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에 대한 불교의 관점 | 불교와 자본주의

불교와 자본주의 5


부(富)에 대한 불교의 관점



불교경제

불교경제는 불자의 일상과 삶에서 중요한 문제다. 재가 불자의 경우 경제 활동을 통해 생계 유지, 가족 부양, 사회 공헌 등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신적 발전을 위해서는 모든 활동을 불교윤리의 범위 안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 가르침은 갈애를 끊어내라고 하며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탐닉을 경계한다. 보살은 깨달음을 위해 호화로운 삶을 버리며,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최소의 필수품 외에는 물질적 소유 없이 살아간다. 실로 불교에 입문한 사미승은 승가에 들어오기 전에 모든 세속의 소유물을 포기해야만 한다. 경전에 보면 부유한 배경에서 출가한 스님들이 상당수 있다. 더하여 하루 1식만 하는 등의 일부 불교 수행은 ‘고행’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볼 때 부에 대한 불교의 관점은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불교 가르침과 부합되지 않는다. 더욱이 계를 받은 스님과 재가 불자에 대해 적용되는 부의 자세는 다르다.


가난

불교에서 재가자는 자신・가족・사회의 행복을 위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정신적 발전에 집중하기 전에 먼저 기본적 필요가 만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몸이 안 좋거나 금전적 걱정이 있다면 고요한 선정을 닦기가 어려울 것이다. 배고픔은 마음을 흔들어 집중을 어렵게 한다. 한 경전에서 붓다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한 남성이 사는 마을에 가르침을 전하러 갔다. 마을에 도착해보니 그 남성은 너무나 지치고 배고픈 상태여서 붓다는 가르침을 전하기 전에 먼저 그에게 음식을 줄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경전에서 붓다는 말했다. “배고픔이 가장 큰 질병”이며 마찬가지로 “빚 등의 재정적 근심이 있어도 마음의 평화가 없으므로 세상을 사는 재가 불자에게 가난은 고통”이라고 했다. 가난하면 보시를 해 공덕을 쌓을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부(富)

앞에서 가난과 빚이 재가 불자의 고통임을 보았다. 그렇다면 불교는 부의 축적을 옹호하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부 자체에 대해 찬양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다만 부를 어떻게 축적하고 사용하느냐가 문제다. 부는 정당하게 얻었다면 탓할 게 없다. 즉 폭력, 도적질, 거짓말, 속임수 등으로 남을 해하지 않고 얻었다면 정당하다. 이것이 바로 팔정도 중 하나인 바른 생계[정명]를 말한다.


불교 경전은 ‘두 개의 눈,’ 즉 이익과 윤리를 다 유념하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눈이 먼 사람과, 눈이 하나인 사람, 눈이 두 개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 눈이 먼 사람은 부를 창출하는 법도 모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부가 없고 (선물, 보시 등의) 좋은 일도 할 수 없다. 눈이 하나인 사람은 부를 창출할 줄은 알지만, 무엇이 비난받을 일인지 아닌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모른다. 그는 폭력, 도둑질, 기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를 얻는다. 비록 창출한 부로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는 죽어서 지옥에 태어난다. 눈이 둘인 사람은 부를 창출할 줄도 알고 동시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하고 악한지도 안다. 그는 이생에서 부를 즐기고 사후에는 좋은 곳에 태어난다.


부를 사용하는 방법

불교에서 부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부에 대한 자세나 사용법에 따라 부는 이익이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부는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고 보시를 통해 너그러움을 닦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부에 집착하면 부를 얻기 위해 비윤리적 행위로 악업을 쌓고, 잘못된 소비로 고통을 낳는다. 『시갈로바다경』에 의하면 부를 얻은 후에는 반은 사업에 투자하고, 1/4을 즐거움에 사용하고, 나머지 1/4을 저축하라고 한다. 그 밖에 경전에서는 부를 다음과 같이 사용하라고 한다. 자신과 가족, 친지와 직원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부가 상실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 친지, 손님, 죽은 친지와 신들에게 공양하기 위해서, 스님들처럼 덕 있는 자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부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

부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은 바른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재가자에게 중요한 문제다. 불교는 부가 재가자에게 안락과 즐거움을 가져올 수도 있고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경제와 윤리의 균형, 바른 소비와 그른 소비의 균형, 물질주의와 고행주의의 중도가 이루어질 때 행복이 가능하다. 부의 역할은 개인과 사회에 기본적 필요를 적절히 만족시키는 것일 뿐 탐욕과 방종을 독려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불교 가치는 물질주의적 소비주의와 긴장관계에 있다.


불교는 탐욕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부는 어리석은 자를 파괴하지만, 열반을 추구하는 자는 파괴하지 않는다. 부의 기능은 만족을 주는 것이고, 이는 영적 발전에 단단한 기반이 된다. 따라서 소욕지족이 불교에서 강조하는 성품이다. 만족이 가장 큰 부라고 할 수 있다.


번역 | 로터스불교영어연구원


• 이 글은 부디스트도어 글로벌에서 국제 부문을 담당한 스캇 쿠옌이 쓴 글로서 2008년 3월 『보디 저널(Bodhi Journal)』(현재 발간되지 않음)에 게재된 것을 일부 발췌,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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