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에서 말하는 자비 | 자비 1

자비 1


선(禪)에서 말하는 자비 

– 선사(禪師)의 자비를 중심으로


원제 스님 

김천 수도암 수좌



남악 회양 스님이 육조 혜능 스님을 찾아갔을 때, 혜능 스님이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숭산(崇山)에서 왔습니다.”

“무슨 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이에 곧장 답을 내놓지 못한 회양 스님은 다시 숭산으로 돌아갔다. 혜능 스님이 툭 던지듯 걸어온 이 ‘한 물건’에 통째로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8년의 치열한 수행 뒤, 회양 스님은 다시 혜능 스님을 찾아갔다. 혜능 스님이 이전과 똑같이 물었다. 

“무슨 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이에 회양 스님이 대답했다.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옳지 않습니다.”

이후 혜능 스님이 다음 질문을 했다.  

“닦아서 증득하는 것인가?”

“닦아서 증득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본래 오염될 수는 없습니다.”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모든 부처님들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다. 그대가 이미 그러하였고 나 또한 그대와 같다.”

이후 회양 스님은 혜능 스님에게 인가를 받았고, 혜능 스님을 15년 동안 곁에서 시봉했다.


유명한 문답인 이 ‘한 물건’ 공안은 참으로 말끔하고 담백하다. 선문답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두 스님은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혜능 스님의 법력을 믿은 회양 스님은 혜능 스님이 무심코 툭 던져온 듯한 이 ‘한 물건’에 제대로 걸려버렸다. 그리곤 8년 동안 이 ‘한 물건’을 의심해 치열하게 찾아갔다. 그런 수행 끝에 회양 스님은 물건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또한 찾을 수도 없는 이 ‘한 물건’에 결국 계합(契合)했다. 아이러니한 일이겠지만, 이 계합은 말하지 못하고 또한 찾지 못함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혜능 스님에게 추가적으로 점검을 거친 뒤, 회양 스님은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선사들의 자비는 참으로 독특하다. 혜능 스님은 앞뒤 문맥 없이 그저 ‘한 물건’을 툭 던졌다. 이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곧장 숭산으로 돌아가는 회양 스님을 붙잡고는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친절함도 없었다. 그렇게 다소 무심한 형태로서의 자비였다. 그런데 어찌 보면 혜능 스님의 이러한 무심한 제접 방식도 덕산 스님의 방(棒)이나 임제 스님의 할(喝)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자비로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까운 한국의 선사를 돌이켜보아도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께서도 일반적인 상식 기준에서 보자면 결코 자비로운 분은 아니셨다. 공부를 점검받고자 찾아오는 수좌들은 언제나 성철 스님에게 죽비로 몇 대씩 두들겨 맞고는 문답을 시작했다는 일화가 수좌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전설처럼 들려오고 있다. 그나마 가장 다정한 모습으로 공부를 격려해주시는 것은 무언의 고개 끄덕임 정도가 전부였다. 반면에 송광사의 어르신이셨던 구산 스님은 공부인들의 수행 과정이나 경계도 세심하게 들어주시고, 수행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상한 선사는 무척이나 희소하다. 

나는 선사들이 가르침을 전해주는 이런 담백한 방식이 단지 그 선사들의 무심한 성품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지만은 않는다. 이는 선(禪)의 독특한 수행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발화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선의 대표적인 수행 방식은 의심이다. 한국의 간화선(看話禪)도 이 화두에 대한 의심을 근간으로 형성된 수행의 한 방식이다. 회양 스님이 무엇을 점검받고자 혜능 스님에게 찾아왔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회양 스님의 공부 경계는 분명 혜능 스님의 ‘한 물건’ 말 한마디에 여지없이 가로막히고 말았던 것은 확실하다. 그 어떤 수준이 있는 공부라 하더라도, 수준마저도 사라진 ‘한 물건’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혜능 스님은 비록 경전을 읽지 못하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상대방을 단숨에 파악해 살아 있는 언설로 공부 경계를 단번에 압도해버리는 대장부의 안목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 압도한 자리에 ‘한 물건’이라는 커다란 의심을 심어주었다. 

의심의 속성은 힐링(活)보다는 킬링(殺)에 가깝다. 자비의 마음을 품고 포용을 키워나가는 것이 활(活)의 수행이라고 한다면,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그릇된 집착을 끊고 분별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살(殺)의 수행이다. 역대로 안목이 뛰어난 선사는 우리들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공부인이 믿고 의지하는 경계를 빼앗거나 아예 부수어버리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살을 통해 구현한 자비였던 것이다. 『조산록(曹山錄)』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온다. 


조산본적(曹山本寂)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감천(甘泉)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밭 가는 농부에게서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 했다는데, 무엇이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는 것입니까?”

“노지(路地)를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입니까?”

