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순간에 듣고 싶은 노래 | 나의 불교 이야기

임종 순간에 듣고 싶은 노래


송혜진 

숙명여자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송혜진(법명: 여일행),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더럼대 음악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을 거쳐 국악방송 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국악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가 있다.


춘천박물관 전시실에는 ‘김유신 부인 이씨의 묘지명’이라는 유물이 있다. 돌판에 한자를 새겨 넣은 다소 평범해 보이는 작은 유물이지만, 박물관 큐레이터가 뽑은 글귀가 발길을 잡는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입으로 아미타불을 외우며 세상을 떠났다.” 생각만으로도 부러운 임종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또 하나 생각난다. 일본에 전해오는 옛 이야기 중 하나다.


신심 깊은 염불 행자로 한 생애를 마치게 된 스님은 임종을 맞이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일심으로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손에 건 오색실을 쥐고 제자들이 왕생극락을 비는 염불 소리를 들으며 마침내 운명했다. 모두들 수님이 극락왕생하셨을 것이라 믿었다. 승방을 물려받은 제자가 스승이 관리하던 식초 단지를 열어보니 그 속에 작은 뱀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라서 일단은 선반 멀찍이 치워놓았는데 그날 밤 꿈에 뵌 스승께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임종 즈음 다른 생각을 품지 말고 염불을 독송하며 숨을 거두자 생각을 하였는데 선반 위에 있던 식초 단지가 문득 눈에 들어오더라. 그 순간 ‘내가 죽으면 이 단지를 누가 가지고 갈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때는 이게 잘못인 줄 몰랐고, 그래서 참회도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일로 내가 작은 뱀으로 태어나 이 단지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 ‘송경보시’를 해다오. 간절히 불경을 공경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극락왕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는 이상한 꿈을 꾸고 깨어나 꿈속의 이야기대로 단지를 중당에 모시고 송경의 보시를 올리고 불경을 공양했다. 그러므로 죽을 때는 하찮은 것들은 치워 숨기고 부처님 이외의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금석물어집(今昔物語集)』권20. 제23화 히에이산(比叡山) 요카와(橫川)의 승려가 작은 뱀의 몸을 받은 이야기).


지난 겨울방학,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어려워진 동안, 도서관에서 빌려온 방대한 분량의 일본 고대 설화집을 살펴보다가 옮겨 적어둔 이야기다. 평소 염불 수행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고, 이 글을 읽으며 언제 맞을지 모를 내 임종의 순간에도 이렇게 정성 어린 ‘송경보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유신 부인 이씨, 염불 수행으로 평생을 보낸 일본 설화 속 스님처럼, 내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임종을 맞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지극한 마음으로 ‘송경보시’의 마음을 보태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리고 생애를 마칠 때 듣고 싶은 ‘염불’을 떠올려보며, 미리 골라놓고, 가족들에게도 당부해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앞으로 목록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2018년, 대학 동아리 동문들과 공동 작업으로 완성한 <천수경 대합창>과 동문 합창단들과 새로 만들어 부르던 <반야심경> 및 염불 노래들을 꼽아두고 있다.


그 노래 염불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동문 선배 성태용 교수의 재가 불자 역할론 강의를 듣던 중 어려운 한문 경전의 문제를 어쩌면, 내 전공 분야인 음악으로 풀어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게 되었다. 우선 한문으로 된 경전의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한글 노랫말로 정리하고, 불교 염불의 오랜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 감성으로 재창조된 현대적인 염불, 일상에서 친근하게 노래할 수 있는 염불 음악을 만들어 시시때때로 부른다면, 이것이 부처님의 진리에 다가서는 현대의 염불 수행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글 노랫말에 적절한 선율과 리듬을 붙여 염불처럼 듣고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어, 이웃들의 애경사에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이야기를 기회 닿는 대로 해보기도 했다.


그 첫 작업은 2017년 겨울에 시작되었다. 창립 60주년을 맞은 불교 동아리 동문 행사의 하나로 ‘한글 경전 음악 작업’을 제안했고, 동문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마침내 <천수경 대합창>(한글 번역: 성태용, 가사 구성: 송혜진, 작곡: 김백찬)이 완성되었다. 맨 처음 성태용 교수께서 한글로 번역해주신 <한글 천수경>을 읽으며 아주 잘 짜인 거대한 대합창의 어울림 같은 소리 이미지가 마음속에 차올랐다.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앉은 자리에서 성 교수님의 번역문을 노래가 되도록 재구성한 다음, 합창곡 형태로 작곡을 위촉하고, 지도 선생님을 모셔 전 세대 동문들과 함께 수개월을 연습해 장장 25분 길이의 대합창곡을 초연할 수 있었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 일을 추진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난관이 적지는 않았지만 결국 모든 일들은 기적처럼 술술 풀려나갔다. 돌아보면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맑히며, 너와 내가 다 같이 불국토에 드는 날을 위해 경건하게 서원하는 염불 공덕의 가피를 체험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모두 함께 느낀 <천수경 대합창>의 감동을 맛본 동문들은 행사가 끝난 후로도 함께 모여 이 노래를 열창했고, <반야심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 염불 노래를 더 만들면서 앞으로 재가 신도로서 세상과 함께할 수 있는 음성 공양 프로젝트들을 도모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를 맞아, 합창을 통한 염불 수행과 새로운 기획들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언제든 다시 시작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는 동안 부처님 말씀과 그 뜻이 담긴 노래를 듣고, 부르다가, 노래에 담긴 서원을 몸과 마음에 아로새길 수 있는 ‘한글 경전 음악화 작업’을 계속해나갈 때를.


#월간불교문화 #불교 #문화 #불교문화 #대한불교진흥원 #오늘 #감성 #공감 #공유 #스님 #부처님 #붓다 #부처 #사찰 #한국 #전통 #명상 #수행 #건강 #날씨 #경전 #불경 #문화재 #buddhism #buddhismandculture #북리뷰 #서평 #시 #소설 #수필 #송혜진 #노래 #염불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