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법계의 등장, 메타버스 | 인터넷 가상현실 속 불교

새로운 법계의 등장, 

메타버스


보일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메타버스 가상 박물관 ‘힐링동산’의 아바타 체험 모습 예시
사진_국립중앙박물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종착역 

연배가 있는 분들은 과거에 큰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비슷하다. 아니 어쩌면 원조인지도 모를 일이다. 추억의 ‘일촌’과 ‘도토리’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아마 지금쯤 염화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다르다면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보다 정교해지고 훨씬 더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게임을 비롯한 현실 세계의 다양한 활동들을 가상공간과 융합해서 즐긴다는 개념은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디지털 기술이 미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데이터도 모자라거니와 설사 데이터가 많다고 하더라도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컴퓨팅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속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탄생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만 하더라고 조만간 5G 수준을 넘어설 기세다. 빅데이터와 가공할 수준의 연산능력, 그리고 그 데이터를 전송하는 속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빅데이터, 클라우딩, 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 메모리 반도체, 사물인터넷 기술 등등이 결합한다. 한마디로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최종 낙처인 셈이다. 메타버스는 일종의 판타지 세상이다. 그러나 그 판타지 세상은 더는 환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현실 세계와 공존하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실 세계의 모든 일과 오락, 여가 활동을 디지털 세계로 그대로 옮겨놓고 그 속에서 영위하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오히려 메타버스 속의 인간관계나 경제 활동이 더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게임을 위한 공간이나 특정 목적으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메타버스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태도마저도 변화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메타버스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어디에 더 실재감을 느끼며 살게 될까? 어쩌면 이제 가상과 현실이라는 구분도 적절치 않은 관념이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 이후, 메타버스!

‘유튜브’보다 많은 사람이 즐겨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고 한다. 혹시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등등의 이름을 통해, 이미 메타버스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이름들은 각각 전 세계 2억 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메타버스 플랫폼들이다. 상상이 안 가는 규모다.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돈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메타버스에서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단순히 가상공간에서 문화, 사회활동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활동을 하고 실제 수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인터넷 디지털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로블록스(Roblox)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소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로블록스는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만들 수 있고, 또 다른 사용자가 만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보이 그룹 BTS도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포트나이트’라는 메타버스 공간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메타버스 공간에서 그룹 구성원의 외모와 개성을 살린 아바타 혹은 캐릭터를 통해 노래 부르고, 춤추며, 팬 사인회를 열기도 한다.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각자의 아바타를 아름답게 꾸미고 이 공간에 몰려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라고 해도 이 메타버스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가상공간의 부동산을 사고판다

이제 실재 사람이든 디지털 휴먼이든 메타버스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존재들이 살아갈 터전이 필요하다. 메타버스에선 이 문제를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 클릭 한 번으로 집도 뚝딱 만들어내고 다리도 만들어낸다. 무슨 도깨비방망이 같은 소리냐고 할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2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는 ‘월드 크리에이션’ 기능을 통해 메타버스 공간 속 사람들이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낸다. 회의나 학술대회 또는 신제품 발표회를 해야 할 경우, 이 가상공간에 모여들어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예 땅이나 건물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어스(Earth)2’라는 ‘가상 지구’가 있다. ‘어스2’는 ‘구글 어스’를 기반으로 설계된 가상 부동산 거래 플랫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 이 플랫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가상 부동산을 보유한 국가가 한국이다. 이 플랫폼에서 서울 강남을 찾아보면, 구매자의 국적을 뜻하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한국인의 부동산 사랑은 메타버스에서도 여전한 듯하다. 한술 더 떠서 일부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성 부동산 구입까지 성행한다고 하니, 인간의 욕심은 현실이나 메타버스 세계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국가나 ‘어스2’ 플랫폼에서 구입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해줄 수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투자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욕망이라는 관점에서는 메타버스가 원본인 현실 세계를 반영하거나 오히려 넘어설 수도 있다. 


무엇이 다른가? 가상현실 넘어 거울 세계로

그럼 이전에 있었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하고는 무엇이 다른가? 현재의 메타버스 수준은 나의 일상이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세상과 결합하는 ‘라이프 로깅(Life Logging)’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등 모든 삶의 순간순간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타이핑한다. 그리고 그 사진과 글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올려,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상의 경험들마저도 데이터가 되는 과정이다. 수많은 개인의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서 빅데이터가 생겨나고 있다. 결국 나의 삶의 정보가 디지털 세계와 결합하고 디지털 세계 속의 활동이 다시 현실 세계에서 수익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단계다. 이 수준을 넘어서는 메타버스의 최종 단계를 ‘거울 세계’라고 한다. 이 거울 세계는 배경이 되는 공간 자체가 실제 세계를 그대로 구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아바타들만 상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상현실은 실제 세계를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바탕으로 구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거울 세계와 차이가 있다. 이 거울 세계에서는 실제 현실 세계와 똑같은 세상을 그대로 복제하는 정도의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실 세계의 사물들을 가상세계에 쌍둥이와 똑같이 만들어내서 현실 세계의 동작과 행동을 가상세계에서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과의 융합도 시도되고 있다. 현실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만들어낸 세계가 다시 또 새로운 세계를 거듭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세계들이 계속 확장 혹은 팽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현실 세계에 수렴되면서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게 된다. 결국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는 서로 융합하고 의존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포함한다. 이처럼 우리 눈앞에서 여러 세계가 중첩되고 융합되는 또 다른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보일 스님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으로 있다. 저서로 『AI 부디즘』이 있고, 「인공지능 챗봇에 대한 선(禪)문답 알고리즘의 데이터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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