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사람을 살린다
모두의 공생체, 숲
신준환
동양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
숲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나 좋다. 혹자는 겨울 숲에는 볼 것도 없고 을씨년스럽다고 하지만 오히려 겨울 숲은 삶의 지혜를 나투어준다. 겨울 숲에 가보자.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여러 세계가 보이지 않는가? 사실 겨울 숲에는 잎이 다 떨어진 후에도 회색빛 풍경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보는 것이다. 우리는 별로 애쓰지 않고도 세상을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들여야 하고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견이 팔정도에서도 제일 앞에 오는 것이다. 다행히 겨울 숲을 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겨울 숲에 들어가 겨울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어려움을 마음에 담고 작은 가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찬 바람이 휭하니 불어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가느다란 가지 끝에 작은 눈이 보일 것이다. 하나가 보이면 여럿이 보인다. 이토록 가늘고 작은 가지에 겨울눈이 촘촘히 붙어 있다. 자다가 일어나보니 그믐밤 별이 총총히 빛나듯이 갑자기 마음이 밝아지고 겨울 숲이 을씨년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 겨울 숲에는 겨울눈들이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새봄을 꿈꾸며 빛나고 있다. 겨울을 나느라 온갖 풍상을 겪어내야 하므로 손톱처럼 뭉툭한 겨울눈을 보고 별을 떠올리는 것이 심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겨울눈의 비늘 사이 색색으로 반짝이는 털을 살펴보자. 겨울 숲은 온통 별꽃 천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 작은 공간으로는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등 작은 박새류 새들이 날아다니며 먹이를 먹고 있다. 이들은 겨울에는 오목눈이, 동고비, 딱따구리류와 함께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이 중에서 동고비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내린다. 나무발발이는 나무에 오를 때 꼬리로 몸을 지탱한다. 이들을 볼 때 귀여운 생동감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사람들 생각에 생물은 서로 경쟁만 하는 것 같지만 다 같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살아가는 생물들은 봄이 오면 꽃가루받이를 하고 여름이면 열매를 옮겨 다양한 나무가 자라게 해 아름다운 숲을 이루어줄 것이다.
숲은 이렇게 모두의 공생체이다. 심지어 작은 새들을 잡아먹고 사는 올빼미나 검독수리 같은 맹금류도 공생한다고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관계만 두드러지지만 사실 포식자도 의존하고 있다. 그들이 먹을 생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굶어 죽어야 한다. 잡아먹히는 생물도 잡아먹는 생물 덕에 진화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풍요로운 숲은 모두 이런 관계가 수억 년 이어져오며 서로 의존하며 진화해온 덕택이다.
심지어 이런 숲을 지켜온 것도 오로지 나무가 한 일만은 아니다. 이런 나무를 키우는 데 미생물의 역할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나무는 박테리아와 공생하며 질소고정을 하므로 척박한 땅에서도 무성하게 자랄 수 있다. 또 나무는 균과의 공생체인 균근(菌根)을 형성해 건조한 곳에서 수분을 얻고 척박한 곳에서 양분을 얻는다. 원래 나무처럼 덩치가 큰 식물은 물가에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균근 덕분에 내륙 깊이 들어올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균근 공생체가 진화하지 않았으면 아예 육상에서 나무가 자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더구나 이런 균들은 나무의 종류와 관계없이 서로 연합체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런 균근균 통합체를 인간 세계의 WWW(World Wide Web)에 빗대어 나무의 세계 연결망(Wood Wide Web)이라는 뜻에서 또 다른 WWW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알고 보면 정글의 법칙이 약육강식이라는 말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원래 덩굴식물이 무성하게 자란 정글의 이미지도 맞지 않는 것이다. 차분히 생각해보자. 덩굴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물과 햇빛이 모두 충분해야 한다. 숲에는 물도 나무들이 이미 많이 이용해 부족하고 햇빛도 부족하다. 어떻게 그렇게 덩굴이 무성하게 자라겠는가. 이는 모두 그 당시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탐사할 때 길을 모르기도 하고 너무 위험하기도 해 숲에 들어가지 못하고 강을 따라다니며 관찰한 내용을 지금까지 그대로 맹신하고 있는 결과이다.
정견이 중요하다. 숲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서로 겨루며 맞춰 살아가는 관계에 있는 공생체이다. 숲은 나의 죽음이 남을 키워 생명이 순환하면서 더 다양한 삶의 자리를 키워 더 풍요로운 세계가 되어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숲이 나무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숲은 나무와 나무 사이로 이루어진다. 숲에 가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생물들이 숲을 살아 있게 만들어주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작은 나무들이 큰일을 한다. 큰 나무만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의 욕심이다.
사실 우주도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이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망원경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별과 별 사이 컴컴한 공간에 훨씬 많은 별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심지어 별과 별 사이에는 다른 은하들과 성단이 숨어 있다. 이렇게 보면 실질적인 우주는 별과 별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을 투영해 숲에서도 경쟁만 읽어내지 말고 모두의 공생체인 숲을 제대로 보자. 탐욕으로 보이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정견을 이루자.
신준환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수목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양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다시, 나무를 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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