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향한 씨앗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지구를 향한 씨앗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바다 생물을 위해 쓰레기를 낚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서울 상암에 있는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생태문화축제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바질 지구생활안내서 등 환경 도서 코너, 멸종위기동물 카드 게임 코너와 함께 바닷속 생물 구하기 쓰레기 낚시터를 운영했다. 주 고객은 아이들이었다. 이들이 가장 열광했던 것은 쓰레기 낚시터였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물에서 낚시하는 곳이었다. 이 쓰레기들을 먹고 해양 생물은 목숨을 잃는다. 그들이 죽지 않도록 아이들은 풀장에 빠진 이 쓰레기들을 낚싯대를 이용해 모두 건져내는 것이었다. 기후변화로 예년보다 따뜻해진 시월 말이라 해도 추운 가을이었지만 아이들은 쓰레기를 낚기 위해 낚싯대를 물에 던져가며 열을 올렸다. 아예 물속에 들어가 쓰레기를 건지려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의 쓰레기 몫을 낚시해낸 아이들의 표정은 뿌듯해 보였다. 그중 한 아이는 아빠에게 고개를 들어 “우리 물고기 살리게 바다에 쓰레기 주우러 가요”라며 작은 입으로 말했다. 어떤 아이는 “쓰레기 버리면 안 돼요. 물고기, 배 아파요”라고도 했다. 저 아이들은 이제 바닷가 가면 쓰레기를 줍자고 하거나 적어도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준 대로

나는 밥을 싹싹 깨끗이 먹는 습관이 있다. 배부르면 그만 먹어야 한다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밥을 남기면 1년을 고생한 농부에게 죄를 짓는 마음이다.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환경 실천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 그런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 시작을 거슬러 가보니 어린 시절 밥상머리, 책상머리이다. 어머니께 늘 듣던 쌀 한 톨이 우리에게 들어오기까지 농부가 쏟는 노고의 소중함에 대해 듣던, 반복된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 말을 듣던 아이는 여전히 내 속에 남아 내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싫다며 이 버릇을 노력으로 벗어던지지 않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지구를 향한 씨앗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모습을 투영하며 자라난다. 아이들은 우리가 지금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그 모습대로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게 투영되었던 어른의 모습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투영 중에는 나와 지구의 관계성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보고 배우고 자란 지구와의 관계성은 지구는 소비하는 대상이었다. 필요한 것을 얻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한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것, 이를 위해 다른 지구상의 생명이 희생된다는 것에 관해서는 전혀 인지조차 못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더 빠르게 할까’가 중요한 가치였다. 어린이라는 내게 심겨진 지구에 대한 인식의 씨앗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지구는 기후 붕괴라는 말이 나오고 있고, 인간과 가축, 작물을 제외한 모든 생물 종의 멸종은 지난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 때보다 1,000배는 빠르다. 

지금 이 순간, 만약 우리에게 쓰레기 낚시터의 아이들처럼 우리가 다른 생명을 생각해야 한다는 지구를 향한 씨앗을 가졌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지구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아이들에게 지구를 향한 습관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를 투영할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지구,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곳을 지켜내는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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