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삶을 위해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삶을 위해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화수분

나는 망연자실하게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짐들을 쳐다보았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이사였다. 사십삼 인치나 되는 텔레비전도 지인에게 들려 보냈고, 최신 에어컨도 이제는 선풍기 바람이나 쐬겠다며 처분해버렸으며, 책은 앞으로는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수백 권을 기부하거나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나눠 준 뒤였다. 오십 리터 쓰레기봉투를 세 개나 채워서 버렸고, 20년간 애지중지 모아온 100편이 넘는 비디오, 1,000편이 넘는 영화 CD도 다 갖다 버렸다. 자취 시작할 때 산 목재 박스 여섯 개도 갖다 버렸다. 


껌 포장지의 은박지

나는 예전부터 버리지 않고 모으는 습관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나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가 모아두었던 오래된 우표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는 것이고, 나는 어느새 뭐든 수집하고 있었다. 집에 온 우편 봉투 우표는 무조건 내 것이었고, 볼펜 안에 들어간 스프링을 모았으며 껌 종이 겉면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은박지를 찢어지지 않도록 아주 조심하며 벗겨내어 모았다. 돈 없는 초등학생에게는 귀중한 수집품이었다. 형제 중 누군가가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연필이나 지우개도 내 수집 대상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내 서랍으로 쏙쏙 모여 들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성실히 관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우표만큼은 용돈을 모아 우표책까지 사서 관리했다.  

그럼에도 수집하는 것은 필시 내 천성임이 분명했다. 중학생 때는 만화책에 열을 올렸고, 고등학생 때는 공책에 열을 올렸다. 대학생이 되자 다른 방식의 수집인, 사진을 찍어 모으는 데 열을 올렸다. 졸업 후 돈 버는 직장인이 되자 내 재능은 폭발했다! 생필품에서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샴푸도 1년은 넉넉히 쓰고도 남을 만큼 쌓아두었고, 치약, 린스, 화장품까지 아주 넘쳐났다. 물건을 살 때 끼워주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받아왔다. 화장품은 샘플만 써도 한두 달은 너끈히 쓸 수 있는 양이었다. 옷도 이제는 그만 사겠다 결심하는 ‘절약’을 명목으로 구제 가게에 가 옷을 담았다. 책도 찰나의 고민 후 마음에 들면 가리지 않고 사 모았다. 다 못 읽었다. 그릇도 많았고 혼자 살면서 의자는 9개나 되었다. 모든 것이 많았다. 정말 많았다.


작은 삶으로

2.5톤 트럭에 어떻게 짐은 다 들어갔다. 다행이다. 이 짐도 그 작은 집에 다 들어갈까라는 걱정과 거기서도 많이 버려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사를 위해 수많은 물건을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그들이 버리지 않게 계속 쓸 것이란 사실이 기뻤지만, 후회도 따라왔다. 내가 떠낸 이 물건들은 나에게 오기 전까지 자신이 버려질 줄 알았을까?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버려진 물건들에 미안해졌다. 만약 내가 내 일상을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만 채워왔다면, 수많은 버려진 플라스틱을 위해 석유를 쓰는 양이 적어도 내 몫만큼은 줄지 않았을까, 베어져 나간 나무를 적어도 한 그루라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버린 가죽 제품을 위해 희생된 생명 하나라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내 양심을 찔러왔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이 부처님처럼 가사와 발우 하나로 살아가는 것은 힘들 것이라는 것은 안다. 앞으로도 나는 물건을 탐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앞으로 다시는 물건과 함부로 인연을 맺지 않으리라. 무언가를 쓰지도 못하고 그냥 버리는 것이 이 물건을 위해 희생한 것들에게 미안해지는 일이 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소박함을 꿈꾸되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많이 가진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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