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2
초기 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자애
임승택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자애의 마음을 닦아야 하는 이유
다음의 경전은 자애(慈, mettā)의 마음을 닦아야 하는 이유를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집안이라도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면 도적이나 밤도둑의 해침을 받기 쉬운 것과 같이, 비구들이여, 어떠한 비구라도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 mettā cetovimutti)을 닦지 않거나 반복하지 않으면 그는 귀신(非人間, amanussehi)에 의한 해침을 받기 쉽다. 비구들이여, 어떤 집안이라도 여자가 적고 남자가 많으면 도적이나 밤도둑의 해침을 쉽게 받지 않는 것과 같이, 비구들이여, 어떠한 비구라도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반복하면 그는 귀신에 의한 해침을 받지 않는다.”(SN. II. 264p)
위의 경전은 언뜻 남녀를 차별하는 가르침으로 오인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2,500년 전의 고대 인도를 상상해보자. 오늘날과 같이 안정된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가족 구성원의 성별이라든가 신체적 능력 따위가 집안을 지키는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하듯이 자애의 마음이 적으면 도적이나 밤도둑으로 비유되는 귀신들이 들끓기 십상이고, 자애의 마음이 든든히 버티고 있으면 귀신 따위가 함부로 들락거리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수행자의 성장을 방해하는 정신적 장애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애의 마음이 강고하지 않을 때 그와 같은 부정적인 심리가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냄이라든가 인색함 혹은 잔인함 따위에 휘둘리게 된다. 이미 그러한 상황에 빠져 있는 경우라면 무엇을 행하든 마음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갖은 망상에 시달리기 일쑤고, 명상을 한다는 자체마저 피곤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귀신의 해침을 받는 경우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터이다. 이러한 상태가 초래되는 근본 이유를 위의 경전에서는 자애의 마음이 부족한 데서 찾고 있다. 탐냄이라든가 성냄 따위를 부리는 사람은 우선 주변 사람들을 상처받게 하고 괴로움에 빠뜨린다. 그 결과는 앙갚음으로 당사자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이것의 악순환은 자신과 타인 모두의 인격을 망가뜨린다. 따라서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은 주변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애의 마음은 탐냄이라든가 성냄 따위의 악순환을 미리 차단한다. 또한 이것은 자신과 타인 모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방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은 특정한 선행을 베푸는 것보다 더 강조되는 경우가 있다. “비구들이여, 아침에 백 개의 가마솥으로 음식을 보시하고, 점심에 백 개의 가마솥으로 음식을 보시하고, 저녁에 백 개의 가마솥으로 음식을 보시하는 것보다, 소젖을 짜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아침에 자애의 마음을 닦고, 소 젖을 짜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점심에 자애의 마음을 닦고, 소 젖을 짜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저녁에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이 더 큰 결실을 가져온다.”(SN. II. 264p)
자애로운 마음이 가져오는 이익
초기 불교 경전에서는 자애로운 마음을 지닐 때 얻게 되는 이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① 편안하게 잠든다. ② 편안하게 깨어난다. ③ 악몽을 꾸지 않는다. ④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⑤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⑥ 여러 신들이 보호한다. ⑦ 이러한 사람은 불이나 독이나 칼이 해치지 못한다. ⑧ 마음이 빠르게 삼매에 들어간다. ⑨ 안색이 맑아진다. ⑩ 노망하지 않고 죽음을 맞는다. ⑪나아가 꿰뚫지 못하더라도 브라흐마의 세계에 도달한다(.A”N. V. 342p; Ps. II. 130p) 이러한 열한 가지는 자애의 마음을 지닌 당사자가 얻는 이익이다. 이것은 자애의 마음을 닦아야 하는 이유를 밖에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면증이나 악몽에 시달리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우선 자애의 마음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자애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는 고결한 마음이다. 스스로의 내면을 자애로움으로 채울 수 있고, 바로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그 자신이 행복할 것이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주변과 관계를 맺는다면 누구든 거기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지 않겠는가. 따라서 자애의 실천은 모든 이들을 위한 평화 증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초기불교의 자애를 자리(自利)의 실천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경전에서 자애의 마음을 스스로의 정신적 향상을 위한 덕목으로만 거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자애의 실천이란 반드시 자신의 이익에만 국한된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리라. 긍정적인 마음은 긍정적인 관계 형성을 위한 기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의 덕목으로 자애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빠르게 삼매에 들어가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삼매의 체험이란 결국 정서적 안정의 연장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삼매인 첫 번째 선정(第一禪)에서부터 쾌락에 대한 욕망(貪欲), 악한 마음(瞋恚), 혼침과 졸음(昏沈睡眠), 들뜸과 회한(掉擧惡作), 의심(疑) 등 다섯 가지 정신적 장애(五蓋)는 극복되는 것으로 거론되곤 한다.(Ps. I. 31p, 45p, 47p 등)
자애로운 마음을 잊지 않고 한량없이 닦아나가는 사람은
번뇌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며
수행에 장애가 되는 족쇄들을 엷어지게 한다.