“제호(醍醐,우유로 만든 맛좋은 음식)를 물리치는 것이다.”


농사짓는 농부에게서 소를 빼앗으면 농부를 죽이는 일과 다름없다. 굶주린 사람에게서 밥을 빼앗는 것은 그 사람을 굶겨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그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비유다. 스승은 공부인이 믿고 의존하는 그 대상을 빼앗아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무릇 사람이라면 이 대상을 믿음으로써 실체감을 얻게 되고, 대상에 의지함으로써 이 존재감을 이어갈 수 있다. 선사들은 이미 아셨던 것이다. 이 믿음과 의지라는 조건을 빼앗아 없애야지만, 그 사람이 비로소 제대로 존재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숨구멍이 뚫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공부라 하더라도, 그 어떤 조건이나 상태에 의지해서 실체화된 공부는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다. 그래서 혜능 스님은 이러한 조건이나 상태에도 걸릴 바 없는 이 ‘한 물건’을 툭 던진 것이다. 그 어떤 조건과 상태에 의해 실체화된 깨달음은 이 허공 같은 ‘한 물건’ 앞에서 앞뒤 없이 꽉 막히게 된다. 그러나 꽉 막히는 것은 이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멈추는 곳에서 실체를 둔 공부는 힘을 잃고 와해된다. 이러할 때에야 비로소 실체마저도 둘 수 없는 공부가 제대로 살아난다.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살아날 수도 없으며, 취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벗어날 수도 없는 이 허공과 같은 ‘한 물건’으로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 회양 스님은 그렇게 8년이라는 고행의 수행이 필요했던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선사들은 선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따뜻한 격려보다 무심한 채찍질을 주었다. 그것은 자신의 공부를 돌이켜보고, 모든 방식으로서의 실체화를 부수는 그런 의심의 채찍질이었다. 만일 공부인들이 의심으로 제대로 들어간다면, 실체화나 분별심이 지니는 관성의 힘은 확연히 꺾인다. 그리고 이 깊은 의심의 힘으로 그 중심에서 생각놀음을 일삼는 아상(我相)이 타파되고야 만다. 기실 ‘나’란 무명의 중생이 지니게 되는 가장 강력한 집착이며 분별이고, 또한 버리지 못하는 실체다. 이 ‘나’라는 작은 중심이 부서질 적에, 우리는 활달히 열린 눈앞으로서의 전체를 만나게 된다. 이 눈앞은 눈으로 볼 수도 없으며, 또한 앞도 뒤도 없는 그러한 중심 없는 중심으로서의 전체다. 이 전체야말로 경계 없고, 조건 없는 진정한 본원으로서, 한 물건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러한 ‘한 물건’이다. 애초부터 벗어난 적 없는 이 ‘한 물건’을 만나기 위해 선에서는 의심만 한 수행이 없기도 했던 것이다. 의심은 그 모든 실체화를 부수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심이라는 수행 방식은 언뜻 킬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 있음도 아니며 그렇다고 중심 없음도 아니고, 얻을 수도 없으며 또한 잃을 수도 없는, 그런 ‘눈앞’을 살려낸다는 점에서 의심의 최종 결과는 힐링이다. 선사들의 무심함은 언뜻 냉정함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무심함으로써 파종된 의심의 수행은 공부인들의 강력한 집착인 아상을 무너뜨리고, 경계와 조건 없는 ‘한 물건’을 살려내는 것이기에, 종국에는 힐링이다. 실체화로부터 관념이 죽게 된다면, 실체 없음의 공성(空性)은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살아나게 된다. 실체를 둔다면 살과 활은 정반대의 일이겠지만, 그 어떤 실체화의 여지마저도 사라진다면 살과 활은 동시의 일이자 또한 불이(不二)의 일이 된다. 불이란 생각과 분별을 떠난 그 자체로서 진실해진다는 뜻이다. 

혜능 스님이 툭 던진 ‘한 물건’이나, 덕산의 방, 임제의 할, 그리고 성철 스님의 죽비는 이 선이라는 유구한 전통 안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의심의 종자를 심어주기 위한 선사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서의 자비였다. 따뜻한 마음으로 자상하게 어루만져주어야만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무명 번뇌를 없애주거나, 아상을 깨뜨려주고, 실체화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그것 역시 사람을 진정으로 살리는 자비다. 자비에는 정해진 모양이나 방식이 없다. 하지만 이 허공 같은 무상(無相)의 자비에 계합할 수 있다면, 그 모든 인연 따라 일어난 경계가 자비의 여실한 불이법문(不二法門)이 될 것이다. 

탁! 탁! 탁! 



원제 스님 2006년 해인사로 출가해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다. 2012년부터 2년여간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 세계 일주를 하며 수행했고, 현재 선방 수좌로 김천 수도암에서 정진 중이다. 저서로 『다만 나로 살 뿐』(1·2),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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