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담은 사랑 선물
꿈을주는과일재단
“취약계층 아이들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대요. 안타까운 일이죠. 우울할 때 당분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영양 풍부하고 맛도 있는 과일을 배달하기로 했어요.”
외적인 것에 한창 예민할 나이인 아이들을 생각해 아이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하고, 좋은 음악 듣고 즐겁게 살라는 취지에서 MP3를 선물하던 황의준 씨는 더 의미 있는 선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과일을 떠올렸다.
“과일이라고요?”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의아해 되묻는 말에, 처음 반응은 다 비슷하다고 ‘꿈을주는과일재단’ 사업추진팀 서상우 팀장이 답했다.
“연탄이나 쌀 같은 품목은 구호품이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받고서도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인데 과일은 그렇지가 않아요. 선물 같은 느낌이죠.”
연두색 커다란 상자를 열어보니 과일이 가득하다. 사과, 석류, 귤, 딸기, 그 종류도 참 다양하다. 정말로 과일이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상자를 열어 신선한 과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다 화사해졌다. 2011년부터 어린이를 둔 저소득층 가정에 과일을 선물해온 황의준 씨. 그는 개인적인 나눔 활동을 보다 확대하고자 2014년에 매월 정기적으로 저소득층과 결손가정 아동들을 찾아가는 ‘꿈을주는과일재단’을 설립했다. 혼자서는 넓은 지역을 아우를 수 없기에 지역 거점 기관을 선정해 체계적인 사례관리를 통해 아이들의 정서적 지지에 힘을 쏟고 있다.
처음에는 거점 기관에서 자율적으로 과일을 구입하고, 아동에게 과일을 전달하는 등 모든 것을 진행하도록 했다. 재단은 후원금을 전달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지역 영세 상점을 이용해달라고 부탁했다. 1년간 그렇게 해보니 문제가 보였다. 지역마다 과일의 종류와 품질 차이가 컸던 것. 그리하여 2015년부터는 재단이 구리 농수산물 시장과 직접 거래를 시작했다. 재단을 운영하는 구성원들은 해야 할 일이 늘었지만, 전체 기관의 공동구매로 과일 구입 가격이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아동들에게 전달될 과일 맛이 좋아졌다.
“부모님들이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시지만 한 달에 한 번 직접 공부방에 들러 과일 상자를 받아 가시면 아이들은 어머니가 공부방을 방문한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해합니다. 한 달에 한 번 과일을 전달하며 어머니 얼굴을 뵙고 안부도 물으며 대화할 수 있어 나눔의 기쁨이 배가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문정 새빛평화의집 리브가 수녀는 꿈을주는과일재단의 과일 상자를 ‘배려가 있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과일을 받아 가는 어머니와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볼 때는 기쁨으로 가득 차오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매월 아이들을 위해 직접 나눔을 실천하러 오는 자원봉사자 임유미 씨는 ‘다른 사람에게 내 것을 주고도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나눔이라고 정의했다.
정성과 마음을 담은 과일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지역 복지사들은 평소 상담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경계가 강한 아동 가정에 1년 동안 과일을 전달하며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아동과 그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보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강희(가명/남)는 지체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알코올 의존 문제를 겪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이 과일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의 마음에도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술을 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아이들 앞에서 다투지 않으려고 복지관 상담 센터를 통해 부부 상담을 받고 있다.
“강희 담임선생님께 강희가 ‘참 많이 밝아졌다’,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복지관 방과 후 수업도 열심히 참여하고요. 최근 과일을 전달하러 갔을 때 집에 놀러온 친구들을 인사시켜주며 밝게 웃기도 했어요.”
강서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최혜림 복지사는 꾸준한 과일 나눔으로 강희네 가족에게서 빠르지는 않지만 작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한편 재단 사무실의 회의실에서는 책 포장이 한창이었다. 문화 나눔의 일환으로 과일 수혜 아동 외에 형제자매까지 포함한 도서 지원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했다. 재단 식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연령별로 깊은 고민 끝에 선정한 도서에 아이들 각자 이름이 적힌 띠지를 두르고, 도일리 페이퍼와 비닐로 예쁘게 책을 포장했다.
“일반 저소득 가정 아이들의 경우 중고 책을 지원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아이들 이름을 넣고 예쁘게 포장해서 주면 자기에게 온 선물이라고 생각하죠. 아이들이 책 한 권을 받더라도 내 것이라고 여겨 더 열심히 읽는대요. 자기 이름이 적힌 띠지를 보관하는 친구도 있고,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말해주는 친구도 있어요.”
책 한 권 전달하는 것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포장을 해야 하느냐는 우문에 재단 대외협력팀 장혜영 팀장이 현답을 내놓았다.
“지원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함께 일하고 싶다고 재단에 찾아올 수 있다면 그것이 재단의 가장 큰 성과 아닐까요?”
재단의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말에 서상우 팀장이 답했다. 여러 경제 상황, 사회 이슈들로 기부문화 자체가 위축되어 재단을 꾸려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나눔 실천으로 출발한 재단이 이만큼 꾸려져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더 많은 개인 후원자들이 뜻을 함께해 더 많은 어린이에게 건강한 꿈을 선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취재│박예슬(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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