자애의 실천은 그와 같은 부정적 심리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꿔주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안색을 맑게 하고, 노년기의 흐릿한 정신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자애가 가져다줄 수 있는 마지막 이익은 꿰뚫지 못하더라도 브라흐마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교리적 위상과 실천 방법
자애란 팔리어(pāli)로 메타(mettā)라고 부르며 한역에서는 자(慈)로 번역한다. 한편 한역 불교권에서는 이것과 짝을 이루는 표현으로 카루나(karuṇā), 즉 비(悲)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타인의 즐거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후자는 ‘타인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의된다. 인도 불교에서 메타와 카루나가 합성어로 사용되는 용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이 둘을 합해 자비(慈悲)라는 합성어를 고안해냈다. 이들은 서로 결합될 때 더욱 분명하고 강력한 뜻이 드러난다. 사실 초기 불교에서부터 메타와 카루나는 4가지 무량한 마음(四無量心) 중 두 가지로 엮어 거론되었으며, 또한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의 목록에 함께 포함되어 깨달음을 이루는 실천 항목으로 정착되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열한 가지 이익은 자애의 마음이 일상의 삶을 위해 요구되는 덕목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이익과 더불어 세간적인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영위해갈 수 있다. 그런데 자애의 마음은 궁극의 지혜를 얻어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필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예컨대 “자애로운 마음을 잊지 않고 한량없이 닦아나가는 사람은 번뇌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며 [수행에장애가 되는] 족쇄들을 엷어지게 한다”(Iti. 21p; AN. IV. 150p)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자애로운 마음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평안과 해탈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간과할 수 없는 수행 덕목이 된다. 그러나 자애의 마음을 지닌다고 곧바로 올바른 식견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꿰뚫지 못하더라도 브라흐마의 세계에 도달한다”라는 앞서의 언급에 이러한 의미가 숨어 있다. 천상의 세계에 태어날 수는 있지만 진리를 꿰뚫는 완전한 지혜가 반드시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애의 마음은 통찰 명상의 바탕으로 언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애의 마음이 충분히 개발될 때 삼매 혹은 선정을 성취할 수 있으며, 그러한 선정의 상태에서 진리를 통찰하는 명상으로 전향할 수 있다.(MN. I. 351p) 심지어 일부 경전에서는 자애의 계발만으로 깨달음(aññā)에 이를 가능성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SN. V. 131p) 그렇지만 자애의 마음은 통찰 명상의 밑거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자애의 마음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제시된다. 하나는 일상에서 몸과 입으로 행동할 때 자애의 마음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MN. I. 224p; MN. II. 250p) 예컨대 웃어른을 대하거나 혹은 도반들과 마주할 때 자애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천은 사랑과 존경 그리고 평화와 조화를 실제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자애로운 마음은 명상의 실천(bhāvanā)을 통해 적극 개발되기도 한다.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앞서 반복적이고 인위적인 훈련을 통해 자애의 마음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초기 불교의 경전에서는 후자의 맥락에서 자애의 염원을 일정한 방향 혹은 특정 인물에게 집중적으로 방사하는 연습을 소개하곤 한다.(AN. I. 183; Ps. II. 131p 이하)
자기 자신의 자애의 마음이 과연 어느 수준인지 돌이켜볼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선 스스로에게 자애의 염원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이 원한으로부터 벗어나고, 악의로부터 벗어나고, 격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행복한 존재로 잘 보호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문구를 자신에게 반복해줌으로써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고양된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해 자애의 마음을 키워나가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친구, 동료 등이 원한으로부터 벗어나고, 악의로부터 벗어나고, 격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행복한 존재로 잘 보호하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자애의 마음을 돈독히 해주는 연습은 모든 존재의 행복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해주고 바른 지혜를 얻는 데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임승택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 교수를 거쳐현재 경북대 철학과 교수이자 불교학연구회 회장으로 있다. 오랫동안 요가를 수련했으며, 미얀마의 위빠사나센터에서 수차례 안거 수행을 마쳤다. 주요 저서로는 『붓다와 명상』, 『초기 불교 94가지 주제로 풀다』 등이 있고, 「초기 경전에 나타나는 궁극 목표에 관한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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