는다는 착각』


엘렌 랭어 지음, 변용란 옮김, 유노북스 刊, 2022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으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심리학자 엘렌 랭어는 내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마음챙김 훈련을 하면 그 어떤 약이나 치료 없이도 노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늙는다는 착각』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체념해버리는 부정적인 마음과 ‘얼마든지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믿고 실천하는 희망적인 마음 사이의 치열한 전투를 그린 화제작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할 일을 정하고,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는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면, 노인들만 모여 있는 요양원에서도 얼마든지 ‘시계 거꾸로 돌리기’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례를 바로 우리 엄마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다. 

엄마를 만난 뒤 작별 인사를 하고, 어린 손주를 업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엄마를 지켜봤을 때였다. 이제 엄마가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는 모습을 봤으니, 나는 이쪽 편에서 버스를 타려고 있었는데 길 건너에서 엄마는 앞이 잘 안 보이시는지 지갑을 허둥지둥 찾으며 손주를 업은 채로 우왕좌왕하는 것이었다. “엄마, 왜 그래! 뭐가 없어졌어? 정신 바짝 차려야지!” 나는 급하게 길 건너에서 엄마를 부르며 다그쳤지만, 엄마는 내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듯 계속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엄마를 안심시켜드리고, 지갑은 가방에 넣는 것을 봤다고 걱정 말고 가시라고 하면서도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오래 앓으시던 황반변성이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엄마의 주의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정말 나이 들었구나, 더 많이 보살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조카가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간 뒤 2년이 지나자 엄마는 예전보다 더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셨다. 여동생이 일 때문에 바쁠 때마다 조카를 봐주시면서 엄마는 오히려 책임감과 주의력이 높아졌고, 매일 조카를 볼 수 있어 좋으시다며 ‘웃는 날’이 많아졌다. 분명 예전보다 더 바쁘고 힘들어졌는데 오히려 젊어지고 밝아진 엄마의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엘렌 랭어의 저 유명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의 기적이 우리 일상 속에서도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 조카를 돌봐주기 전 엄마는 ‘웃을 일이 없다, 우울증이 심하다’는 말로 딸들에게 걱정을 안겨주었는데, 엄마는 오히려 ‘손주를 돌본다’는 의무감으로 더욱 강해지고 씩씩해지며 젊어진 것이었다. 

『늙는다는 착각』에서 핵심적인 마음챙김의 비결은 바로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의 원리는 간단하다. ‘이제 내 인생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체념해버린 노인들에게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권리, 식물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식물을 홀로 보살펴야 하는 책임감을 심어줌으로써 ‘살아야 할 이유’를 선물해준 것이다. 식물뿐 아니라 식사 시간, 먹고 싶은 음식, 운동 방법, 운동 시간 등 다양한 일상 속의 자잘한 항목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자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건강해지고, 눈에 띄게 젊어지며, 밝은 표정과 활기찬 일상을 보여주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조군(예전처럼 요양원에서 시키는 대로, 규칙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에 비해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마음이 늙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커피 전문점에서 ‘이 기계가 뭐지?’ 하며 한참을 고민하시는 할머니가 있기에 나는 그분이 궁금해하시는 기계가 ‘커피 그라인더’임을 가르쳐드렸다. 원두를 넣어서 잘게 가는 기계라고 설명을 드리자, 할머니는 감탄하셨다. 상품을 설명하는 글자가 너무 작아서 할머니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커피 그라인더를 가르쳐드리자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예쁘고 좋은 기계가 있구나’라는 기쁨을 마음껏 표현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오래오래 마음의 젊음을 간직한다.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해서 체념하지 않고, 끊임없이 작은 것이라도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일상 속의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이 책의 결정적 메시지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은 마음챙김(mindfulness)의 효과를 가져오고, 그저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음놓침(mindlessness)의 상태에서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마음을 건강하게 보살필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몸 또한 건강해질 수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몸은 분명 하나로 이어져 있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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