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내가 남긴 물 발자국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생명은 물이다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났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생명이 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일까?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돌보고자 부처가 되지 않았던 관세음보살의 손에도 생명을 유지해주는 생명수인 물이 담긴 정병이 들려 있다.
최근 전 세계에서 이 물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산업화되면서 따라붙는 수질오염 문제에 더해 기후 변화로 일어나는 물 부족과 가뭄 소식이 반복적으로 들린다. 우리는 이런 소식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사실 문제의 심각성을체감하기 어렵다. 설령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논이 말라가고 있다는 뉴스를 들어도 당장 내 식생활에서 물가를 제외하고는 음식을 구하는 데 문제를 겪지는 않는 데다,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넘쳐나는 물품들 때문에 더 실감하기 어렵다.
한정적인 물
흘러가는 물을 보며 우리는 물이 무한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물은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이다. 지구의 70%가 바다로 뒤덮여 있지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물은 0.01%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 물도 기후변화와 과도한 물 사용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세기의 지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생명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이 전대미문의 세상을 놀라게 할 방법으로 담수를 바닥낼 지경에 이르렀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여기에 덧붙여 OECD는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가 물 스트레스 1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바로 그 답이 물 발자국에 있다.
숨겨진 물, 물 발자국
물 발자국은 하나의 물건이 생산되어 유통 과정까지 들어가는 물을 물의 양으로 수치화한 것으로 국가 간 물건 이동에 관한 물 소비까지 모두 포함한다. 상추를 예로 들어보자. 상추를 재배하려면 씨앗을 물에 담가두었다 씨를 땅에 심는다. 그 후 매일 물을 넉넉히 준다. 그렇게 한 달을 키우고 나면 드디어 수확해 먹을 수 있다. 상추 잎 한 장은 보통 10g인데 약 9.6g의 물이 포함되어 있다. 매일 100ml의 물을 주었다면 상추 한 장에는 이미 3L의 물이 들어갔다. 만약 농부가 길러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 것이라면 농부의 밭에서 매장으로 오기 위해 들어간 물이 있다. 상추를 싣고 온 트럭을 움직인 기름은 1L를 채굴하기 위해 19L의 물이 들었고, 이것 말고도 상추를 키우는 데 든 비료, 스프링클러를 작동하기 위한 전기, 보관을 위해 작동한 냉장고의 전기, 포장 박스나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종이와 그 종이를 만들기 위해 기른 나무에 사용된 물 등이 여기에 모두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물 발자국’이다. 상추를 키우는 데는 이 정도의 물이 쓰였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쇠고기는 1kg에 1만 5,500L, 초콜릿 2만 4,000L/kg, 우유 1L는 1,020L, 면 티셔츠 한 장에 3,450L, 스마트폰 1만 2,760L, 자동차 약 15만L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사용되는 물의 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극히 일부만 우리 눈에 직접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물에 관한 민감성을 잊고 있다. 이렇듯 어마어마하게 숨어 있는 물이 기후변화로 물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는 지구의 물을 더 고갈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숨겨진 물, 물 발자국만 줄여도 우리는 많은 양의 물을 아낄 수 있고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왜 고기의 물 발자국은 클까?
쇠고기 1kg에 1만 5,500L, 15톤의 물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쇠고기보다는 낮지만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 다른 고기도 마찬가지다. 물 발자국이 워낙 크다 보니 쌀 117L, 두부 82L, 감자 72L, 토마토 45L 등은 물 발자국이 적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쇠고기는 왜 이렇게 물 발자국이 클까? 그 이유는 일부러 대어주어야 할 물이 얼마나 되는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물이 얼마나 되는지, 이들을 생산, 유통,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을 얼마나 오염시키는지가 모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쇠고기는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져 우리에게 온다. 축사에 갇혀 해외 원시림을 개간해 재배한 콩이나 옥수수를 수입해 와 이를 먹여 키우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뇨로 수질오염이 발생한다. 다 자란 소는 도축장으로 끌려가 도축된 후 냉장이나 냉동 보관되어 차량을 통해 마트나 정육점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먹을 만큼 쇠고기를 사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마시는 물, 곡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마시는 물, 유통을 통해 사용되는 전기와 석유를 위해 사용되는 물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 점 때문에 같은 쇠고기라도 목초지에서 자란 소는 빗물에 의존해 자란 풀을 먹기 때문에 지표수를 사용할 일이 줄어들고, 또 잘 관리될 경우 오염 관리를 위한 물도 적게 발생한다. 하지만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소는 주로 옥수수와 콩으로 된 사료로 기르기 때문에 지표수 사용률, 분뇨가 만드는 오염수를 처리하기 위한 물 사용이 더 커진다. 그래서 목초에서의 소 사육을 선호할 것 같지만, 이들은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육류 업자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공장식 사육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가축들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수입까지 하게 되면 물 발자국은 유통 과정에서의 전기와 석유 사용 때문에 더 물 사용량이 많아진다.
물 발자국 너머로
물 발자국이 중요한 이유는 물은 한정된 자원이고 기후변화 때문에 가뭄과 홍수가 늘고 있어 안정적인 담수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물을 계속 이렇게 쓰다가는 담수 고갈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으로써 강으로 해수가 밀고 들어와 담수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최대 쌀 생산지 중 하나인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 일대는 이미 바닷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고기 소비, 수입품 사용 증가로 물 사용량은 늘어났는데 담수의 양은 줄어들고 있어 지금도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다.
사실 물 발자국은 유통까지의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제품의 폐기 이후 과정에서 사용하게 되는 물까지 포함한다면, 우리가 지구에 남기고 있는 물 발자국은 훨씬 더 증가할 것이다. 라면 국물 200ml 한 컵을 정화하는 데만 물 400L가 든다고 하니 우리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지구의 물이 금방 고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물 발자국 수입은 5위로, 현재 추세대로라면 2050년이 되면 OECD국가 중 물 스트레스 1위가 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물 발자국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선택하는 소비가 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채로 고기를 즐겨 먹고 수입품을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생명수인 물을 보호하기 위해 물 발자국을 고려해 육식 대신 채식을 선택하고 수입품보다는 지역 생산품을 이용해야 한다. 물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다면 생명수인 물을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물은 무한하지 않다. 유한하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