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신비, 뇌로 풀다
『마음의 연금술사』
명상의 치유적 효과를 실험해 증명한 뇌과학의 발전 덕분에, 최근에는 명상이야말로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업이나 학교 등에서 학습 능력 개선과 작업 효율성 향상을 위해 명상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하지만 ‘실용성’ 측면에서만 명상의 효과에 접근하려는 시선은 명상의 본질에 어긋난다. 뇌를 노동과 학습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시선 때문에 상처 입은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는 명상의 본질은 퇴색될 수 있다. 뇌과학에는 과학자들이나 경영 전문가들의 시선을 뛰어넘어 문학과 심리학의 시선으로, 에세이스트의 시선으로 뇌를 바라보는 보다 자유로운 시선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다이앤 애커먼의 『마음의 연금술사』를 만났다.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다이앤 애커먼의 광대무변한 상상력과 빈틈없는 취재로 탄생한 이 책은 ‘과학자의 시선에 비친 뇌과학’이 너무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들에게 반가운 단비 같은 소식이다.
뇌는 분석하고 사랑한다. 뇌는 소나무의 향내를 감지해서 어린 시절 어느 여름에 포코노스에서 열렸던 걸스카우트 캠프를 떠올린다. 깃털이 피부를 간질이면 뇌는 설렘을 느낀다. 그러나 뇌 는 말이 없고 어둡다. 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 엄청난 장벽을 넘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뇌의 능력이다. 뇌는 저기 산 너머나 우주 공간으로 스스로를 쏘아 보낼 수 있다. - 『마음의 연금술』 중에서
말 못하는 동물에 대한 깊은 사랑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가득한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Zoo keeper’s wife)>의 원작자이기도 한 다이앤 애커먼은 전방위적 글쓰기로 알려진 에세이스트이자 과학자이며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심리학, 문학, 철학, 신경과학의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뇌와 마음의 수수께끼를 파헤친다. 다이앤 애커먼은 무려 24억 년 전,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하기 시작한 과거에서부터 인류의 뇌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애커먼은 약 5억 년 이전에 인류가 처했던 척박한 자연환경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속에서 인간이 성공적으로 번식과 생존을 이어나가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의 뇌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출산을 거쳐야 하는 인간의 탄생 과정을 고려할 때 인간의 두개골이 커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뇌 속에 수많은 기능들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무리 주름이 많아도 인간이 필요한 기능을 다 넣기에는 뇌 용량이 부족했다. 그리하여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환상적인 기능이나 재능은 퇴화되었다고 한다. 한때 인간에게는 개와 같은 뛰어난 후각이나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감각적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다.
인간이 이런 환상적인 기능을 포기하면서 얻은 최고의 능력은 바로 언어적 기능이다. 식물이나 동물과 달리 인간은 매우 복잡하게 발달한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소통하고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좌뇌와 우뇌의 차이도 흥미롭다. 최대한 다양한 능력을 수행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모든 능력을 양쪽에 똑같이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뇌에 서로 다른 능력을 조금씩 나누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뇌가 만들어낸 가장 신비한 현상 중엔 ‘의식(consciousness)’도 있다. 저자는 의식이라는 것은 뇌라는 회색 물질이 만들어낸 장난이자 우리 뇌가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신기루라고 말한다. 무려 1,000억 개의 뉴런이 시냅스라는 접촉점을 통해 100개가 넘는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 우리의 감정, 자아, 의식 같은 다채로운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은 여전히 신비롭고 불가해한 과정이다.
특히 다이앤 애커먼은 인간의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삶을 시적으로 바꿔놓고 싶어 하는 열망이라고 선언한다. 단지 몇몇 사람이 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시를 쓰고 읽고, 언젠가는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경이로운 뇌 발달의 최고봉이 아닐까.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뿐 아니라 ‘나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적인 모습’으로 돌변한다. 삶을 시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상상하는 것, 은유와 상징의 힘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것, 그 모두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시인을 만나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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